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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신불산에서 묘비명을 써보다/술산*강영환

by 지리산 마실 2008. 2. 18.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 <1> 신불산에서 묘비명을 써보다
숭례문 빈자리 가슴 휑하게 뚫린 듯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신불산에서 영축산을 향해 가는 길. 나는 산에서 나의 묘비명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산이다. 너도나도 산으로 들면서 우연히 그러나 자주 묻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함께 산을 오르던 K 시인이 엉뚱한 답을 한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영국의 버나드 쇼는 스스로 묘비명에다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썼단다. 네 묘비명을 한번 써 봐! 그게 답이야."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 왔을까. 남들에게 욕 얻어먹지 않고 잘 살아 왔는가. 삶을 되돌아보며 내 묘비명에 써넣을 글귀를 생각하며 걷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입춘이 지나자 봄이 왔다고 다들 몸과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산꾼들에겐 오는 봄도 반갑지만 가는 겨울이 안타깝다. 눈산 한 번 타 보지도 못하고 겨울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특히 겨울에 눈을 만나기가 힘든 부산, 울산의 산꾼들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마음먹고 지리산을 가거나 덕유산 가야산에 올라 눈을 만끽하곤 한다. 하지만 멀다. 가까운 산에서 눈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까이 영남알프스 산군 가운데 접근하기 용이하고 쉽게 눈을 볼 수 있는 산이 있다. 꺾이지 않는 억새도 장관이지만 억새 사이로 소복이 쌓인 눈을 밟거나 특히 운이 좋다면 눈꽃이나 상고대도 만날 수 있는 신불산이 그곳이다.

신불산에 대한 기억은 능선을 따라 가득 채워진 억새군락,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펑퍼짐한 엉덩판은 불이라도 질러 주고 싶을 만큼 유혹의 몸짓 그것이다. 그랬다. 겨울 신불은 다비장 장작더미 위에 스승을 눕혀 놓은 뒤 불을 켜들고 눈물짓는 사미승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불이라고 불리는가? 그 산을 오르며 묘비명을 생각한다.


뼈 속까지 깊이 눈물마저 태워

흔한 눈물을 달려가라 사미여

억년 불쏘시개가 손을 흔든다

간월에서 취서까지

검은 한 밤 태울 정염으로

달빛은 푸른 몸을 드러낸다


이건 묘비명이 아니다. 차가운 눈산을 걸으며 생각해도 도무지 나의 삶에는 특징 지울만한 일이 없다. 슬프다.

소설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은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고 했다. 내 묘비명에는 뭐라고 써야할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류시화는 '너의 묘비명'이란 시에 이렇게 썼다.


산마저 나를 버린다

산이 나를 오라 해서

모든 것 버리고 산으로 갔더니

산 마저 나를 돌아가라 한다


저 산은 자꾸만 내게서 돌아눕고

나는 자꾸만 산 쪽으로 돌아눕고


문득 산안개 가려 길 보이지 않네


산에 대한 짝사랑, 언듯 나의 묘비명 같기도 하다. 아니다. 아무래도 나는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써야겠다하니 일행이 배꼽을 쥔다. 나는 눈물이 나는데.

겨울 산은 눈물을 간직한다. 그 눈물을 불태우는 일이야 말로 산행의 참맛이 아닌가. 묘비명 대신 눈산에 나를 안긴다. 산꾼에게는 오는 봄도 반갑거니와 가는 겨울도 아쉽다.

 
그런데 정말 겨울이 다시 오는 것인가? 숭례문이 비명에 갔다. 가슴이 아프다. 내 묘비명보다는 숭례문의 묘비명 하나를 마련해 보아야겠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를 견딜 자신이 없다. '그대가 있던 하늘/ 빈자리가/ 그렇게 커 보이기는 처음이다'. 그렇게 시작하자.


▶약력=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979년 현대문학 추천완료. 시집 '칼잠' 외 다수. 지리산 시집 '불무장등', '벽소령'. 시조집 '남해' 외. 한국작가회의 회원, 부산민예총회장 역임. 제26회 이주홍문학상 수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