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이었다.
어제 마신 술이 과했는지 머리가 띵한 게 숙취가 가시지를 않았다.
출근 시간이 빠듯해 별 생각없이 지하철을 타러 바삐 걸어가는데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어떤 중년의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지나간다.
그런데 그 쳐다보는 얼굴 모습이 아침부터 뭘 잘 못 먹은 건지, 아니면 누구랑
싸웠는지 모르지만 마주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표정이 일그러져있다.
조금은 전투근성(?)이 있는 나도, 일단 얼굴을 찌뿌린 채
그 남자를 빤히 쳐다
보며 걷다가, 순간적으로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나는 그 이의 얼굴을 외면해버리고만다.
'아뿔사..그렇구나..! 처음 내가 본 그 남자의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이 나를 처음 쳐다본 얼굴 모습일 수도 있겠구나...
그건 그 사람이 기분나빠서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
아니라, 머리가 무거워 찡그린
얼굴에, 또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표정이 아닌, 차갑고 딱딱한
나의 모습이 저 사람으로하여금,
"저 양반은 아침부터 왜 저런 얼굴로 살아갈까?"하는 측은하고도 불쾌한 생각을
갖게 만들었고, 나를 나무라는 모습이 저런 표정을 짓게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정말 아찔했다. 대하는 상대방을 늘 편하게 해준다고
자부하며, 적어도 주위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있다는 생각( 아니 착각이라는
말이 옳겠다)으로 살아가던 나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무심결에 내가 하는 행동이나 나타내는 표정들이 저런 모습으로 비춰진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러 그러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살이에 부대끼고 또 겪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의 얼굴이 점차 변해가는
것은 아닐까?
의식적으로라도 입의 양쪽 끝이 위로 올려진 그림처럼 웃는 얼굴을 지어 다른 사람이
바라볼 때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도록 연습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남을 배려하며 산다는 것은 이런 불특정적이고, 다중을
대함에도 마음 쓰임이 필요할
일일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내내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닦으며 늘어뜨린 입술의 양끝을
끌어올리는 연습을 해보았다. 물론 신문으로 바짝 가려서이지만...
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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