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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풍경]

지리산, 마음의 길을 잃다.

 

 

이른 새벽, 두지터로 이어지는 길에 들어서다.  
이 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허정아우의 모습이 밝다. 
  
마을을 지나 내려서면 계곡의 다리를 건너고,
산허리를 에도는 그 길,
오를 때나 내려올 때나 내겐 늘 부담스런 그 길을 걷는다.

뭔가 불안한, 좋지않은 느낌이 속이 부글거림과 동시에 스쳐 지나간다.
설마 조금 전 아우로부터 받아 마신 두어 잔의 막걸리 때문은 아니겠지.

 

 

 

칠선과의 만남은 8년 만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반가움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조금 앞선다. 

예전에는 우리가 골짜기에 몸을 맞추며 그 곳을 다녔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니 좀 놔두자' 하길레
나는 '다 나았다'라는 소리가 들려올 때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칠선은...

나몰래 받아드린 그 수많은 흔적들은 그나마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꽃단장을 하고 있다니... 
그 것은 배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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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선에서의 가장 큰 덕목은 '긴장'과 '겸손'임을 우리는 잘 안다.

폭포 위 갈림길에서 오름길로 결정한 협곡 들머리를 들어서는 느낌은
비장했다.

 

 

 

길없는 길에도 길은 있었다. 약 1000여 미터의 고도를 물길로 올랐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건, 더위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이 염복 더위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땀은 나의 거친 숨소리에 반응하는 그저 몸물일 따름이다.

 

 

 

하염없이 중력을 거스르며 올랐다. 
움직이는 바위, 가파른 물길 옆으로 드리워진 미끄러운 슬랩,
그리고 가끔씩 허옇게 뼈대를 드러내는 구상나무의 주검들...  

 

 

 

진행 방향이 왼쪽에 있는 계곡과 점점 멀어지며
숲 위로 하늘이 드러나는 오른쪽 산자락으로 방향을 틀자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다.
고도계 표고는 약 1600여m, 오름길 운행시간 7시간 째이다. 

제석봉에서 내려서는 날등에 몸을 띄우고 있다.
조금 더 올라 서쪽으로 공간이 트이는 곳에 이르자 
장터목이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소낙비도 가끔씩 지나갔지만 꼼짝도 하기 싫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없는 '느낌의 조각'들을 찾는 일도 포기해버렸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게되면 그 결과는 뻔하다. 
내려서야 하는 일 말이다. 이번에는 그 정도가 좀 심하다.
창암산으로 하산하는 내내 발이 돌부리에 치인다. 

잘록이, 벽송사 2Km...
그제서야 한동안 들춰내지 못했던 그리움 한덩이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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