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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마루금]낙동정맥 구간종주 제19구간 답사일지

마루금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구간종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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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간명 : 제 19구간(땅고개 - 와항재:도상거리 약 24.1Km)
(코스) : 땅고개-<2.0Km>-단석산 갈림길-<1.0Km>-652봉-<0.6Km>-방주교회
-<2.0Km>-535봉-<1.2Km>-야영장(1박):6.8Km

야영장-<0.8Km>-605.1봉-<1.5Km>-535.1봉-<2.0Km>-700봉-<1.1Km>
-700.1봉-<0.6Km>-소호고개-<3.0Km>-백운산-<2.0Km>-692.7봉
-<2.5Km>-고헌산-<0.9Km>-1034.8봉-<1.9Km>-와항재-<1.0Km>
-산내 와항마을 : 17.3Km

2. 일 시 : 2002. 3.16(토)-3.17(일)
3.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건천읍,산내면,내남면. 울산 울주군 두서면,상북면
4. 날 씨 : 맑음
5. 참가자 : 제환상,이귀선,조용섭,이용면,손화일,이영숙,박철보,김현을 이상 8명
6. 산행형태: 1박2일/야영/워킹 종주산행
7. 도엽명 : 1/50000:경주(慶州)(NI52-2-06), 언양(彦陽)(NI52-2-13)
8. 교통편 : 자가승용차 2대.
9. 운행시간표(후미기준)

- 3.16(토) 17:20 땅고개 도착
17:23 땅고개 출발/산행시작
17:51 662봉
18:08 단석산 갈림길
18:13 이정표/무덤
18:24 652봉
18:35 방주교회/조각공원/OK목장
18:45 휴식
18:51 출발
18:55 512봉/통신중계탑
19:20 갈림길
19:39 야영지 도착/폐농장 시설물
11:08 취침

- 3.17(일) 06:00 기상/조식
08:10 출발
08:26 605봉/우회
08:45 윗상목골 임도
09:09 임도
09:35 헬기장(폐쇄)/휴식
09:46 출발
10:27 700.1봉/삼각점/휴식
10:42 출발
10:56 소호고개
11:07 암봉(638.5봉)
11:40 암봉/휴식
11:54 출발
12:40 백운산(901M)
13:13 692.1봉
13:30 경작지/중식
14:33 출발
15:13 삼각점
15:19 고헌산(1032.8M)
15:30 1034.8봉/휴식
15:49 출발
16:25 와항재/도로
16:33 산내고개/산행종료



10. 후 기

가. 19구간의 마루금, 울산땅을 밟으며 영남알프스를 마주하다.

이번 구간에는 모처럼 토요일 오후에도 운행을(약 6.8Km) 한 후, 마루금 가까이 차량
접근이 가능한 곳에서 야영을 하고, 다음날 도상거리 약 17.3Km를 운행하는 1박2일 야
영산행을 실시키로 하였다. 야영은 당초 차량이동이 가능한 산내면 내일리의 윗상목골
에서 하려 하였으나, 토요일 집결이 늦어진 관계로 이를 수정, 운행거리를 조금 단축
한 O.K그린(옥방)목장까지 운행을 하고, 그 부근에서 야영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목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거의 마루금까지 이어지며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있고, 또
노면상태도 양호해서 차량이동이 아주 용이하였다.

이번 구간의 동쪽 자락으로는(진행방향의 좌측) 낙동정맥에서 단석산(827.2M)으로 이
어지는 가지능선을 경계로 경주시의 건천읍과 내남면이, 또 백운산 북쪽 약 3Km 지점
에 있는 소호고개에서 경주시 내남면과 울산광역시 두서면이 경계를 이루게 되며,
서쪽자락은 소호고개 북쪽 약 600M 지점의 700.1봉에서 흘러내리는 지능선을 경계로
경주 산내면에 이어 역시 울산광역시의 상북면(소호리)이 낙동마루금을 맞아 들인다.

낙동정맥 산자락을 가장 많이 품으며 오랜 답사시간동안 우리와 함께하던 경상북도가
드디어 울산광역시에 마루금과 산자락을 내어주게 되는데, 와항재에서 다시 경주 산내
면을 잠시 만난 뒤, 다음 구간(20구간) 답사예정인 가지산을 지나면서 경북(청도군
운문면)과는 완전히 이별하게 된다.

이번 구간 답사종반부에 지나가는 경주 산내면 대현리의 마을(와항)과 울산 상북면 소
호리의 마을들은 산자락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등을 맞대며 엇갈리듯 서로 깊이 파고
들어와 경주와 울산의 경계를 이루는데, 낙동마루금 고개인 와항재의 북쪽 깊숙한 분
지에 들어앉아 있는 소호리는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경주 산내면
쪽이 훨씬 가깝고, 또 영향을 많이 받을 듯하나, 이 오지마을은 마을 전체가 고헌산과
백운산 아래 낙동마루금의 산자락들을 받아들인 채, 홀로 고립되듯 울산광역시 상북면
의 지적(地籍)을 갖고 있다.

경주시는 다음 구간, 운문령 앞의 낙동정맥길과 문복산 갈림길이 있는 894.8봉에서 청
도군에 낙동마루금을 인계하게된다. 이 문복산 능선이 경주와 청도의 경계이다. 지난
구간 사룡산 앞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며 만난 경주 산내면은 동쪽으로는 낙동마루금
이, 서쪽으로는 문복산능선이 빙 둘러 쳐져있는, 말 그대로 산속의 마을(山內)인데 이
곳에서 흐르는 물길은 모두 모여 동창천을 이룬 뒤, 이웃하고 있는 청도의 운문호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 산내면은 산속의 고을답게 산채(곤달비), 사삼등의 특용작물이
유명하고 불고기단지로도 이름난 곳이다. 면소재지는 의곡리이다.

이번 구간도 역시 역사의 고장 경주답게 마루금과 산자락 좌우로 신라의 채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 많다. 특히 단석산(斷石山,827M)이 그러한데, 단석산은 출발점인 땅고개
지나 약 50분 정도 올라 갈림길에 닿은 후, 여기서 약 500여M 좌측으로 올라서면 정상
에 닿는다. 하지만 낙동마루금은 단석산을 지나지 않고, 정상 앞 갈림길에서 우측(남
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하게 된다. 경주 오악(토함산,선도산,소금강산,금오산(경주
남산)중 서악인 이 곳은 김유신장군과 관련된 설화가 유난히 많은 곳이다.

단석(斷石)이란 이름도 김유신 장군이 난승의 도움으로 수련, 단칼에 베었다는 쪼개진
바위가 정상에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며, 말에게 물을 마시
게 한 곳은 '음마지'로, 장군이 물을 마시던 곳은 '장군지'등으로 이름이 붙어져 먼
옛날 신라의 채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 낙동정맥길 진행방향 좌측 아래 쪽
(동북방향)의 우중골코스로 오르다 보면 국보로 지정된 마애불상군을 만날 수 있으나,
갈 길 바쁜 나그네들은 그리 갈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단석산은 경주국립공원소속의 산이기도하다.

경주를 몹씨도 사랑한 향토학자인 최용주선생(작고)께서는 경주를 순교의 고장이라고
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이번 구간의 산자락과 관계가 있길레 고인의 글을 옮겨본
다.

'경주 산내면 참나무징이에는 천주교 순교자 묘소가 있고, 그 부근에는 교우들이 숨어
살던 호랑이 굴이 있다. 경주는 신라 때, 불교의 공인을 위한 이차돈의 순교(528년)가
있었고, 조선 말기에는 천도교의 발상지로서 창시자 수운 최제우의 순교(1863년)가 있
었다. 그런가 하면 천주교의 순교지이기도 하다.

다만 불교와 천도교의 순교자들이 경주사람들인 반면, 천주교의 경우는 1866년 병인박
해 때 피신해 온 신자들이 숨어살다가 붙잡혀 순교한 것이 그 모양이 좀 다르다. 여기
서 '참나무징이'라는 곳은 참나무를 한문으로 표시하다보니 진목(眞木)으로,'징이'라
는 어미는 정(亭)으로 되었다. 천주교에서 흔히 진목정 성지라고하는 이 곳에는 울산
장대벌에서 처형당한 순교자 3인의 가묘가 있다'(요약 발췌)

이 진목정 마을은 당초 야영을 하려했던 윗상목골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고, O.K
그린(옥방)목장으로 연결되는 콘크리트 포장도로의 바로 우측 아래에 있다. 마을 입구
에는 '진목정'이라는 마을 표시석이 있다.

도로가 나기전에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마을을 이루었을 이 곳 낙동마루금 산자락의
좌우로는 숨어살기에 좋은 곳이었던지 울산쪽으로 계속 이어지며 박해를 피해 숨어들
었던 천주교의 공소가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숨가쁘게 달려오던 낙동마루금은 드디어 이번 구간에서 영남알프스의 산자락으로 들어
서게 된다. 고헌산(1032.8M)을 지나면서 다시 1000M 대의 높은 산악지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높은 산군치고는 마루금의 길은 가지산의 일부 구간을 제외
하고는 유순한 편이며 대체적으로 진행방향의 좌측 산자락은 벼랑을 이룬 급사면의 산
자락이 많고, 내륙 낙동의 수계로는 유순한 곳이 많다.

'언제쯤이면 다다를 수 있을까?'하며 까마득히 여기던 그 곳으로 이제 들어서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이어오던 낙동마루금길 답사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영남알프스란 이름은 부산의 대선배 산악인들이 알프스의 풍광과 흡사하다하여 그리
이름 지은 곳이다. 부산.경남.울산.대구.경북의 산악인들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 곳을 진주의 성락건선생 같은 이는 '낙동두류산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흥분되고 아름다운 만남으로 맞이해야 할 이 산길에서 나는 그만 무기력감과
절망감에 빠지고 만다. 무지막지한 마루금 파괴현장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고, 우연
히 마주친 off-road 동호회의 만남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어버렸다.기록자의
게으름도 한몫 거들기는 하였지만, 그 산길에서의 기억들을 들추어내기란 여간 곤혹
스런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다음 구간(20구간)을 답사하기도 하였고(4.13-14), 답사
후 약 1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의무감에 별수없이 기록을 들추어내고 기억을 되살리며
정리를 하지만 그 때 산길에서의 충격은 참으로 컸다.


나. 낙동마루금에게: 용서하십시오. 우리 지은 죄, 너무 큽니다.

이번 구간 현을이 답사계획을 준비할 때에는 지독한 황사때문에 산행을 연기하여야 하
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또 대원들의 의견을 물어본 결과 연기하자는 쪽
의 의견이 우세하여 그리하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뒤늦게 황사가 다소 누그러질것이라
는 일기예보가 나오자, 다시 번복하여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한다. 하지만 부득이
한 사정으로 병천이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고, 산행대장인 환상도 토요일 일이 발생하
여 늦은 시간에 야영장에 합류하기로 했다. 답사연기 통보를 받고 예약한 열차표를 취
소시킨 산유화의 항의가 아주 심했었지만, 결국 토요일 밤차를 타고 내려와 일요일 새
벽, 야영장에 합류하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 발생하여 야영지로의 집결시간이 너무 늦어졌다. 적어도 오후 세시까지
야영 예정지인 윗상목골에 야영장비를 실은 차량을 주차시켜 놓고, 산행기점인 땅고개
로 차량이동을 마쳤으야하나 귀선누님과 함께 윗상목골 아래의 진목정(참나무정)마을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오후 5시 가까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차 바퀴까지 빠져
버려 이미 윗상목골에 도착해 있는 현을아우에게 아무래도 늦겠다는 연락을 취한다.

다행히 마을의 어르신이 도와주셔서 차바퀴를 쉽게 빼내고 기다리니 선발대로 가있던
용면,화일,청류,현을이 차량편으로 내려온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터라 잠시 오늘 운행
에 대한 의논을 한 결과, 가까이 있는 O.K(옥방)목장까지 진행키로 뜻을 모으고 차량
을 그리로 이동한다. O.K그린목장 입구에는 그 시간에도 입장료를 받고 있다. 놀러가
는 사람들이 아니고 차만 주차한다고해도 요금을 내라해서 어쩔 수 없이 되돌아 나온
다. 목장입구 갈림길에서 마루금쪽으로 나있는 포장도로를 오르니 폐허가 된 농장이
나온다. 그 곳에 야영장비를 실은 차를 주차시키고 오늘 운행시 매고갈 작은 배낭만
챙기고는 땅고개로 차량이동한다.

17:20 땅고개 도착.
지난 구간에 주차를 하였던 땅고개 건물앞 공간에 차를 주차하고 출발. 17:23

산내쪽으로 조금 되돌아오면 너른 임도로 길이 열려있다. 임도를 따라 잠시 진행하다
가 왼쪽의 산자락으로 들어서며 오름길이 시작된다. 오름길 초입에는 손질이 잘 된 무
덤 3기가 나란히 누워있다. 토요일 다소 늦은 시간에 시작된 산행이지만 화신(花信)을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약 10분 정도 올라 능선턱을 통과하면 너르고 환한 큰 소
나무숲길 사이를 걷게된다. 큰 나무 아래로는 노랑제비꽃 무리가 지천으로 피어있고,
찔레나무는 진초록으로 한껏 물이 올라있다.

다행히 황사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니다. 좌측에 육중한 모습을 하고 있는 단석산의 모
습을 보며, 봄 풀꽃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에 취해 계속 오르니 벌써 땀이 흐르기 시작
한다. 평평한 능선길은 육산길로 잘 나있고 숲도 깨끗하다. 단석산은 봄에는 진달래,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한 곳이다.

17:51 664봉 통과. 기온은 약 6도C 정도이고 황사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날씨는
맑은 편이다. 이 곳에서는 방위각 약 38도 방향의 내리막으로 길이 이어진디. 기름진
검은 흙길 좌우로는 철쭉 터널이 자리잡고 있다. 약 5분여 내려서서 안부에 닿는다.
생강나무가 꽃을 피운 모습이 여기저기 보이고, 안부에서 다시 오르는 길 우측으로는
조림한 듯한 잣나무숲이 계속 이어진다.

안부에서 다시 능선턱에 오르면 평평한 봉우리와 부드러운 능선을 이루고 있는 단석산
의 또 다른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서서히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가벼운 완경사길을 걷던 중, 지리산 통신 4월행사를 위하여 사전 답사조로 서울 북한
산에 올라가있는 철화아우와 오늘 참여치 못한 산유화의 전화를 받는다. 산유화는 낙
동을 포기한 채 북한산산행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는 모양이다. 목소리에 힘
이 없다. 밤열차로 내려와 내일 산행이라도 참여하는게 어떠냐고 권하니 마음은 움직
이는듯하나 교통편이 여의치 못한 모양이다.

18:08 약 680M 고지의 봉우리를 통과하여 단석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진행방향인 남쪽
능선 멀리로 시설물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방주교회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는 산길은 단석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낙동마루금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틀며 남쪽으로 향하게 된다. 바위전망대에서 잠시 산자락을 조망하며 가벼운
휴식을 취한다. 선두로 진행하는 용면과 청류의 걸음이 빠르다. '반환점 3Km'라는 이
정표가 있다. 바위전망대에서 내려서면 단석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또 나온다. 사람들
이 많이 찾는 산이라서 그런지 산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렇다. 이 길은 이미 신라 천년동안 화랑의 발걸음이 끊임없던 곳이 아니던가...

왼쪽으로 낙동마루금과 단석산에서 흐르는 능선 사이에 있는 계곡은 아주 좁다.
이 계곡의 물길은 남쪽의 비지리로 흘러가다 동으로 흘러 형산강의 상류를 이룬다.

18:13 훼손이 심한 무덤있는 곳에 비지리 2.0Km, 수의동 2.5Km, 정상 1.5 Km 라는 이
정표가 서있고 마루금의 좌우 산자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있다. 좌측(동쪽) 산자락
아래의 비지리(飛只里)는 경주시 내남면의 마을이고, 수의동은 옥방목장이 있는 낙동
마루금 바로 옆의 산상(山上)마을이다. 조금전 단석산 갈림길에서 단석산으로 이어지
는 능선을 경계로 건천땅과 작별하고 왼쪽 자락으로 내남면이 마루금의 자락으로 들어
온다. 비지리의 마을들이 보이는 곳에 있는 작은 못(池)은 사곡지인듯하다. 우측 산자
락 아래는 산내면 감산리인데 마을들은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쌀쌀해진다. 산길은 오솔길처럼 너르고 평탄하
여 걷기가 수월해 마치 달리듯 걷는데, 귀선누님의 걸음도 아주 빠르다.

약 620고지의 완만한 봉우리를 통과한다. 마루금 오른쪽에서 마주보고 있는 조래봉에
는(655M) 산자락을 가로지르며 임도가 어지러이 나있다. 서쪽으로 하늘과 맞닿으며 겹
겹이 드리워져 능파를 이루고 있는 산들이 가볍게 일렁이며 산너울이 인다. 아직 산자
락에는 미처 어둠의 발길이 닿지않았으나, 해는 구름속에서 벌건 흔적만을 찾을 수가
있다.

18:24 652고지 봉우리 통과. 여전히 찰진 흙길의 산책로처럼 너르고 좋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하늘과 맞닿으려는듯 피라미드처럼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교회, 그 우측 아
래로 빨갛고 푸른 지붕을 이고 있는 O.K목장 시설지구의 모습이 이채롭다.

시설지구 앞 약 620고지의 봉우리를 지날 즈음, 여전히 길은 좋으나 산길 주위로 붉은
가시나무가 많이 서있다. 능선을 깎은듯 평평한 공간의 억새밭 사이로 임도가 나온다.
이 임도는 마루금을 동서로 넘나들며 서쪽으로는 경주 내남면의 비지리, 동쪽으로는
산내면의 조일리로 이어진다. '단석산 4Km'라는 이정표가 있다. 방주교회 앞, 마루금
전체가 잔디밭으로 확 트이며 너르게 펼쳐진다.

18:35 방주교회 통과.

벌겋게 물든 하늘, 피라미드형으로 높이 솟아있는 교회, 넓디 넓은 잔디밭, 그리고
산상의 호수... 마치 해질 무렵, 중세 유럽의 거대한 장원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뜻밖에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다.

정남방향으로 난 잔디밭 사이의 평평한 길을 걷다가, 오른쪽 호수옆 도로로 내려선다.
호수옆의 도로가에는 조립식 공공화장실이 있고, 서바이블 게임 시설물도 있다. 사람
들이 많이 찾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호수를 거의 다 지날 무렵 왼쪽의 사면으로 다시
오른다. 잔디밭에 조각상들이 전시되어있는 조각공원이다. 청동의 조각상들이 산상의
초원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은 예술성을 따질 수도 없겠지만 특이하고, 또 충분히 아
름다웠다.

18:45 조각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시 휴식후 출발. 18:51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전봇대가 이어지며 함께 진행하는 마루금길은 임도로
나있다. 어느새 반달이 하늘위에 떠 올라있고, 뿌연 하늘은 그런대로 밝은데, 목장의
건물들에는 이미 불이 켜져있다. 통신중계탑이 서있는 512봉을 올라서니 밤바람이 더
욱 차가워진다. 마루금은 여전히 임도로 이어진다. 오른쪽에 수의동의 마을이 보인다.
18:55

약 5분여 진행하여 안부에 닿으면 우측으로 마을로 이어지는 너른 길이 나온다.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지만 옅은 먹빛이다. 랜턴을 켜지않고도 걸을만한데, 마을옆 도
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은 야생의 동물들처럼 눈에 불을 켜고있다. 535고지인듯한 봉우
리를 통과한다. 잔돌이 많이 깔린 오름길을 지나면 산길 바로 우측에 조각공원 입구
임을 알리는 표시가 있고, 조각상이 하나 서있다. 19:09

바로 앞 수의동의 마을에서는 놀러 온 사람들의 것인 듯, 유쾌하게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초저녁 밤의 공간을 비집고 아주 가까이에서 울린다. 어둠속에서도 연못과 큰
건물이 모습이 또렷하다.

마을 앞 약 520고지의 봉우리를 통과하는 사이, 사방으로 어둠이 뚝뚝 묻어 나온다.
다만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마루의 선은 오히려 더 선명히 드러난다. 평평한 안부를
지나 마을의 건물이 확실하게 보일 무렵, 큰 길은 오른쪽의 마을로 이어지고 마루금길
은 좌측, 억새가 무성한 숲으로 들어간다. 19:20

억새,가시나무등 잡목이 많은 곳을 통과하여 다시 숲으로 들어가는 마루금길은 다소
거칠다. 아마도 훤한 임도를 계속 걷다가 갑자기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다보니 그럴 것
이다. 헤드램프를 켠다. 참호처럼 패여있는 길이 우측으로 빙 돌며 우회하는 느낌으로
진행되다가, 다시 좌측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앞의 봉우리는 야영장 뒤의 520고지인
듯하다. 이제 오늘 구간은 거의 다 진행한 듯하다.

19:35 봉우리 통과. 너른 숲길과 월성 김씨묘를 지나,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듯한 큰 소나무숲을 벗어나면 검은 폐비닐이 땅 속에 묻혀있는 버려진 밭
과 페허가 된 음침한 농장건물이 이 나온다. 주차해 놓은 차가 보인다. 19:39

바람이 몹씨 불고 폐허가 된 농장 주위의 느낌이 그리 좋지 않다. 차를 몰고 아래로
내려와 O.K목장 도로와의 갈림길 바로 옆, 야영하기 적당한 평평한 공터에 짐을 내리
고 야영및 저녁취사준비에 들어간다. 식수는 야영지 바로 아래 민가에서 구할 수 있
다. 언양에 도착해있다는 연락이 온 환상을 야영지로 데려오고, 땅고개에 있는 차량
회수도 할 겸, 화일과 청류 두사람이 차를 몰고 내려간다. 환상은 택시로 이동, 산내
고개에서 만나기로했다.

바람이 몹씨 불어 야영하기에 그리 좋은 날은 아니나, 하늘은 맑아 별빛이 초롱초롱
하다. 야영장 옆의 나무에 걸려 나부끼는 크고 흰 비닐의 모습이 괴기스러운데, 괜한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몸이 오싹해짐을 느낀다.

저녁 준비를 하는 사이 환상을 데리러간 일행이 도착하고, 현을아우가 준비한 전골등
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마친다. 비교적 이른 시각에 취침에 들어간다. 텐트는 5-6인
용 1동, 2인용 2동, 총 3동을 설치했다. 밤차로 경주로 내려오겠다는 산유화를 데리러
가기 위해, 대형텐트의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기는하나 잠이 잘 올리가 없다.
비몽사몽간을 헤매다가 이른 시각인 밤 2시경에 일어나 경주터미날로 향한다. 11:08

이틀째(2002. 3. 14).

06:00 기상. 오늘 구간에서는 식수를 구할 곳이 없다. 집 앞에 흐르는 계곡의 물은 어
제 지나온 수의동에서 흐르는 물인데 식수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었다고 물
을 뜨러갔다온 용면이 알려준다. 어제 저녁 남겨둔 밥으로 김치국밥을 끓여 아침을 해
결한다. 밤차로 내려와 차안에서 부족한 잠을 떼우는 산유화는 피곤했던지 잘 일어나
지 못한다. 늘 아침시간은 이상스럽게도 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다. 출발시간이 다소
늦어지지만 접근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모두 아느 터라 그리 서둘지 않는다. 당초 진행
키로했던 운문령까지의 길을 와항재 옆, 산내고개까지로 조정키로했다.

어제밤에는 바람이 몹씨 불고 꽤 추웠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얼음이 얼어 있고, 아침
날씨도 몹씨 춥다. 이른 아침부터 옥방목장을 오고가는 차량의 이동이 꽤 많다. 길옆
에서 야영과 취사를 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궁금했는지 지나가던 차들이 자주 멈춘
다.

08:10 산행시작. 옥방목장 앞 도로 갈림길에서 마루금측(동쪽)으로 난 콘크리트포장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폐가도 있고, 흑염소,토종닭등의 음식물을 파는 낡은 집도 있
다. 어제 산행을 종료한 지점의 버려진 축사를 지나면 포장도로는 끝나고, 너른 임도
로 마루금이 이어진다. 폐 축사에 검고,흰 비닐들이 나부끼는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임도 양쪽으로는 밭을 개간하여 놓았다. 언 땅이 녹아 질퍽거리며 걸음마다 흙을 한
움큼씩 붙이며 걷는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지는 마루금은 계속 너른 임도길로
진행되고, 길 주변에는 폐비닐, 비료포대, 플라스틱통등, 쓰레기가 많이 널브러져 있
다.

08:26 퍼득이는 검은 비닐이 큰나무를 휘감고 있는 스산한 풍광을 옆에 두며 딸기밭
을 통과한다. 딸기밭에서 바로 직진하는 봉우리가 605봉인 듯한데, 산길은 봉우리
못미쳐 좌측 참나무 숲속 사면으로 내려선다. 딸기밭 오른쪽의 능선길에 있는 집수정
의 모습이 이채롭다.

약 5분여 내려서면 낙엽송,큰 소나무, 산벚나무,참나무등의 키 큰 나무들이 깨끗한 숲
을 이루며 조금 전의 마루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평평한 안부를 지나 철쭉
나무 군락지를 오르면 완만하고 둥근 560봉에 닿고, 완경사의 부드러운 풀밭 길로 내
려선다. 길 왼쪽 숲속 약 10미터 지점에 큰 무덤이 있다. 08:39

이 곳 양지바른 산자락에는 노랑제비꽃이 무리지어 지천으로 피어있다. 그 환하고도
그윽한 노랑색의 모습은 눈부시다. 산유화의 사진 찍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편안한
숲속 길, 활짝 핀 봄 풀꽃들의 아우성에 마음이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모처럼 따사로운 봄의 정취에 취하다.

이를 두고 일장춘몽이라 했던가? 잠깐 사이였다. 낮은 무덤을 지나 내려서는 길은
황당하게도 지형도상에 없는 포장길에 닿는다. 우측 납석광산이 있는 윗상목골쪽으로
는 포장이 다 되어있고, 좌측(東) 경주 내남면 박달리쪽으로도 포장은 되어있지 않으
나 이미 너른 길이 파헤쳐져 있다. 08:45

우측 산사면을 완전히 깎아내어 조성한 넓디 넓은 공터에는 약 1M 정도 길이의 규격으
로 베어진 많은 참나무들이 쌓여있고, 약 2시 방향으로 납석광산과 윗상목골 마을 모
습이 보인다. 현을의 말에 의하면 이곳이 당초 야영지로 계획한 곳이란다. 마을에서부
터 도로를 새로이 내었나본데, 그 이유는 조금 더 길을 진행하다보니 알 수 있었다.

잘려진 마루금 우측으로 나있는 너른 길을 진행하던 우리의 눈은 더욱 휘둥그레진다.
마루금상에 대형 크레인이 올라와서 건물을 짓고 있는 것이다. 마침 작업하는 사람들
이 있어 물어보니 주말농장을 비롯한 위락시설을 조성중이라하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
다. 왼쪽의 절개지 사면을 다시 올라 마루금의 숲으로 들어서면 길 오른쪽으로 철조망
이 쳐져있다. 이 일대는 사유지인 모양이다.

만불산 구간에 이어 최근에 벌어진 대규모의 마루금 훼손현장을 만난 것이다. 산길 주
변에는 산벚나무,물박달나무가 비교적 많이 자리하고 있다. 산길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계속 이어진다. 잘려나간 마루금이 안타까워 얼핏 뒤돌아 보다 시야에 들어온 크레인
의 모습이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흉칙한 사이보그처럼 느껴진다. 무력감을 느끼다.

08:59 535.1봉 통과. 철조망은 계속 이어진다. 3시방향으로 산자락이 파헤쳐있는 광산
과 그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약 10분여 내려서면 너른 임도가 나오고 철망은 끝이 난
다. 이 길은 광산쪽으로 연결이 되고, 조금 전 위락시설쪽으로도 이어진다.

길 가에 은은한 연둣빛으로 꽃을 피운 버들강아지의 모습이 참 청초하다.

09:14 임도에서 벗어나 왼쪽 숲으로 난 길을 들어서며 오름길이 길게 이어진다. 산자
락의 응달에는 아직도 서릿발이 서있다. 600고지의 능선턱을 통과하여 완경사의 길을
걸으면 620고지의 억새밭을 만난다. 바닥에 깔려있는 블럭으로 보아 헬기장이었던 곳
같다.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아침부터 때 아닌 산유화 비장의 굴
무침이 나오자 다들 입맛을 다신다. 가득 고이는 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배낭에서 맑은 물이 나오고, 현을아우의 눈치를 보며 시에라컵이 돈다. 09:46 출발

물박달나무가 자주 눈에 띄는 훤하고 정갈한 숲길은 완만한 오르막과 평평한 길을 반
복하며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아직 개스가 뿌옇게 서린 곳이 있기는 하나 날씨는 아
주 좋다. 찰진 검은색 흙을 밟는 감촉이 너무나 좋다.

여전히 우측 산자락 아래로는 마을이 보이지 않으나, 경주 내남면의 마을들이 자리잡
고 있는 좌측 산자락 아래로는 좁은 도로가 졸음에 겨운듯 길게 이어진다. 훤하게 공
간이 트이며 하늘이 드러나는 곳에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있고 그 사이에는 억새들이
자리잡고 있다.

09:56 역시 옛 헬기장인듯한 680고지 통과하면서 비로소 우측 산자락 아래로 산내면
대현리와 와항재사이의 소호리 마을을 지나가는 좁은 도로가 보인다. 4년전 어느 여름
인가 옛 친구들과 모처럼 어울린 여름 나들이 생각이 난다. 소호교 부근 이 도로옆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들 중, 비교적 높은 공직에 있던 활
달하던 종철이라는 친구는 작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 했다. 잠시 친구생각에
젖어들다.

안부(鞍部)라 할 것도 없는 아주 완만한 사면 사이의 잘록이를 지나 역시 두리뭉실한
봉우리를 지나는데 휴대폰의 벨이 울린다. 오늘 산행 후, 산내의 송원식당에서 있을
뒷풀이에 장훈,정기,신희양과 함께 참석하겠다는 길봉형의 전화다.

10:04 700봉 통과. 산자락 곳곳에 피어있는 생강나무의 노란꽃과, 노랑제비꽃에 눈 맞
추며 걷는 사이, 오랜만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산새소리다. 때 맞추어 찾아 온 산
새의 지저귐은 더 없이 가벼운 노랑의 소리다.

700고지의 능선상 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산길은 너르고 평평하다. 훤하고 너
른 공간은 양산 천성산 성불암 위, 집북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여전히 숲에는
수피(樹皮)가 쭈글쭈글 일어나며 벗겨지는 물박달나무가 많다. 오른쪽 저 멀리로 길게
하늘금을 이룬 능선의 2시 방향에 높이 솟아있는 문복산(1013.5M)이 보인다. 산을 떠
받치고 있는 드린(디린)바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부를 내려서지만 역시 고도의 차
이는 별로 없고, 짙은 소나무숲 사이의 길에는 묵은 솔가리가 엄청 깔려 있다. 가지가
낮게 드리워진 숲을 벗어나 훤한 억새밭을 지나면 정면으로 푸른 소나무숲을 이고 있
는 봉우리가 보인다. 삼각점이 있는 700.1봉이다.

10:27 700.1봉 도착(삼각점No. 언양 303. 1982재설. 방위각 35도 서쪽으로 기움).
드디어 언양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 700.1봉에서 진행방향 오른쪽, 즉 서쪽자락으로
가지치는 능선을 경계로 경주 산내면(대현리)과 울산 상북면(소호리)이 경계를 이루게
된다. 경북과 울산광역시의 경계점이다. 이 봉우리는 어디가 정상인지 잘 알 수가 없
을 정도로 평평하고, 삼각점도 능선길 중간에 설치되어 있다. 휴식을 취하며 주위 조
망을 하다가 동쪽 저 멀리 솟아있는 치술령을 확인하다.

10:42 휴식후 출발.
너른 길을 약 10여분 운행하면 안부가 나오고 좌측 산자락으로는 조림한 잣나무숲이
있다. 묵은 솔가리가 많이 깔려있는 소나무숲길을 내려서면 마루금을 좌우(東西)로
가르는 큰 길이 있는 소호고개에 도착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지 길도 아주 좋
다. 이 소호고개를 경계로 마루금 좌측자락이 경주 내남면(박달리)과 울산광역시 두
서면(내와리)이 갈라진다. 낙동정맥의 자락을 가장 많이 품으며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하던 경북을 벗어난다. 하지만 경북의 마루금과 완전히 이별하는 것은 아니다. 와항
재에서 다시 경주 산내를 만나, 가지산(청도)에 이르러 경남 밀양군에 낙동정맥의
우측 산자락을 넘겨줄 때까지 함께 하게 된다. 10:56

이제 마루금의 좌우자락 모두 울산광역시로 접어들었다. 소호고개에서는 고개 왼쪽에
오르막길이 나있고, 고개 위로는 거대한 철탑이 서있다. 철탑을(No.3350) 통과하면
바위를 쌓아 계단식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철탑 뒤에 있는 암봉(638.5봉)을 통과
하면 지금까지의 산길과는 다르게 바위지대가 자주 나오고 길도 좁아진다.11:07

마루금은 서서히 높이를 올려가다가, 어른 키 이상되는 억새밭을 지나면서 고도를 약
700M대로 올린다. 걸어 온 길을 뒤돌아보니 방주교회와 단석산의 모습이 아득하게 먼
거리에 있다. 11:26

평평한 안부를 지나며 숲길을 벗어나 키 큰 억새가 쓰러져 미끄러운 오르막길을 오른
다. 길 주위에는 넝쿨나무가 배낭을 끌어당기기도하고, 바로 앞의 능선턱에는 바위봉
우리가 떡 버티고 있어 오늘 운행한 마루금의 분위기와는 무언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느낌을 받다. 오른쪽의 우회길을 두고 큰 바위로 바로 올라 휴식을 취한다. 오름길이
조금씩 힘이 들기 시작한다. 11:40

11:54 휴식후 출발.

키작은 가시나무,덩쿨나무가 진행을 방해하는 오르막길에는 드문드문 바위지대가 나오
고 경사가 가파른 길로 이어진다. 오른쪽 산자락 아래로 들어 앉아있는 소호리의 마을
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우측 전방 약 2시 방향으로 꾸불꾸불 산자락으로 이어지
며 와항재로 넘어가는 도로의 모습이 마치 사행천(蛇行川)의 물길처럼 보인다. 마루금
전방으로 백운산의 모습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긴하나 정상 직전의 오름길이 만만치 않
아 보인다. 800고지의 봉우리를 또 하나 넘는다.

백운산 너머의 고헌산, 그리고 그 뒤 먼 곳으로 우람하게 높이를 세운 가지,신불산의
정겨운 모습이 희미하나마 시야에 들어온다. 12:03

바위지대의 좁은 길이 계속 이어지다 봉긋한 봉우리(약 850고지)를 지나는 지점의 좌
측 아래로 산길이 열려있고 시그널도 달려있다. 두서면 내와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12:19

키낮은 나무가 길옆에 포진한 산길은 잠시 억새밭을 지나며 바위봉우리를 세번 정도
오르내린다. 잔돌이 많이 깔린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사방이 트이는 너른 바위봉우리
에 닿는다. 바람이 몹씨 분다. 백운산(892M)이다. 12:40

놀라웠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 힘들여 오른 약 900고지의 백운산 정상은 잘려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봉우리 중간 평평한 임도상에 그 지역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시석 3개
가 나란히 서있는데, 고도가 각각 907,901M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1/50000 지형도에
는 892M로 표기되어 있다.

마구 불어대는 바람이 차라리 고마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으므로.

포장을 하였다면 2차선 도로는 충분히 되고도 남을 너른 임도가 백운산정상부터 시작
하며 이어진다. 임도 옆, 숲에 서있는 잘 생긴 나무들은 잘려나갔을 수많은 나무들을
생각나게하여 안타깝고, 길가에는 빨강가시나무들이 마치 시위를 하듯 서있다.

숲속에는 군데군데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 사람들도 제법 많고, 그 시간에도 산을 오르
는 사람들도 꽤 있다.

마루금을 잘라내어 드러나는, 누런 맨땅의 임도 마루금을 밟는 일이란 여간 고역이 아
니다. 지금까지 낙동정맥 종주를 하며 만난 어떤 마루금 파괴현장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다. 큰 길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내려서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며 눈을 의심했
다. 굉음과 함께 정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어이없게도 그 큰 바위들이 깔려있는 오
르막길을 올라오려고 움직이고 있는 OFF-ROAD 차량들이었다. 큰 타이어로 중무장한
짚차들이 말 그대로 길아닌 길을 올라오려고 요동을 치는 것이다. 아연실색을 할 지경
이었다. 700-800M 고지의 마루금을 방화선 임도라는 명분으로 숲을 잘라내고서는 이렇
듯 산길과 숲을 망치도록 방관, 아니 종용을 하고 있다니...

다른 사람들의 취미생활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양
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건 자유다. 하지만 사람이 다니는 등산로에서 길 아닌 길을 지
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하여 산길을 파헤치고, 매연을 배출하며, 또 그러므로해서
주위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신경을 쓰이게하는 일들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낙동마루금이라고해서 그리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미 광산등으로 망가진 산
이나, 더 이상 훼손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진 산, 그렇지않으면 인공의 시설물등으
로 유도를 하면 어떨까하는 짧은 생각들이 머리에 뱅뱅돈다.

적정성과 효용성에 대한 환경단체의 많은 지적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산불의 확산을 방
지한다는 명분아래 생태계를 파괴하며 기어이 조성된 방화선임도가 지방자치단체에 의
하여 저런식으로 개방된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다. 각 기관에서 산자락마다 걸어놓
은 '자연보호' 현수막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거니와, 뻔뻔스럽기도하다. 오프로드동호인
들과의 뜻밖의 조우는 그 후 오랜 시간동안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은채, 무력감,
서글픔,아쉬움등 만감을 교차하게한다.

13:02 임도로 계속되는 길의 안부를 통과하며 뒤 돌아본 마루금의 모습은 고교시절 두
발불량으로 이발기가 머리 중간을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밀어버린, 소위 '고속도로'처
럼 볼썽 사납다. 난리를 치르는 듯한 현장을 참으며 벗어나자, 저만치 앞으로도 또 차
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이 곳은 오프로드차량운행을 공식적으로 인정
하는 구역임에서인지 온 마루금이 짚차들로 바글거린다. 마치 먹이감을 노리며 어슬렁
거리는 하이에나처럼....

13:13 692.1봉 통과. 잘려나간 봉우리에 아무렇게나 삼각점 파일이 박혀있다. 아니 제
대로 박혀있는들 차가 지나다니는 그 곳에 그런 표시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몇 년 전부터 산자락의 풀,꽃,나무들에게 관심을 주며 산길을 걷는 또 다른 기쁨을 느
끼는 나는, 정상부터 잘려나간 마루금과 차량들의 출몰로 감정이 혼란스러워짐을 느낀
다. 슬프고도 분했다.

약 10여분, 여전히 이어지는 임도를 진행하면 좌측으로 두서면 차리,인보리,서하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나오고, 산길이 우측으로 방향을 트는 마루금상(임도)에 너른 밭이
나온다. 재배하는 작물은 없는듯하나 푸른 밭으로 개간되어 있다. 그 곳 우측 아래로
역시 임도가 내려가는데, 소호리에서 고헌산을 오르는 도장골과 큰 골 사이에 나있는
임도이다. 13:30

이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우측 아래 계곡에 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찾
지를 못했다. 물이 조금 모자란다. 산길 진행뿐만아니라 산행전반에 대한 준비에도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만두와 아침에 남은 밥등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다.

14:33 출발. 바람이 몹씨 분다. 이제 고헌산쪽으로의 오름길이 남았다. 1000고지가 넘
는 고헌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역시 잘려나간 채 임도로 나있다. 바위로 된 산이었
음인지 길을 내느라 부서진 큰 돌들이 너른 길에 많이 깔려있고, 가끔씩 깊이 뿌리가
박힌 거대한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곳도 많다. 아까 백운산을 내려올 때, 짚차로 오르
려하던 일군의 차량들이 우리 뒤를 따라 고헌산쪽으로 오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허옇
게 드러난 돌길 임도 한가운데를 말없이 앞만 보며 올랐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행
스럽게도 차들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점심식사후 도상 1.5Km의 돌길을 약 400M 고도를 높이며 오르려하니 무척 힘이 든다.
마루금 바로 오른쪽에 파괴의 손길을 피해 부드러운 육산의 모습으로 편안히 솟아있는
990.8봉를 쳐다보니, 돌투성이 길로 파헤쳐져있는 낙동마루금이 안스럽기 짝이 없다.
파헤쳐지고 뭉게진 돌길 오르막길을 걷는 일이란 너무나도 지겹고 힘들다.
약 1000M 고지를 통과한다. 15:01

15:13 삼각점 통과. 깎이고 잘려져 나간 마루금의 삼각점을 무심히 통과한다. 이 곳에
서 흐르는 지능선의 마루금으로도 역시 임도는 여지없이 나있다. 이 지능선이 울산광
역시 울주군의 두서,상북,언양읍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이다. 고헌산 정상부근은 약
1030고지의 능선이 동서로 길게 이어진다. 이 높은 고도의 능선도 여지없이 잘려나갔
다. 숲이라도 있는 백운산을 이발기로 밀었다는 표현을 썼다면, 고헌산 능선은 대패로
밀어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하다.

15:19 고헌사 3Km, 와항재 3Km, 소호령 2.0Km 나무로 된 오래된 이정표가 서있다. 어
처구니 없게도 그 높은 정상도 잘려나가고 없고 케른 사이에 정성적을 모셔놓았다.
비교적 번화한 좌측 산자락 아래의 언양읍과 상북면의 마을들이 시야에 계속 들어오지
만 어떤 감흥이나 느낌도 가질 수가 없다. 정상과 이어지는 평평한 능선 마지막 고지
인 1034.8봉에 들렀다가 바로 아래에 있는 바위지역에서 휴식을 취한다. 15:30

15:49 휴식 및 사진 촬영후 출발. 와항재로 내려서는 길도 엄청 너르게 잘려져 임도로
나있고, 길 옆 좌측 숲으로는 늠름하고 시원한 소나무와 참나무가 쭉쭉 뻗어있다.
하루종일 마음을 긁으며 아프게하던 임도가 끝나며 정맥길은 숲으로 들어간다. 내려서
는 산길은 시원한 숲길로 열리며 부드러운 육산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정갈한
숲은 오히려 안타까운 아쉬움만 더한다.

16:25 낙엽송숲을 지나 울주군 상북면 이정표가 서있는 와항재에 도착. 이 고개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가면 상북면 소호리이고, 좌측으로 가면 한동안 낙동정맥길에 비켜
서있던 경주시 산내면을 다시 만나게 된다. 즉 상북면 궁근정리에서 올라오면 만나게
되는 923번 도로상의 산내고개로 이어진다. 와항재에서는 맞은 편 산자락 봉우리로
잠시 올라섰다가 산내고개 인근 쇠고기식당이 많은 마을로 내려서면 될 듯하나, 도로
로 곧장 진행한다. 즉 도로로 우회하는 셈이다. 도로확장및 상수관매설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도로 왼쪽 아래, 계곡을 따라가며 이어지는 평평한 공간에는 눈부신 연록
색의 향연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16:33 산내고개 도착. 당초 예정했던 운문령앞 894.8봉은 다음 구간으로 미루기로 하
다. 뒷풀이에 참석하려던 길봉형 내외분,장훈,정기, 그리고 예비신랑신부가 곧 도착할
시간이다. 집안 사정으로 이번 구간 산행에 참석치 못한 병천이 마중을 나와 있다.
한복을 걸쳐입은 모습이 낯설다./산행종료.

병천의 차로 야영지에 있는 차량을 회수하고 뒷풀이 장소인 송원식당으로 향하다.
신희양은 예비신랑을 소개하고, 같이 자리에 어울리는데 모처럼 대식구가 모였다.
지원해주신 길봉형님 내외분께 감사드린다. 산길에서의 기억이 문득문득 떠올라 건성
건성으로 받아마시던 술이 다소 과했다. 뫼벗의 산행모임에서는 잘 하지않던 2차 술자
리를 병천의 제의로 양산에서 갖는다. 열차시간을 맞추느라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하
는 산유화의 발걸음이 아쉬운듯 무겁다.



다. 19구간을 마치며...

백운산을 지나며 끝없이 이어지는 임도와 뜻밖에 출현한 차량들 때문에 심신이 힘든
하루였다. 사실 이런 길을 왜 가슴 아파하며 걸어야하는지의 회의감도 가져본 하루였
다. 또 이렇듯 마음 아파함이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란 자괴감은 지친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답사길, '내가 산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걸어온 과정
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을 뿐이다'라는 생각에까지 마음이 이르자, 스스로도
혼란스러워진다. 그렇게 고대하던 영남알프스로 들어옴이 이렇듯 내 마음을 흔들 줄
은 몰랐다.

길을 걸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려하던 '시인의 감성'을 닮으려하던 내 소망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듯하다. 다만 오늘과 같은 일을 얼마나 더 겪어야할까하는
걱정이 앞설 뿐이다.

이번 구간 지나 온 그 산길의 기억들로 가슴이 먹먹하다. 빨리 잊어야 할 일이다.
어려운 일정임에도 함께한 뫼벗동지들께 박수를 보낸다.

(기록/정리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