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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반야봉에서 빌고 또 빌다/술산 강영환

by 지리산 마실 2008. 3. 4.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 <3> 반야봉에서 빌고 또 빌다
시산제는 산행의 불안 떨쳐버리고 행복을 비는 의식
봄을 한 짐 지고 내려 오는 길은
마음으로 걷는 길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는 산길을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지난달 지리산 반야봉에서 벌어진 시산제에서 축문을 읽고 있는 필자.
해가 바뀌면서 산행 단체들이 시산제를 지내기에 바쁘다. 시산제는 천지신명과 산신에게 지내는 제사로 그동안의 무사고 산행에 감사하고 앞으로 산행에도 그것을 기원하며 회원들 간의 친목을 도모한다. 제사이기보다는 마음 가운데 남은 불안을 떨쳐버리고 행복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축문이 읽혀지고 그 염원으로 산행의 축복을 받게 된다. 내가 속한 단체도 지리산 반야봉에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우리나라 4341년, 서기 2008년 무자년 정월 초엿세. '지산' 일동은 어머니 산 지리산에 올라 천지신명과 산신께 삼가 엎드렸나이다.

자연을 아끼고 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지리산 자락을 걸어 온 지 어언 일곱 해 그동안 큰 사고 없이 산길을 걸어 왔음은 천지신명과 산신께서 굽어 살펴 주심임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나이다. 어리석은 저희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깊은 정을 나누며, 입산의 기쁨을 함께하는 것도 오직 지리산, 나아가 자연을 사랑하는 저희들의 지순한 마음을 어여삐 지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들면 들수록 잘 알지 못하는 산임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이 어찌 하늘이나 땅의 뜻을 알 수 있으리요만, 작은 벌레나 풀잎 하나까지 당신의 마음이 담겨져 있음이며, 어린 마음으로 무심히 짓밟고 지나가 버린 풀포기나 꺾어버린 나뭇가지 하나에도 당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음도 잘 알고 있나이다.

저희가 산에 들어 당신과 함께하는 뜻은 저희들로 하여금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의 안타까움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싹 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저희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는 뜻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도록 저희를 채찍질하시고 한편으로는 다독여 주시길 바라나이다.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이 국민을 섬기는 마음이 변치 않게 해 주시고 경제를 되살려 나라에 그늘진 곳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 금년에도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서 힘차게 도약하게 해 주시고 우리 국민들이 희망과 활력이 넘치는 생활로 행복한 나라가 되게 하여 통일을 앞당기게 하여 주소서.

저희 산악회 가족은 물론 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고, 이들의 가정에 화목과 평안이 깃들어 하는 일에 다복함과 만사형통이 깃들게 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당신의 품을 자주 찾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오늘, 정갈한 음식과 맑은 술을 올리며 간절한 염원으로 엎드렸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산신이시여! 저희들의 간절한 염원을 들어 주소서. 들어 주소서'

반야봉에 엎드려 생각해 보았다. 왜 산을 오르는 것일까? 물론 내려오기 위해 오른다는 농담들을 하지만 산은 행복을 찾기 위해 오르는 것 같다. 이향지 시인은 '왕시루봉 오르면서'(부분)란 시에서 산을 오르는 법을 일러준다.


나 살던 곳, 돌아갈 길, 아득히 잊고

오솔길 한 가닥 끌고 오릅니다.

오르는 길은 힘들고 숨이 차지만

나는 내일 이 길로 갈색 나비를 날리며

내려올 겁니다, 겨울을 부려놓고

봄 한 짐 지고, 갈색 나비를 날리며,


봄을 한 짐 지고 내려오는 길은 마음으로 걷는 길이다. 몸으로 걷는 길은 쉬이 지치게 마련이다. 서산대사는 눈 쌓인 길을 걸을 때는 발자국 하나라도 마음을 실어 찍어야 한다고 했다. 뒤에 올 사람의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을 위해서 말이다. 시인

▶알립니다=지난 주 이 란에 공초 오상순의 시로 인용된 '꽃자리'가 구상 시인의 작품이라고 몇 분 독자들께서 지적해주셨습니다. '꽃자리'는 공초 오상순 시인이 평소 사람을 만날 때 하던 축언을 구상 시인이 풀이하여 시로 써 1992년 시집 '꽃삽'에 실은 것으로 경우에 따라 오상순 시인의 시로도, 구상 시인의 시로도 소개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입력: 2008.03.02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