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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풍경]

지리산 대소골

 

 

▣지리산 대소골

 

도무지 여유라고는 찾을 수 없이 허겁지겁 차를 몰아 도시를 빠져나가는 나의 모습에서 마음으로 굳게 다짐하던 비움의 산행이라는 것은 물 건너 갔음을 느끼다. 어느새 나의 마음에는 그럴듯한 이유들로 무장한 또 다른 집착이 가득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술자리는, 내일 산행코스는, 모레 산행코스는에서 시작한 생각의 굴레는 나는, 누구는, 어떻게, 왜?까지 이르며 끝없이 그 부피를 키우고 있었다.

 

10시 즈음, 뱀사골 산자락 아래의 집단시설지구는 장마와 주말 태풍소식 때문이었던지 조용하기만 한데, 심마니능선 주위로 낮게 드리워진 먹장 구름 뒤의 희미한 달빛은  동네 분위기를 더욱 가라 앉히고 있다.

 

큰 비가 올 즈음 극성을 부린다는 하루살이들의 아우성, 짧은 생이나마 다가올 일을 대비하는 모습은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일출식당 춘식 아우 내외의 모습은 여전히 밝다. 요즈음은 토요일 새벽이 가장 바쁘다며 쪽잠 잘 준비를 하는 아우는, 새벽 3시경, 남원역에 사람을 데리러 가는 일로 일과를 시작해야 한단다.

 

마뜩치 않은 마음을 오래 두어서는 안될 일, 아무도 없는 2층, 모퉁이 방 한 칸에 짐을 풀고는 홀로 술 몇 잔 들이키며 스스로에게 위로와 채근으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비워지는 소주량에 비례하여 끄집어 내는 생각 조각들이 많지만, 음주란 생각보다 순기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잠자리에 든 지 얼마되지 않은 새벽 두 시경,, 휴대폰의 메시지 알람이 울린다.

 

형님 자우? 아직 불 켜져 있네요.

 

아침에나 도착할 줄 알았던 여수의 기훈 아우가 도착한 모양이다. 반가움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듯한데, 언제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면이 부족한 듯, 아침을 먹는 내내 머리가 무겁다.

 

오늘 산행 대상지는 대소골로 잡았다. 4년 전 겨울, 임걸령을 목표로 이 길로 들어섰지만 길을 찾지 못하고 반야봉으로 곧장 오른 적이 있어 시나브로 마음에 두던 길이다. 하늘아래 첫동네로 잘 알려진 심원마을(계곡산장)을 지나 계곡을 좌우로 두며 한동안 잘 이어지던 길이, 계곡 깊숙이 들어선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려 당황하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심원골]

 

천천히 걷자. 산길을 들어서며 아우에게 던진 말이다. 산자락이 온통 축축하게 젖어있는 궂은 날씨였지만, 사진에 조예가 깊은 아우와 셔터를 같이 누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하였고,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걸음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나리]

 

 

 

 

 

[참조팝나무]

 

 

수량이 엄청 불어있는 시원스런 계곡의 모습은 초반부터 발길을 붙잡는다. 처음 계곡을 건너면 정면으로 반야봉 오름길이 있고, 오른쪽 계곡을 끼고 대소골 길이 열려있다. 대소골은 반야봉과 임걸령 사이에 깊이 들어 앉아있는 골짜기, 계곡 본류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길이 예닐곱 번 정도 계곡을 가로지르며 나있으므로 운행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특히 계곡의 바위는 엄청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대소골]

 

고도가 1000m를 조금 넘어선 고사목이 나뒹구는 어지러운 계곡에서 길이 사라져버린다. 계곡을 가로지르거나, 혹은 계곡 옆으로 나있는 희미한 흔적을 따라 진행을 하는데 헤쳐나가기가 만만치 않다. 오른쪽 산자락으로 이어져야 할 임걸령 오름길을 지나친 듯한데, 눈여겨보며 진행을 하였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의 발길이 숲의 희미한 흔적 위를 다져가며 조금은 더 확실한 길을 만들어나간다. 고도 1200m를 조금 넘기고 왼쪽 반야봉의 둔중한 산자락이 눈에 들어올 즈음, 오른쪽 산사면으로 붉은색 리본하나가 눈에 들어오는데, 오름길도 비교적 뚜렷하다.

 

계곡으로의 진행을 망설여보지만 이 방향으로는 반야봉으로 향하게 된다. 오늘의 목표지점은 임걸령이니 일단은 주능선 방향으로 오르기로 마음을 정한다. 리본이 이끄는 오름길을 약 150여m 정도 올랐을까, 우리는 설마 하던 지독한 산죽밭을 만나 온몸으로 하는 산행의 진수를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게 된다. 진퇴양난, 옴짝달싹 못하며 리본의 주인을 나무라보지만 실소만 더할 뿐이다. 하지만 주능선 방향의 훤히 트인 공간이 아주 가까워졌다. 산죽과의 힘겨운 겨룸 끝에 주능선에서 흐르는 작은 지능선을 만나고, 너른 산사면의 부드러운 괴발딱지밭을 기로지르니 노루목-임걸령 사이의 주능선에 닿는다. 

 

이름하여 빨치산 산행, 산죽밭을 불쑥 튀어나온 두 사람의 몰골이 참으로 볼만했을 것인데, 배낭과 옷이 흙투성이인 내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반야봉으로 향하려는 아우에게 점심을 먹고 가자는 이유로 임걸령으로 방향을 돌리게 하고, 노고단대피소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다.

 

 

[임걸령]

 

날씨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주능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꿩의다리, 지리터리풀, 노루오줌, 참조팝, 기린초 등이 허전하던 산자락에 꽃을 피우며 수놓기 시작했다. 꽃망울을 머금은 꽃대를 세우고 있는 비비추의 모습에서 휘파람 불며 걷던 꽃길을 그려본다. 

 

 

 

[노고단고개]

 

 

[코재에서 바라본 종석대]

 

짙은 개스가 노고단 주위를 덮쳤다 사라졌다 하는 사이, 가끔씩 가는 빗방울도 뿌려댄다. 심원으로 내려서는 길을 포기하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제법 굵은 빗방울이 뿌려대기 시작한다.       

 

 

                                                           2006. 7. 8 두류/조용섭

    

 

[대소골 코스]

대소골은 지리산 북서자락인 반야봉과 임걸령 사이의 협곡을 일컬음인데, 하늘 아래 첫 동네로 잘 알려진 심원마을이 그 들머리이다. 인적 드문 짙은 원시림과 때묻지 않은 깊은 계곡이라 가끔씩 지리산 매니아들이 반야봉, 혹은 임걸령으로 오르는 길을 연결하기 위해 찾는 정도의 길로 그리 잘 알려진 곳은 아니다. 특히 임걸령으로 오르는 길은, 1000고지를 전후하여 진행방향 오른쪽 산사면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듯하다. 두 번에 걸친 산행으로도 임걸령 오름길을 놓친 이유는, 길 자체도 뚜렷하지 않지만, 계곡을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뚜렷한 길이 있는 곳에 오른쪽 오름길이 있어 지나쳐버린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대소골 코스는 지정등산로가 아니고 안전시설도 없는데다가 산길마저 희미해 그리 권하고 싶은 코스는 아니며, 특히 계곡을 건너는 길이 많아 여름철 산행에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참고로 심원마을은 성삼재를 넘어선 북쪽에 있어 전북 남원 산내면의 마을로 생각하기 쉬우나 전남 구례 산동면 좌사리의 마을이다. 반야봉에서 가지를 쳐 심원마을 북쪽으로 흘러, 심원-달궁으로 이어지는 물길에 몸을 적셨다가 다시 만복대로 이어지는 지능선으로 도경계(전남-전북)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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