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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마루금]낙동정맥 구간종주 제17구간 답사일지

마루금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구간종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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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간명 : 제 17구간(남사고개(마치재)-아화(경부고속도로))(도상거리 약14.9Km)

(코스) : 남사고개-<1.5Km>-남사봉(471봉)-<2.6Km>-할미당재-<1.0Km>-316.4봉
-<4.0Km>-관산(393.5)-<3.0Km>-294.9봉-<0.7Km>-만불산(275)-<1.0Km>
-4번 국도-<1.1Km>-경부고속도로(아화:상추)

2. 일 시 : 2002. 2. 23(일)
3. 소재지 : 경북 영천시 고경면.북안면, 경주시 현곡면.서면
4. 날 씨 : 흐린 후 맑음
5. 참가자 : 제환상,이귀선,조용섭,장병천,이용면,이영숙,박철보,김현을,이상 8명
6. 산행형태: 당일/워킹 종주산행
7. 도엽명 : 1/50000:경주(慶州)(NI52-2-06)
8. 교통편 : 자가승용차 2대.
9. 운행시간표(후미기준)

- 2.10(일) 07:00 부산집결/원동I.C/양산합류
아화에서 아침/택시로 마치재 이동
09:40 마치재
09:48 산행시작
10:29 남사봉(471봉)/휴식
11:39 출발
11:15 무덤/휴식
11:29 출발
11:42 할미당재/도로(콘크리트 포장)
12:03 316.4봉/휴식
12:13 출발
13:06 무덤/휴식
13:17 출발
13:44 안부/통과
14:14 관산(393.5봉)/삼각점/중식/휴식
15:17 출발
15:41 320고지/휴식
15:47 출발
16:19 294.9봉(목장 뒤 도로)
16:26 도로 곡각점/휴식
16:34 출발
16:43 만불산(275봉)
17:11 4번 국도
17:25 161봉
17:45 경부고속도로(고속도로 옆 아화리 상추마을 시멘트도로)/
산행종료


10. 후 기

가. 17구간의 마루금길.

이번 구간은 도상거리 14.9KM로 비교적 짧은 거리이고, 답사기점 접근도 용
이해 당일산행으로 계획을 잡았다. 늘어난 답사일정을 만회하고, 답사참여가 수월치
않은 대원들을 참작, 1박2일 코스로의 답사거리 조정도 고려했으나 어차피 다음 구간
(아화-땅고개:도상거리 14.8Km))까지의 두 구간을 묶기에는 무리이고 또 답사기점 및
종료지점의 차량이동 편의성을 감안, 17.18 양 구간은 각각 당일로 답사하고, 그 후부
터 계속 1박2일로 답사하여 남은 구간의 답사횟수를 줄여보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번 구간의 마루금길은 영천 고경면과 경주 현곡면 사이에 있는 마치재(남사고개)에
서 출발, 관산을 거쳐 만불산을 지난 뒤, 경주시 서면 아화리의 상추마을 경부고속도
로까지 진행하게 된다. 마치재 바로 지난 남사봉(471봉)에서 경주시 서면이 현곡면에
이어 마루금 좌측 자락을 떠받치게 되며, 마루금 우측자락의 영천시는 관산 오름길 약
500미터(도상거리) 못미친 약 320고지 능선에서 우측으로 가지쳐진 능선을 경계로 북
안면이 산자락을 이어 받게된다.

마치재 지난 남사봉(471봉)이 최고봉일 정도로 낮은 구릉지대로 이어지는 이번 구간의
마루금은 만불산(275봉)을 지나면서 답사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공장지대로 파헤쳐진
모습을 만나게되며, 또 큰 도로(4번 국도, 경부고속도)와, 철도(중앙선)가 마루금을
가로지르며 지나갈 뿐 아니라, 마루금상 과수원이 자리잡고 있어 낙동정맥이라는 이름
을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였고, 공장지대 부근의 철조망을 비켜가며, 파헤쳐져 외래종
잡풀등이 무성한 황폐해진 마루금을 진행하는 동안 가슴 한구석이 휑하니 뚫리는 듯한
서글픔이나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만불산에서 아화 경부고속도까지 이어지는 이번 구간 후반부의 마루금길은 답사 前 지
형도를 보며 선을 잇기도 힘들었지만, 실제로 지금까지의 진행구간중 독도가 가장 어
려운 곳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줄곧 모여서 매달려져 있던 시그널도 드문드문 제각
기 흩어져 있는 것은 답사팀마다 다른 길로 진행하였을 가능성이 많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뭉게진 능선 위에서 이리저리 살피며 정맥길을 찾아 진행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렇다
고 마냥 답답해하고 서글퍼할 수 만은 없는 일이었다. 바로 우리의 치열한 삶의 터전
이 산자락 주위는 말할 것도 없고, 마루금상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며, 많은 사람
들이 터잡고 살아가는 남은 구간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나. 길 위에서 길을 잃다.

오전 7시, 부산팀과 서울에서 야간열차로 내려온 산유화가 반여동 원동I.C에
집결하는 사이,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수고스럽게도 병천이 양산에서 차를 몰고 왔다.
2차 집결지인 양산의 고속버스 간이 정류장에는 이미 현을의 차가 도착해 기다리고 있
다. 지금까지 낙동정맥 구간답사 차량운행을 하던 영목은 당초의 약속대로 지난 구간
을 마지막으로 운행을 종료하고 이제부터는 대원들의 자가용 차량 2대를 번갈아가며
운행키로 한 것이다.

뿌연 대기에 하늘은 맑지 않으나 포근한 날씨이다.

경부고속도로의 건천 I.C에서 빠져나온 차량은 건천읍으로 들어와 4번 국도를 만난 후
좌회전하여 동북방향에 위치한 경주시 서면 아화리로 향한다. 4번 국도와 중앙선 철로
가 지나가는 아화는 경주시 서면의 면소재지이다. 아침 식사를 거른 사람을 위해 아화
역앞 기사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식당 주인아주머니의 후한 인심도
좋았지만, 이 식당의 숭늉은 아침식사를 대용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재료를 넣어 영양
도 풍부한 것 같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또 크고 아름다운 향나무가 있는 양조
장집에서 구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었던 것도 말 그대로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아화(阿火)...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마루금자락 모든 마을 이름의 유래를 다 알
수는 없겠으나 특이한 이름에 갈수록 궁금증이 더해져 이리저리 경주와 관련된 여러
싸이트를 살피다가 '남산연구소(www.kjnamsan.com)'라는 잘 만들어진 경주관련 홈페이
지를 방문해 질문을 하여 보았다. 이 곳의 운영자인 '남산구석'님께서 친절하게도 답
변을 보내왔는데, 뜬금없이 보낸 질문에도 소중한 답변을 보내주신 남산연구소의 지킴
이님께 감사드리며 그 글을 소개한다.

'아화(阿火): 다른 이름 - 아불,아을,아울(阿鬱)
약 300년전 平海 黃氏가 이 곳을 개척했다고 하는데 그 때 마을 앞에 큰 언덕이 있어
답답했다고 하여 이름을 아울(阿鬱)이라 하였으며, 그 후 수리시설이 좋지 않아 농사
를 짓지 못했습니다. 하절기에는 초목이 고사할 정도로 한해(旱害)가 심했다 하며,
이 때 언덕에 불을 지르면 꺼지지 않고 불이 계속 탔다하여 아화(阿火)로 바꾸게 되
었다 합니다. 현재는 개척자인 평해 황씨의 후손은 전혀 없고, 200여 가구가 살고 있
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조선시대 역(驛)이 있었다고 하여 역촌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서라벌 명감:1988.황성족보도서관에서 발췌)'


식당부근에 차를 주차시키고 오늘 산행기점인 마치재까지 우리를 실어다 줄 영업용 택
시를 부르니 금방 2대가 온다(아화-마치재 요금 18,000원). 마을 뒤의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지나 조금 진행하다보면 차는 넓디 넓은 저수지 옆을 지난다. 심곡지(深谷
池)이다. 1931년에 계곡물을 막아 완성한 저수지인데, 면적은 약 16만평이고 붕어낚시
터로 유명하다고 한다. 택시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이곳에 나루도 있었다고
한다. 산자락 깊숙이 나있는 길이지만 차량통행이 생각보다 많다.

09:40 마치재(남사고개) 도착
09:48 산행시작. 부산을 출발할 때 뿌옇든 대기와는 달리 하늘은 환하게 열렸다.
억새덤불속으로 난 산길로 접어든다. 잠시 진행하면 갈림길 지나 억새가 무성한 사면
을 빙 둘러가는 마루금의 모습이 보이고, 진행길 좌우측으로 경운기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큰 길이 나있다. 낮은 봉우리를 통과하여 남사봉(471M)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아주 잘 나있다. 오른쪽 산자락 아래에서 개짖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10:29 남사봉(471봉)도착. 오늘 구간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다. 이 남사봉은 경주와 영천의 3개면이 갈라지는 곳인데, 영천의 고경
면, 경주의 현곡면과 서면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지난 구간 어림산을 내려오며 잠
시 맞이하던 현곡면은 이곳에서 서면에게 길을 인계한다. 그리고 이 마치재 바로 아래
의 현곡면 남사리와 인접해 있는 가정리는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선생의 고향마
을이라고 한다.

동학의 큰 불길은 전라도에서 활활 타올랐고, 그 요원의 불꽃은 외세의 방해로 결국
東進하는데는 실패하였지만, 그 불씨는 이 곳 경주에서 시작된 셈이다. 우리 역사의
흐름에 큰 획을 그었던 그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파격적인 혁명의 불길은 동서를 넘
나들며, 또 아우르며 그렇게 타올랐던 것이다.

남사봉에서 마루금은 다시 위도를 북으로 올리며,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기 바쁜 나그
네들의 발길을 잠시 北으로 떼민 후, 내륙(서)쪽으로 진행하게 된다.

서로 한걸음, 한걸음씩 비켜서서 하늘바라기를 하며 훤한 숲을 이루던 참나무숲은
이제 잘 보이지 않고, 진달래, 철쭉등의 키낮은 나무들이 앞다투어 산길로 가지를 내
밀고 있다.

흙길은 언땅이 녹아 질퍽이며 걸음걸음마다 한움큼씩 흙이 달라붙고, 낙엽길에는 그
아래로 잔돌이 많이 깔려있다.

10:45 너른 무덤터를 통과하면 보드랍고 벌건 황톳길 임도를 지나고 한동안 하늘이 열
린 키낮은 나무숲의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고도를 낮춘 마루금길보다 진행방향의 왼
(서)쪽에 서있는 인내산(533M)과 남쪽의 구미산(594.1M)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훨씬 높
다. 마루금은 이 인내산을 중심축으로 빙 둘러가게 되는 모습이다. 인내산과 낙동마루
금 사이에 들어앉아 있는 분지에는 축사인듯한 건물이 있는데 그 쪽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들린다.

산골 오지의 축사에서 들려오는 'The young ones'라는 오래된, 아주 신나는 팝송...
그 음악이 더 많은 젖을 얻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자 더 이상 즐겁지
만은 않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취하려하는게 아닐까?

임도를 지나 약 10여분 진행하면 우측으로 남사고개에서 내려오는 도로가 얼핏 보이고
산자락 아래로는 건물들이 보인다. 그 유명한 황수탕이다. 영천시 고경면 덕정리에 있
는 황수탕은 유황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위장병등에 효험이 있다 한다. 돌우물속에서
솟아나는 물은 누런 빛이 나는데, 비위 약한 사람은 마시기가 힘들 정도의 맛이라고
한다. 그 물로 닭을 길러 만든 닭백숙이 유명하다는데 위장병,피부병등에 효험이 있다
고 널리 알려져 있다. 낮은 마루금 좌우로 산자락으로 내려서는 길이 많이 나온다.

11:01 310봉 도착. 좌측 산자락 아래로 드문드문 집과 축사인듯한 시설물들이 보이는
데 한결같이 파란색 지붕 일색이다. 인내산지(못)옆 낮은 봉우리를 통과하여 267봉
바로 앞 무덤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정서(正西) 방향 멀리로 봉우리 2개가 이어
지며 모자(관)의 특이한 모양을 한 관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11:29 출발

참호처럼 파여진 길이 좌우로 이어지며 마을로 내려가는 마루금길에는 돌을 쌓아 놓았
다. 267봉으로 금방 오른다. 바로 우측에 보이는 마을은 덕정리의 청석골이다. 잘 손
질해 놓은 무덤있는 곳에서 안부로 내려서게 되는데, 콘크리트로 포장된 좁은 도로가
나온다. 할미당재이다. 무덤쪽에서 이 곳을 내려서는 산사면은 좁은 계단식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11:40

도로를 건너 다시 산자락으로 오르니 마루금을 따라 큰 무덤들이 줄지어 있는데 관리
가 잘 되지 않아 흙이 드러난 봉분이 많다. 남향을 하고 있는 이곳은 여강 이씨의 선
산인 듯하다.

모처럼 소나무숲과 낮은 봉우리를 지나면서 느껴지는 은밀한 기운이 있다.

산자락에는 어느새 봄기운이 살그머니 들어와 땅과 풀과 나무들에게 무언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나누고 있고, 포근한 햇살이 내려앉는 황갈색의 산자락에는 여유로움이 넘쳐
흐른다. 쉬엄없이 다가올 계절을 준비한 대자연은 이제 곧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주체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한바탕 봄잔치를 벌이겠지....

숨을 크게 들이키며 꿈틀거리는 봄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12:03 낙엽이 미끄러운 사면을 올라 316.4봉에 도착한다. 삼각점(1982 복구,경주412)
이 있다. 남사봉에서 위도를 북으로 올리던 낙동마루금은 이 봉우리에서 西進하며 내
륙으로 방향을 틀게되는데, 왼쪽으로 방향을 꺾어 진행하게 된다. 봉우리 우측(동쪽)
으로도 내려서는 산길이 나 있는데, 고경면 칠전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고경면의 여러
마을들과 지난 구간답사시 마루금 곁에 따라오던 고경저수지가 북동쪽, 그리 멀지 않
은 곳에 있다. 위도를 올리며 빙 두른 탓이다. 휴식 후 출발. 12:13

마루금길은 아주 너르고 평평하게 잘 나있다. 가끔씩 길이 휘어지기도 하고, 봉우리와
안부를 몇 번 지나게 되지만 길은 잘 이어진다. 진행방향 좌측에서 아까부터 따라오던
인내산의 방위는 이제 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바뀌어져 있고, 그 곳 산자락 아래로 저수
지와 천막,차양막을 친 시설들이 보이는데 마채마을 부근의 참못지인 듯한다. 이곳도
낚시터인 모양이다. 이번 구간의 산자락 아래로도 크고 작은 못들이 참 많다.

12:29 낮은 봉우리를 통과하여 좌측으로 내려가는 소로가 보이는 곳에서 마루금은 우
측으로 방향을 틀고, 키 낮은 소나무 가지가 슬슬 시비걸듯 진행을 방해하는 산길은
좁은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다시 올라선 마루금길은 솔가리와 참나무 낙엽이 무성하게
깔린 폭신폭신한 길이 이어지고 평평하여 오솔길처럼 걷기가 좋다. 무덤 4기가 나란히
누워있다. 가끔씩 만나게되는 소나무숲을 진행할 때에는 꺾인 나무가지가 불쑥불쑥 드
러나는데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12:46 소나무숲 지대를 지나면 큰 무덤이 나오고 좌측 지능선이 에워싸며 큰 골짜기를
이룬 모습이 보인다. 낮은 봉우리를 지나 사방이 트인 길이 나오면 10시 방향에 있는
관산을 향해 우측으로 빙 두르며 길이 진행된다. 특징없는 산길을 걸을 때 좌표로 삼
던 무덤들이 이 곳에는 너무나 많다. 약 10분여 진행하여 훼손된 무덤을 지나면 산길
은 정서방향으로 향하고, 산자락 아래 좌우측으로 도로가 보인다. 이상하게도 오른쪽
영천의 땅들은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마사토로 된 평평한 봉우리를 지나면서
마루금은 거의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관산으로 향한다. 좌측 산자락 아래로 저수지
와(아곡지) 마을들이 보인다.

13:06 가족묘인듯 무덤이 일렬로 쭉 누워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특이한 모습의
관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인 듯하다. 깨끗하고 짙은 소나무숲이 싱그럽다.13:17 출발.

오래되고 훼손된 무덤이 있는 곳에서 고사목이 있는 오른쪽으로 길이 열리는데 그 무
덤의 주인공은 淑人 파평 윤씨이다. 淑人이라는 칭호는 조선 때, 정삼품 당하관과 종
삼품 문무관의 아내인 외명부를 일컬음이다. 세월의 흐름은 많은 것을 얻게도하지만
또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게도 한다. 이 무덤은 이제 누구도 찾지 않는 듯하다. 오른쪽
길옆에 있는 오래된 고사목은 낮은 산에 있는 것 치고는 그 모습이 의연하고 또 특이
한데, 돌보지 않는 이 무덤이 안스러워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하고 있는 것일까?

13:27 진행방향의 좌우로 길이 나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면 우측 영천쪽으로 골안
재로 넘어가는 도로와 시설물이 보이다가, 좌측 사면을 트래버스하여 길이 진행된다.
마루금 우측 영천은 저 곳 골안재로 흐르는 능선을 경계로하여 고경면과 북안면이 갈
라진다. 다소 좁은 숲길에 머리를 숙이고 진행하는데 배낭이 자주 걸린다.

13:39 능선턱 통과.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턱으로 오르기전, 직진하는 방향으로도
길은 잘 나있는데 아마 내려서는 길인 듯하다. 그리로 진행하던 귀선누님과 청류가
바로 사면을 치고 올라와 능선에 합류하는데, 선두로 진행하던 병천도 그리로 갔다가
되돌아왔다고 한다. 산길 진행에 주의를 기울여야할 지점이다. 이쪽의 산자락은 유달
시리 푸른 소나무숲이 많아 황량하던 겨울산과 아주 대조를 이루며 상큼한 활력을 불
어 넣어준다. 마루금의 지능선으로 흐른 산자락에도 역시 소나무숲이 짙다.

우측으로 밋밋하게 흐르는 능선이 영천의 고경면과 북안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인
듯하다. 13:44

관산 오름길... 짧지만 무척 힘이 드는 길이다. 말 그대로 코가 땅에 닿일 만큼 급경
사를 이루고 있는데, 땅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낙엽과 검은 흙 밑으로 언 땅을
감추어 놓아 몹시 미끄럽다. 찰진 철쭉,참나무의 가지가 확보선이다. 하지만 손에 잡
힌다고 너무 마음을 놓다가는 바로 미끌어진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올라선다.

바로 이 때 휴대폰이 울린다. 선채로 두 손은 나무를 붙잡고 있어 전화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관산앞에서 관산과 그 모자모양의 평평한 능선을 이루는 385봉에 올라
휴대폰을 열어보니 '산'이의 전화다. 삼정산 문수암에서 우리가 힘들게 오를 시간을
짐작해 전화를 때렸다는데, 여태껏 전화한 것 중에 가장 성공적으로 쏜 셈이다.14:06

오늘 지나 온 길을 조망해본다. 200-300고지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은 마치 거대한 고
분처럼 마루금을 일구며 달려오고 있고, 산자락 아래의 저수지는 하늘과 숲을 고즈넉
히 머금고 있다. 우측 2시 방향으로는 영천 북안면의 마을들이 모처럼 시야에 들어오
고, 좌측으로는 아화를 출발하며 지나오던 심곡지가 처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14:14 관산(393.5M) 도착. 385봉에서 관산 정상부까지는 평평하게 이어진다.관산 정상
부에는 큰 무덤이 자리잡고 있고, 황당하게도 삼각점이 무덤에 박혀있는데, 아마 명당
자리를 찾아 삼각점을 비켜가며 묘터를 잡았나보다 마치 사람의 몸에 무엇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기에도 아주 흉하다.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이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포근하고 나른한
봄 산자락에서
한잠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늘 그러하듯 쫓기듯 길을
떠나야만 한다. 15:17 출발

진행방향의 우측으로 길이 잘 나 있어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평평한 분지로 내
려선 안부는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다. 왼쪽 사면을 가로지르며 나있는 좁은
길로 진행하니 관산 정상 무덤앞에서 바로 내려서는 능선을 만난다. 좌측 산자락 아래
로 심곡지의 모습이 점점 너르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15:25

310고지의 능선턱을 지나면 방위각 약 250도 정도로 방향이 꺾이며 진행되다가, 봉우
리를 통과하면 좌측의 심곡지는 그 너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고, 마루금은 경사가
심한 마른 땅의 내리막길로 이어지다가 밤나무단지 위의 안부에 도착한다.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고 숲도 어수선하다. 오늘 점심을 모두 너무 많이 먹었기 때
문인지 밤나무단지 바로 위의 320고지로 오르자마자 이구동성으로 휴식을 취하자고
한다. 15:41

15:47 출발.
심곡지를 좌측에 두고 진행하는 산길은 큰 굴곡없이 잘 연결되다가 최근에 조성한 듯
한 석등까지 있는 호화분묘를 오른쪽에 만난다. 공직에 계셨던 분의 무덤인데 밀양
박씨 묘다. 이 곳 산자락에 있는 묘의 주인들은 밀양 박씨가 대부분이다. 전방으로는
무덤을 조성하느라 낸듯한 너른 길이 이어지는데 정맥길은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숲을 들어서면 나무를 다 베어내고 조성한 역시 밀양 박씨 가족묘를 만나고 잠시 내려
서면 조금전 큰길로 진행하던 길과 만나게 된다. 16:05

뜻 밖에 제 몸을 다 채운 달이 파란 하늘에 우두커니 떠 있다.

경운기나 사륜구동차가 충분히 다닐 만한 너른 길이 이어지는 저 앞으로 목장이 보인
다. 마루금상에서 큰 시설물을 만나니 긴장감이 느슨해진다. 길은 마루금 바로 왼쪽으
로 쭉 나있다. 마루금이 이어지는 오른쪽 숲속은 잡목으로 빽빽하고 어지러워 진행하
기가 쉽지 않겠다. 검은 비닐이 밭을 덮고 있는 목장 입구에 진입하자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목장의 아주머니를 만난다. 인사를 하니 몹씨 수줍어하신다. 16:15

목장에 접어 들면 축사등 건물이 있고, 목장옆으로 나있는 콘크리트 포장길로 오른다.
길 좌측으로는 누렇게 말라있는 수확하지 않은 무우들이 그대로 밭에 방치되어 있다.
오른쪽의 건물앞에 사료를 만드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고, 아저씨 한 분이 그 앞에 계
시길레 인사를 하고 여쭈어보니 그 축사는 양계장이라한다. 건물안에는 쌓아놓은 계란
판들이 많이 보인다.

16:19 능선에 올라선 듯한 곳에는 봉우리는 없고 콘크리트로 된 임도만 있다.다만 작
은 흙더미로만 남겨져 있는 그 곳이 294.9봉이라고 짐작만 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
어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고압전력까지 끌어들인 큰 목장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겨우 양계등으로 명맥만 유지하는 듯하다. 좌측 사면은 과수원이 들어서 있다. 좌측
저 멀리로 영천시 북안면 만불사에 세워진 아미타 영천대불이 우뚝 서있는 모습이 보
인다.

16:26 도로가 능선을 지그재그로 빙 돌며 이어진다. 방향이 아주 심하게 꺾이는 곡각
지점에서 휴식을 취한다. 가끔씩 숲사이로 난 시그널이 보이는데 우리는 그냥 도로로
진행하기로 한다.

16:34 출발. 이내 우측의 영천군 북안면 사근리와 좌측의 경주시 서면 시모골로 내려
서는 안부에 도착한다. 왼쪽 시모골로는 목장에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내려
가고, 우측 영천쪽으로는 너른 산길로 나있다. 정면의 산자락으로 바로 올라선다.
형태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큰 짐승이 후다닥 소리를 내며 놀라 달아난다.

16:43 275고지. 만불산 도착. 떡갈나무숲이 훤하다. 정면으로 못이 보이는데 만불사
부근에 있는 용천지인 듯하다. 서쪽으로 내려서는 해에 유리처럼 반사된다. 봉우리에
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면 곧 무덤이 나오고 전방 먼 곳에서 차 지나가는 소
리들이 갑자기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난 후 산길을 걷던 우리는 전방의 훤한 마루금의 모습에 당황하
게 된다. 마루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나마 곧장 진행할 수 없도록 철망으
로 막아 놓았다. 철망 왼쪽으로 난 평평한 길을 걷다가 만나게되는 산자락을 보고 모
두들 할 말을 잊는다. 철망이 쳐진 너른 평원을 지나자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어이없
게도 공장지대이다. 공업단지로 지정되어 이제 개발이 시작된 지가 얼마되지 않은 듯,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는 곳도 있고, 건물을 짓는 곳도 많다.

오른쪽 너머의 산자락으로는 북안면 고지리 만불사의 거대한 立佛像인 영천대불이 돌
아서 있다. 아미타 영천대불이라는 이름의 이 불상은 1995년에 조성되었는데 높이가
33M이고, 인조석에 표면도금 처리를 하였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그 규모가 크다.

산자락에 들어와 있는 공업단지의 공장과 거대한 석불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16:55 공장옆 무덤 통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한창인 이 공장의 왼쪽 뒤로 진행한
다. 그러는 사이 왼쪽 잡목더미에서 꿩 한마리가 푸드덕하며 날아간다. 파헤쳐져 버려
진듯한 산자락에는 억새와 비슷한 모양이나 대나무처럼 단단한 이름 모를 낯설고 음침
한 누런 잡초(목)가 무성하다.

경작금지 푯말이 서있는 잡초가 무성하고, 황량한 산자락을 지나면 소나무숲이 나오고
숲이 끝나는 지점의 도로앞 절개지를 내려서면 골재를 야적해 놓은 4번 국도옆 공터를
지난다. 고속도로앞의 161봉을 진행방향으로 잡고, 4번 국도와 중앙선 철길을 지나 바
로 앞에 있는 마을(하추)로 접근하는데, 진행방향의 오른쪽에 있는 고도가 조금 높아
보이는 지점에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이미 잘려나간 마루금길을 진행함에 있어, 그리
큰 의미는 없는 듯해서 마을 중간으로 난 포장길로 곧장 들어선다. 17:11

마을 입구의 사과나무 과수원옆 길을 따라 오르니 개사육장이 나오는데, 엄청 많은 개
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뛰쳐나올듯 날뛰며 짖어대기 시작한다. 갑자기 조용하던 마을이
소란스러워진다. 탱자나무 울타리 왼쪽의 오르막 산사면에 있는 과수단지를 가로질러
161봉을 오른다. 161봉 왼쪽 산자락으로는 젖소 목장이 있고, 초지에 있는 젖소들은
낯선 나그네에게 무심한 눈길을 보낸다.

17:25 완만한 경사의 161봉을 내려서면 움막이 나오고 고구마밭이 나온다. 전방으로는
복숭아 과수원이 있고, 우측으로는 통신중계탑이 우뚝 서있다. 과수원의 왼쪽 가장자
리로 진행하면 그대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은 규모가 작은 공동묘지로 연결된
다. 계속 과수원의 옆으로 진행하여 통신중계탑 앞에서 좌측으로 돌아 진행하면 산자
락이 나온다. 마루금인듯한 능선은 전체가 복숭아 과수단지로 조성되어 있다.

17:40 당황했다. 마루금이 사라져 버렸다. 이리저리 진행방향을 한참 동안 살피며 의
논을 한 결과, 환상은 복숭아 과수단지를 그대로 가로질러 진행하자고 한다. 시그널도
드문드문 달려있다. 복숭아나무에는 벌써 가지치기가 끝나있고 움막에는 기척이 없다.

길위에 서서 길을 잃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무표정하고 메마른 금속성 소리는 더욱 거세어지며, 길을
잃은 나그네의 마음은 무엇엔가 쫓기는 듯 더욱 허둥거리게 된다.

17:45 고속도로옆 상추마을가는 도로도착. 고속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나있는 좁은 콘
크리트 포장도로의 우측으로 진행하니 아주 작은 못이 나온다. 이 못의 물이 흐르는
방향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못의 물이 왼쪽(東)으로 흘러 형산강으로 들어간
다면 정맥길은 그 못 뒤(서쪽)의 영천과 경주의 경계가 될 듯한 또 다른 능선이 낙동
정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지형과 고도상 이 못의 물은 왼쪽으로 넘어 올 수는 없을
듯하다. 지나가는 마을어른이 있어 동네를 확인하니 마을 전체의 이름은 추곡이고,
안쪽 마을은 하추, 우리가 있는 곳은 상추마을 입구라 한다.

대장과 현을이 우측의 작은 못(池) 뒤, 능선으로 올라가서 살펴본 결과 우리의 진행길
이 맞다는 최종적인 결론은 내리고 이번 구간답사를 이곳에서 종료하기로 한다.

아직 남은 빛을 이글거리는 태양의 기세가 여전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낮부
터 보이던 달의 기세도 만만치가 않다.

조금 전 도로로 내려서던 곳으로 되돌아와 아화방향으로 조금만 진행하면 고속도로 밑
을 지나가는 통로가 나온다. 차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이다. 정맥길이 지나가는 고속도
로를 걸어서 지나갈 수 없으니, 이 통로가 다음 구간의 답사기점이 될 곳이다.

고속도로 바로 옆을 걸어가는 일도 참으로 특이한 경험이다.
무슨 바쁜 일이 그리도 많을까?...쏜쌀같이 내달리는 차들을 보며 참으로 한가한 생각
을 해본다. 문득 지난 해, 고속도로 갓길을 신나게 달리던 산이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오늘 아침 차를 주차시켜놓은 곳으로 되돌아오니 아침에 들렀던 식당과 양조장은 이미
문을 닫았다. 경주쪽 방향으로 아화역 조금 지난 곳의 청조식육식당에서 뒷풀이로 이
번 구간을 마감한다.


다. 17구간을 마치며.

이번 구간의 마루금길은 낮은 구릉지대로 연결되나 구간초반에는 그리 진행
에 힘든 곳은 없다. 다만 목장지대를 만나면서부터 포장도로를 지나 만불산에 오른 뒤
고속도로를 만나는 곳 까지의 마루금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산자락이 잘려 나가 마루금
이 사라져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잘려나간 능선 위에서 길을 찾기란 황당한 일이기는 하였지만 그 만큼 낙동정맥의 자
락이 우리의 삶과 가까이 하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자, 허물어진 산자락만 보고 답
답해 할 수 만은 없었다. 다만 자연과 살아있는 모든 것과의 공존을 이룰 수 있는 지
혜로움을 우리들이 어떻게 깨우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뱅뱅 돌 뿐이었다.

(기록/정리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