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악양)칠성봉 - 구재봉능선의 숲에서…
묵은 솔가리와 낙엽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쌓여져 있었던지
산길은 마치 양탄자를 밟듯 폭신폭신하였고, 비록 미끈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자란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온몸으로 내품는
진초록의 향연은 그 정갈함으로 눈이 시릴 정도였다.
검은 흙과 갈색 낙엽이 깔린 건강한 산길을 흥에겨워 걷다가 가끔씩
고개들면, 초록의 청량함은 짙은 숲향과 함께 나의 온몸으로 들어와
오감을 자극시키고는 산에 들어와 있음의 행복감을 만끽하게 했다.
나의 산행은 길을 걸음외에도 봄으로써 더욱 즐겁다.
노랑제비꽃으로 시작된 봄, 노랑의 향연은 작고 앙증맞은 꽃들로도
모자람이 없었다. 이제 숲은 양지꽃 무리가 그 연약한 모습과는 달리
한참동안 그 노랑의 모습으로 눈길을 붙들어 매겠지…
내 중년의 세월이 어느 날 소리없이 다가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주위를 차지하고 있듯,
진달래와 철쭉은 이미 건강한 가지만으로 그 선홍을 추억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나간 시간들을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그들처럼
자연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에 익숙해지고,
거침없는 시간의 흐름에 안절부절하지 말자고 다짐함도
좋을 일이리라.
지금 숲은 진노랑의 발랄함에서 다소 수줍어지는 듯하다.
이름하여 '미백색' 그 청초함과 우아함의 색으로….
하품하듯 입을 연 애기나리와
통통한 종을 단 은방울꽃,
조금 멋을 내듯 긴 방울을 찬 둥글레가 무리지어 맞이하며
발길을 붙잡고, 나그네의 묵고 찌든 감성에 속삭이듯 부추겼다.
'삶이란 이런 것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거야! 알겠지?'
나는 그저 그들을 닮은 듯 씩 웃음으로서 답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어제는 남보라의 단아한 붓꽃과 보랏빛 뫼제비꽃이
따지듯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나는 어때?’
5월의 산행, 나는 행복에 겨워 고민스럽다.
두류/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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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02년 5월, 하동의 칠성봉-구재봉 능선을
다녀와서 쓴 글인 듯하다.
최근 사정상 산자락을 잘 다녀오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산자락의 봄꽃을 만나고 와서 온갖 찌든 마음을
날려버리던 5년 전의 이맘 때가 생각났다.
심기일전....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것들을 날려버리자는 뜻을 세우자
산이 떠올랐고, 산에 들지 못하자 그 눈물겹도록 행복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런 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야..
힘찬 나날들, 소중한 시간들,
부디 가슴으로 꼬옥 품자...
2007.4.16
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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