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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속도 늦추고 삶을 돌아보라/퍼온글

by 지리산 마실 2007. 4. 4.
‘속도’ 늦추고 삶을 돌아보라
‘고민하는 40대’를 위한 조언…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나이 사십. 스스로 선 자리가 한 평생 ‘성취의 정점’에 가깝지만, 이를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이. 세상의 변화가 두렵고,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불안해지는 나이. 느닷없는 ‘해고의 칼’이 날아올 시기를 점쳐보며 두려워하는 나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한민국 40대는 대개 이렇다. 젊은 시절에는 지치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제 그러기에는 스스로 가진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은이들과 경쟁하며 세상의 속도를 맹렬하게 따라붙지만, 그럴수록 일상은 지치고, 몸은 망가져 간다.

75년 전 미국에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하는 40대’가 있었다. 해고의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하고, 부모노릇에 허리가 휘고, 일에 매달리다 쓰러졌다. 경제대공황이 밀어닥치고 직장인들이 대거 실직해 길거리로 나섰던 무렵인 1932년 미국 서점가에 한 권의 베스트셀러가 등장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인 월터 B 피트킨이 쓴 ‘인생은 사십부터’란 책이다. ‘성인발달심리학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40세 이후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삶의 기술을 담고 있다. 이 책이 75년이 지난 2007년 대한민국에서 번역돼 출간됐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어느 사회에서건 ‘40대의 고민’은 있다. 분명한 것은 경제·사회적인 변화가 급격히 요동치는 사회에서 그 고민의 강도가 더 깊어진다는 것이다. 극심한 사회변화를 겪는 시기일수록, 혼란이 더해가는 시기일수록 40대의 고민은 더 커진다. 미국에서 경제공황기에 40대들이 삶의 방향을 고민했듯이, 한국에서 40대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돌입한 직후부터다.

경제공황기 미국사회의 40대에 대한 고민의 해법을 ‘격려’에서 찾았고, 이 격려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미국에서 출간된 ‘인생은 사십부터’란 책이 5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미국의 40대에 대한 격려가, 75년의 시간이 지난 2007년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할까. 답은 ‘그렇다’이다. 거의 한세기 전의 40대에 대한 격려와 조언은 지금도 꼭 들어맞는다.

경제공황시기에 미국에서 자행된 ‘중년에 대한 대량해고’에 대해 저자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은 온 세상에 불행을 유포하는 일이고, 사회·경제적으로도 손실을 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잘못된 일’이 수십년이 지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는 40대는 어떻게 돌파해야 할 것인가. 75년 전의 미국에서는 40세가 되면 정신과 경험을 활용하는 훈련을 거쳐, 45세에 가까워지면 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직업에서 전환을 시도해 다른 일자리로 범위를 넓혀가야 하는 것으로 탈출구를 찾았다.

# 에너지를 배분한다 = 40대에 접어들면 젊은 시절에 가졌던 에너지의 총량은 감소한다. 대신 경험을 통해 얻어진 현명함이 남는다. 에너지에 충만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긴 하지만, 20대나 30대에서 경륜은 쉽게 얻어지는 법이 아니다. 중년이 젊은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중요한 욕망을 위해 사소한 욕망을 버려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렇게 삶의 태도를 바꾸고 현명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면 스스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것들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된다.

# 감정적 저항을 없앤다 = 나이가 들면 변화를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직업을 바꾸는 데 대한 감정적인 저항은 줄곧 발전을 지연시키고 손해를 낳았다. 예컨대 수작업을 하는 방적공이 직조기 도입에 맞서 싸우는 식이다. 직업이 없어지면 일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다, 뭔가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하지만 ‘잠깐의 실업’을 참아내면 자신의 기술을 새로운 산업부문에 전수할 수 있다.

# 가정에서 삶 자체를 배운다 = 마흔 이후 배움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중년 이후의 배움은 ‘생계’가 아닌 ‘삶 자체’에 대한 것들이다. 삶 자체를 배우는 일이란 교양교육이 아니라 ‘내적인 성숙’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 이후까지 부와 명성과 권력을 추구하는 데 힘을 쏟다가 고되고 단조로운 업무로부터의 유일한 휴식을 술과 여자, 혹은 시시껄렁한 오락 따위에서 찾는다. 이런 삶에서 ‘내적 성장’은 진행되지 않는다.

# 스스로 소망하는 일을 찾는다 = 이런 허다한 격려와 경구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40대들은 진정으로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경구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노후를 보낼 여유자금을 모으는 것과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설사 공감하더라도 ‘그럼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소망하는 일을 찾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 중년의 경구는 경각만으로도 효용성을 갖는다 = 중년의 위기에 대한 경구로 채워진 책을 보며 ‘말이 쉽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때로 이런 책을 들춰보는 것은, 그 경구가 가진 설득력보다, 스스로 ‘인생의 후반전’을 앞두고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효용성이 있다. 경구는 때로 공허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출세하는 법이나 부동산 투자 따위를 가르치는 처세학이나 재테크 경영서보다 더 나은 새로운 삶과 내적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 재테크 기법을 쓴 저자는 억만장자가 아닌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이런 책을 쓴 이들은 적어도 자신의 글처럼 중년을 새로운 삶으로 꾸려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 월터 B 피트킨이 주는 40대를 위한 조언 ]

-일을 가볍게 받아들여라.

-자식에게 매달리는 잘못된 부모 노릇을 그만두라.

-삶을 단순화하고 중요한 욕망을 위해 사소한 욕망을 버려라.

-‘사는 것’과 ‘생계를 꾸리는 것’을 혼동하지 말아라.

-‘살아있는 여행’을 하거나 ‘깊이있는 독서’를 하라.

-삶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라.

-줄어드는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라.

기사 게재 일자 2007-04-03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