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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낙동정맥 구간종주 제15구간 답사일지

마루금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구간종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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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간명 : 제 15구간(한티재-이리재)(도상거리 약 11Km)

(코스) : 한티재(266.3)-<1.4Km>-545봉-<1.5Km>-블랫재(280)-<1.5Km>-운주산
전위봉(797.8봉)-<1.7Km>-617봉-<2.3Km>-이리재(290)

2. 일 시 : 2002. 1.13(일))
3. 소재지 : 경상북도 포항시 죽장면,기계면. 영천시 자양면,임고면.
4. 날 씨 : 흐림
5. 참가자 : 제환상,이귀선,조용섭,장병천,이용면,이영숙,김현을,박신희 이상 8명
6. 산행형태: 당일/워킹 종주산행
7. 도엽명 : 1/50000:기계(杞溪)(NJ52-14-27),
8. 교통편 : 대절승합차.
9. 운행시간표(후미기준)

- 1.23(일) 06:30 연산동/집결
09:20 한티재도착
09:45 산행시작
10:02 430고지
10:25 545봉
10:50 안부
11:15 블랫재/중식/휴식
12:20 출발
12:35 방위각 표시석/No.5
12:59 421봉/삼각점/휴식
13:14 출발
13:32 무덤
14:03 헬기장 터
14:21 797.8봉/휴식
14:41 출발
15:19 무덤
15:46 621.4봉 통과
16:16 이리재 도착/산행종료


10. 후 기

가. 이수삼산(二水三山), 그리고 충절의 땅 영천(永川).

이번 답사구간에서 낙동정맥은 오랫동안 마루금 내륙의 산자락을 감싸 안으
며 함께 달려오던 포항시 죽장면과 이별을 고하고 영천시(자양면,임고면)를
새롭게 정맥의 자락으로 맞이하게 된다. 내륙의 맞은 편, 즉 진행방향의 좌
측 산자락으로는 여전히 포항시 기계면이 낙동마루금과 함께 한다.

예로부터 영천은 이수삼산의 고장, 충절의 고향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
는데, 이 이수삼산이란 말은 서거정선생이 영천땅을 2개의 강과 3개의 산에
둘러싸인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한데 유래되었다 한다.

또 영천은 고려말의 충신 포은 정몽주, 조선 선조 임진란 때 의병장을 거쳐
좌찬성의 벼슬까지 오른 충의공 권응수장군의 고향이 이곳이며, 유달리 충
신.열사가 많이 나와 충절의 고장이라 일컬어진다고 한다. 설립 연유를 알
수는 없지만 지금도 국가의 간성들을 길러내는 육군 삼사관학교가 이곳에
있으니, 아뭏든 옛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천은 충절의 고장이라 할 만하
다 하겠다.

이수삼산은 소개되는 내용마다 다르나 최근의 기록을 보면 두개의 하천이 만
나 금호강의 상류를 이루는 남천과 북천을 이수(二水)라 하며, 영천땅을 빙
두르며 영천을 분지로 들어앉게 만든 작산, 마현산, 유봉산을 삼산(三山)이
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의 영천편에서 소개되는 이수삼산의
강과 산은 훨씬 범위가 넓게 자호천과 신령천, 그리고 보현산,화산,채약산을
일컫는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소개되는 강의 이름들은 확인 할 수 있
으나 보현산을 제외한 나머지 산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음이 다소 아쉽다.

영천은 두개의 철도(대구선,중앙선), 고속도,국도등이 지나가는 그야말로
교통의 요충지로서 지금도 끊임없이 도로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이번 구간의 산행종료점인 이리재로는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공사가 한창 진
행되고 있었다.

영천의 명승지등 여러 볼거리들을 이 후기에서 다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대
표적인 곳으로 포은 정몽주의 정신을 기리며 조선조에 세웠다는 임고서원,
천년고찰 은해사, 국립천문대가 있는 영천의 鎭山 보현산, 대구 약령시장,
안동장과 더불어 경상도 3대 시장으로 손꼽히는 영천 5일장, 그리고 조양호
(영천댐)등이 있다 하겠으며, 특히 영천댐은 자양면의 5개 마을이 수몰되며
80년도에 준공된 댐인데, 뜻밖에도 이 댐의 관할사무소는 포항에 있고 포항
의 식수와 포철등의 공업용수로 보내진다고 한다.

정작 영천시민들은 역시 낙동강 수계인 안동의 임하댐에 터널을 통한 도수
로를 연결하여 영천댐으로 물을 끌어들인 뒤, 비로소 그 물을 사용할 수 있
다고 한다. 영천댐에 모여지는 물은 포항시 죽장면의 가사령에서 발원되는
자호천의 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다.

도농통합 도시인 영천시의 인구는 2001년 12월 말 현재 약 12만명이고,
면적은 919.74평방키로미터로 경상북도 면적의 4.8%를 점하고 있고, 이 중
임야가 69%, 경지가 18%, 기타 13%로 구성되어 있다. 행정구역은 1읍,10면,
5동,398통리가 있다.

이 지역의 특산물로서는 예전에는 사과가 많이 났으나 수령이 오래되어 질
좋은 제품이 나오지 않자 사과농사는 쇠퇴하여 이웃의 포항 기북면등에 그
명성을 넘겨주었고, 지금은 포도,복숭아,양파등의 재배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2. 고개, 무서운 사람의 흔적들 ...

이 번 구간은 병천의 집안 제사로 인하여 당일산행으로 답사를 하기로 했다.
답사거리도 도상거리 약 11Km로 모처럼 짧게 잡았다.이른 아침(06:30) 연산
동 만어산장에 도착하여 2차 집결지인 양산으로 이동한다. 귀선누님의 夫君
이신 만어의 안사장께서 직접 차를 몰고 누님을 집결지로 모시고 왔다. 지난
번 누님의 백두대간산행기 출간기념회 때 느낀 일이지만 누님의 산행에 대한
지원이 대단한 듯하다.

이른 시각에 창원에서 출발하는 뫼벗팀의 산행대장 환상의 교통편 연결이
아무래도 힘겨운 모양이다. 양산에서 거의 1시간 가량을 기다려 합류하게
된다. 차량이동은 경부고속도로 영천 I.C에서 빠져나와 영천댐을 거쳐 답사
기점인 한티재로 향하기로 한다.

영천 시가지는 대체적으로 활력을 띠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갈수록 도로여건
이 좋아지고 있는 데서 그 느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역시 대도시,공업도시,
관광도시인 대구,포항,경주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그 관문으로서, 또 주요공
단을 뒷받침하는 배후 도시로서의 역할과 비중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
다.

조양호, 영천호, 영천댐, 자양댐... 여러 다른 이름을 가진, 같은 그 곳...

아침에 맞이하는 내륙의 거대한 호수를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댐관리소앞에 차를 주차하고 호수를 둘러본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겨울가뭄
에 수량이 엄청 줄어 있다. 하지만 길을 걷는 나그네들의 가슴을 쏴아하고
열어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쇠오리떼가 무리지어 평화롭게 유영하는 모습
을 호수를 빙 두르며 나있는 69번 도로를 따라 가며 바라보다, 잠시 우리도
가벼운 평화로움에 빠져 본다. 호수가의 물이 빠진 곳에는 드문드문 수몰된
논들이 드러나 있다.

09:20 차량으로 한티재 옛 임도도착.
09:45 산행시작

지난 구간 내려온 맞은 편의 산자락으로 잠시 오르면 무덤이 나오고 그 왼쪽
으로 마루금길이 진행된다. 숲은 낙엽송과 가시나무등 덤불나무가 어수선하
게 뒤섞여 있다. 잎이 져버린 겨울 낙엽송의 칙칙한 숲을 잠시 진행하니 이
내 키가 크지는 않지만 푸른 소나무숲이 마루금길 좌우로 이어진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다. 푸른 소나무의 가지 끝이 댕강댕강 잘린
채 어지러이 숲속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져 있을까하고 궁금해하니 '아마도 청설모의 소행일 것'
이라하는 용면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 하다. 한참동안 계속되는 소나무숲은
예외없이 이런 봉변을 당하고 있다. 평평하고 너른 산길이 열려 있고, 축대
를 쌓은 흔적이 있는 430고지에 도착한다. 10:02

약 5분간 선채로 휴식을 취한 후 출발한다. 길은 여전히 너르게 잘 나있고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다. 능선턱을 오르면 다시 평평해지는 산길 좌우 숲
의 나무들에 지우개 크기의 작은 양철조각들이 못질로 박혀져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흐린 날씨이나 기온은 높아 따뜻하다 못해 덥다. 1월 한겨울의 산행임에도
대부분 쟈켓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다. 오늘 오후에는 비가 올 것이
라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경사가 심하고 낙엽이 두텁게 깔려 미끄러운 길을
진행하면 봉우리 앞둔 곳에 무덤 1기가 나타나고, 약 10분여 진행하면 봉우
리에 닿는다.

10:25 545봉 도착
둥그스름하고 평평한 봉우리인 이 곳에서는 길이 진행방향으로 좌측,방위각
약 205도 방향으로 길이 꺾인다. 그리고 우측으로도 가지능선이 연결되어
601.1봉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지능선이 포항시 죽장면과 영천시 자양면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긴 시간 동안 낙동정맥의 산자락을 품으며 함께하던
죽장의 노래가 끝나는 곳이다.

진행방향의 왼쪽 산자락으로는 여전히 포항시 기계면(남계리)이 산자락을 떠
안으며 진행한다. 개스가 꽉 차 있는 대기에 사방의 시계(視界)가 닫혀있다.

무엇인가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 있음일까?
하늘은 빗장을 걸어놓고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온통 낙엽천지인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길을 걷는 사이 땀에 흠뻑 젖게 된다.
잠시 선 채로 휴식을 취한 후 출발.

마루금 좌측으로 소로가 보이며 그 곳으로 지능선이 흐른다. 10:40
계속 너르고 평평한 길로 산길은 잘 나있다. 좌측으로 무덤2기가 나타나고
무릎까지 차오르는 낙엽을 헤쳐나가듯 진행한다.

10:50 안동 권씨 무덤지나 안부도착.
이 안부에서는 좌.우측으로 모두 산길이 나있다. 좌측으로는 포항 기계면의
남계리 南溪池가 있는 점말 마을쪽으로, 우측으로는 영천 자양면 도일리의
중도일, 신당마을로 연결된다. 500고지로 오르는 길이 길게 이어져 조금 힘
이 든다. 참나무의 마른 낙엽들이 밟히며 서걱거리는 소리는 거의 아우성에
가깝다.

봉우리에 오르면 우측으로 블랫재를 지나가는 도로와 그 뒤로 제법 너른 도
일리의 마을들이 보인다. 급경사길로 길이 진행되고 경사가 끝날 무렵 우측
에 훼손된 무덤이 있고 솔가리가 많이 깔린 낮은 소나무숲이 나타난다.
역시 이곳에도 산행초입과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잔가지들이 어지러이 잘린
채 떨어져 있다. 블랫재를 앞두고 도로를 만드느라 절개한 사면을 내려오는
데 경사가 급해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다. 산길을 걷다가 이렇게 도로를 내느
라 파헤쳐진 절개지를 만나는 일은 마음이 편치도 않거니와 지나가기도 쉽지
않아 어이없을 때가 많다.

11:15 블랫재 도착/중식/휴식

블랫재를 내려서면 맞은편 산자락 아래로 무덤4기(분성 김씨)가 잘 조성되어
있는 가족묘가 있고 도로는 비포장이나 너른 편이다. 이 고개는 포항 기계면
남계리와 영천 자양면의 도일리로 연결된다. 절개된 사면의 흙들이 얼었다가
녹아서인지 저절로 흘러내리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너른 도로상이라 모처럼 간단한 취사를 하는데, 만두와 떡국이 먹을만하다.

블랫재...
참으로 특이한 이름이다. 나는 이 이름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 한국전쟁때
미군으로부터 얻게된 이름인가?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름의 유래를 조
사해보았더니 말의 변형이 우스울 정도로 너무 심하다. 이 이름의 어원은
不來, 또는 佛來라고 한다. 재를 넘어가면 도적이나 야수의 피해로 돌아오지
못하는 길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야기와 옛날 절터골이 있어 부처가 넘어오는
길이기 때문에 그리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이 이름이 변하여 블랫으로 되었
는데 이 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의 이름은 불래마을이다.

이 고개로 20여년전에 송수관을 묻어 영천댐의 물을 포항으로 끌어 간다고
한다.

모처럼 여기서 우리와 반대방향으로 마루금길을 진행하는 서울의 마루금답사
팀(서울 마루클럽)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인원이 무척 많은 듯하다.
무박으로 새벽 3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8시간정도 걸어왔다고 하는데 오늘은
한티재까지 진행할 예정이라한다. 서울로 돌아가야하는 산유화의 눈이 반짝
거리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으니 어쩌랴, 따라갈 수도 없고...
그 팀중 한분은 낙엽러셀을 잘 해 놓았노라고 너스레를 떠는데, 역시 우리도
길을 잘 내어 놓았노라 응수하며 산꾼들과의 여러 유쾌한 농담들이 오간다.

12:20 서울팀과 작별인사를 건네고 우리가 먼저 출발한다.

낙엽이 두터운 완만한 오름길로 능선턱을 통과하면 길은 슬그머니 좌측으로
방향을 틀며 진행되고 좌측의 깊은 산자락 사이로 마을이 아득히 보인다.

12:35 능선턱을 올라 평평한 봉우리가 끝나는 지점에 방위표가 새겨진 콘크
리트 파일이 세워져 있다. 지형도상 삼각점표시는 없는 곳인데, No.5 2000년
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설치한 모양이다. 내리막길로 이어
지는 길 중간에 축대까지 쌓아 아주 크기는하지만 훼손이 심한 무덤이 나온
다. 잘록이(鞍部)를 통과하여 다시 오르막을 오르다보면 우측 도일리의 마을
이 산자락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깊은 산간마을 치고는 도
로가 잘 나있는 듯하고 논도 너른 편이다.

12:44 블랫재에서 만난 서울팀의 후미진을 여기서 만나는데 선두와의 거리차
이가 많이 난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다시 좌우측으로 소로가 보인다. 이
길 역시 좌측으로는 불래마을로, 우측은 도일리의 상도일마을로 내려가는 길
인데 상도일의 마을은 산자락에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12:59 낙엽이 많아 미끄러운 오름길을 힘들여 올라 평평한 봉우리인 421.2봉
에 도착한다. 소나무와 잡목숲 사이 공간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1978년도
건설부)

13:14 오랜 휴식후 출발. 당일 산행이라 운행구간을 짧게 잡다보니 운행시간
에 다소 여유를 가진다. 하지만 400고지에서 거의 800고지 가까이 고도를 높
여야하는 이제부터의 오름길은 만만치가 않을것이다. 낙동마루금은 좌우로
가지자락을 늘어 놓으며 마루금 주위로 아득하게 막힌 첩첩산중을 이룬다.

13:27 마루금길을 좌측으로 트래버스하는 길에는 여기저기 간벌한 흔적이 있
고 숲은 훤하다. 큰 봉분의 분성 김씨 묘를 지나 오름길은 계속된다. 이 곳
무덤 주인들의 姓씨는 金씨와 裵씨가 많은데 本은 모두 盆성(城?)이다. 아직
지칠 정도는 아니나 땀이 비오듯 흘러 내린다. 우측의 상도일쪽에는 산자락
으로 막히는 깊숙한 곳까지 논밭이 개간되어 있어 산자락에 터잡고 사는 이
들의 치열한 삶의 자취을 느끼게 된다.

13:42 뒤틀어진 가지가 인상적인 나이 많은 소나무가 한그루 있는 조그만 봉
우리를 통과하여 급사면의 굴참나무숲속 길을 올라 600고지 능선턱에서 휴식
을 취한다. 13:49

이 때 우리는 참나무가지끝에 동그랗게 매달린 노란 열매를 발견한다.
기생목인 겨우살이의 열매인데 엉큼하게도 마치 참나무의 열매인냥 매달려
있다. 다시 능선턱을 오른 다음 완만한 사면으로 고도를 천천히 올리는데 좌
측 10시 방향에 있는 큰바위가 눈길을 끈다. 13:55

편안한 흙길이 돌길로 바뀌는 오름길로 진행하다가 연세가 많으신 등산객을
만난다. 이제 운주산(806.2M)의 산길로 접어들었나보다. 운주산은 이곳 포항
이나 영천지방에서 매우 아끼는 산이기도하고 부산.대구,울산의 등산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14:02 조금전 보이던 좌측의 큰바위옆을 통과하니 억새가 무성한 평평한 터
가 나온다. 아마도 헬기장이었던 곳 같다. 평평한 마루금길은 낙엽이 무성
한 편한 길로 이어진다. 좌측의 산자락 아래로 기계면의 분지에 들어앉은
넓은 들이 흐린 시계(視界)에서도 탁 트이며 드러난다. 운주산으로 연결
되는 등산로는 아주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고, 시그널도 많이 보이기 시작
한다. 이곳에서 국제신문 근교산팀의 노란 시그날을 만나 반가웠다.
여기서 우측에 바로 보이는 산은 운주산의 전위봉인 797.8봉이다.
낙동마루금길은 운주산 바로 앞의 이 전위봉을 통과하며 운주산 정상은 지
나지 않는다.

근 3주만에 산을 찾는 귀선누님은 계속해서 고도를 올리는 오르막길에 몹씨
힘이 드는 모양이다. 아내로서 입시생의 엄마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 요즈
음 누님의 심신은 많이 지쳐있다. 하지만 이렇게 산을 찾으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정화할 수 있으니, 힘든 산행후의 보람은 더 클 것이라 생각된다.
같이 서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다시 능선턱을 오르면 바로 진행되는 마루금길과 오른쪽의 운주산으로 연결
되는 길이 있다. 나와 귀선누님은 우측의 사면을 가로질러 난 길로 진행하다
운주산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올라 797.8봉에 도착하고 나머지는 바로 마루금
길을 올라 돌탑이 있는 797.8봉에 도착한다.
14:21

운주산 정상은 이 곳에서 약 1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봉우리에서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조망해보지만 시계가 흐려 잘 보이지 않
는다. 다만 기계면의 너른 저수지와 논은 시야에 들어오고 개스가 걷힐 때
쯤 살짝 서쪽방향으로 영천호로 들어가는 물길이 반짝이며 보인다. 지난 구
간 사방이 열리며 들뜬 마음으로 조망을 하던, 우리가 지나온 676.8봉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운주산에 여러 색깔의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람이 불어오니 이제 춥고 손도 시렵다.

차가운 바람을 맞자 문득 작년 초 지리산 밤머리재에서 왕등재를 오르며 떠
올랐던 작가 선생님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국제신문 연재소설 '만월까
지' 저자 유영국)

'바람, 바람은 머물면 죽는다.
바람은 움직여야만 산다.'

이 이야기는 역마살에 관한 이야기다.
끊임없이 걸음을 걸어도 길에 대한 미련이 늘 유년의 배고픔처럼 따라 다니
는 이 심각한 증세를 나는 위의 두 줄의 말로써 변명하고 또 스스로에게 최
면을 걸듯 자위한다.

벗어두었던 쟈켓을 모처럼 다시 입는다. 오랜 휴식 후 출발. 14:41

오늘 처음 만나 낙동마루금길을 같이하던 영천 자양면은 짧게 지나온 길을
운주산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능선을 경계로 임고면에 길을 비켜주게 된다.

진행방향 좌측, 거의 정동쪽으로 산길은 이어진다. 797.8봉을 내려오면 오른
쪽 조금 떨어진 곳에 잘 정돈된 무덤이 보이고 운주산으로 바로 질러가는 등
산로가 보인다. 숲과 산길 모두 정감이 가는 깨끗하고 포근한 육산의 모습이
다. 산길 중간에 휴식하기 좋은 평평한 너른바위가 있다.

방위각 약 80도의 거의 정동 방향으로 길이 진행된다.
완만한 오름길 지나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길이 다소 좁고 좌우측 산자락의
경사가 아주 심하다. 산자락 아래로부터 개스가 서서히 밀려 올라오더니 이
내 사방이 잿빛으로 어두어진다. 금방 비라도 뿌릴듯한 모습이다.

잠깐씩 마루금길을 우회하며 동쪽으로 향하는 산길은 오솔길처럼 편안하다.
숲에는, 바라볼 때마다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서어나무가 많다.

15:07 동쪽으로 향하던 산길은 정면의 봉우리 지나기 전 슬쩍 오른쪽으로 방
향을 틀며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왼쪽 산자락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있는 안
부를 지나 마루금길 오른쪽으로 트래버스하여 연결되는 길은 여전히 서어나
무와 낙엽송이 이따금씩 군락을 이루는 너른 육산길이다.

15:19 손질이 잘 되어있는 무덤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산이 일렁이기 사작한
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제낀다. 편안하게 이어지던 길은 능선턱을 두어번
지나며 조금씩 다시 고도를 올린다.

15:34 휴식
15:44 출발

15:46 돌탑이 세워져 있는 621.4봉을 통과한다.진행방향은 방위각 140도의
남동쪽 방향이다. 이제 오늘 걸어가야 할 길에 더 이상 오르막은 없다.
서서히 추워지고 손도 시려워지지만 운행할 때에는 또 땀범벅이 되어 쟈켓과
장갑을 부지런히 입었다 벗었다 반복한다.

오른쪽으로 분지를 이룬 넓은 임고면의 마을들이 보이고 큰 도로가 지나가는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하늘은 무엇이 불만인지 잿빛을 가득 머물
고 나그네들을 독촉하듯 내려앉아 지켜보고 있다.

잠시 산길을 진행하면 좌측 기계면 쪽으로 이리재 근처 도로공사가 한창인
모습이 보인다.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 이곳의 산자락
들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또 높이 파 헤쳐져 있었다. 멀리서 들려
오는 중장비의 기계음 소리를 무심히 들으며 낙엽이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을 내려선다.

도로를 내느라 깎아 낸 절개지가 엄청 높아 내려갈 길이 쉽지 않다.
진행방향의 우측으로 내려오다 절개지 내려오는 길을 찾지 못해 되돌아와
좌측길로 진행하니 절개지를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16:16 이리재 도착/산행종료
포장이 되지 않은 이리재에 도착한다. 참고로 고속도로는 터널을 뚫어 길을
내었다. 영천쪽 고개 바로 옆에는 큰 공터가 있는데 휴게소를 짓기위해 터를
닦아놓은 곳 같다. 영목의 차가 영천쪽 고개 아래에 보인다. 이리재는 포항
기계면 봉계리와 영천 임고면 수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목재를 가득 실은 낡은 트럭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힘겹게 올라가고,
도로공사 흙을 운반하는 덤프트럭들이 쉴새 없이 지나다니는 고개를 얼른
벗어나기로 한다.

사람의 발길과 그 남긴 흔적이 참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다.

다. 돌아오는 길.

운주산에서 흘러내려 영천 자양면과 임고면을 가르는 능선이, 귀가길 차량
이동하는 도로와 함께 우측에서 쭉 같이 달려 온다.이 산자락 뒤쪽이 영천
호의 물을 가두는 자연벽인 셈이다. 임고면으로 해서 영천으로 나오는 길에
는 당곡지란 큰 호수가 있고, 길가에는 복숭아 나무들이 많은 모습이 인상
적이었으며, 내려오는 길 좌측 하천을 따라 한동안 산자락을 받치고 있는
선바위(입암)들의 풍경도 좋았다.

그리고...
너른 영천의 분지를 지나는 사이 만나게 되는 풍경....
눈이 부시지 않고 벌겋게 물들며 지는 해의 모습은 그렇게 다정다감할 수가
없었고 그 다정함속에는 넌지시 건네는 말이 있었다.

수고많았네. 나그네들이여...
그대들의 길을 걸음에 박수치며, 나의 안온한 모습을 보내마.
부디 길 위의 아름다운 풍경과,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거라...

라. 15구간을 마치며.

이번 구간의 마루금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운주산이 거의 중간에 놓여있
어 길 상태는 아주 양호하였다. 또 당일 산행이고 다음 구간을 고려하여 거
리를 짧게 잡다보니 아주 여유로운 답사가 되었다.

두번의 큰 고개를 지나는 사이 낙동마루금길은 처참할 정도로 파헤쳐 있음
을 목격하게 된다. 이제 만성이 되었는지 아니면 무력감 때문인지 나는 애
써 눈길을 외면하며 마음을 다독거릴 수 밖에 없었다.

뒷풀이는 경부고속도 건천 I.C에서 빠져나와 모처럼 경주 산내의 송원식당
에서 쇠고기 숯불구이로 해결함.


(기록/정리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