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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비망록]지리산 편지

[하봉에서 바라 본 초암릉. 사진 중앙, 가로로 가르지르는 능선이 창암산능선이고, 

중앙 맨 뒤에 있는 능선이 삼정산 능선, 소위 중북부능선이다. 모두 지리산 북부 함양군에

드리워진 산자락들이다.]

 

 

 

지리산을 사랑하는 金兄께....

金兄,

저는 어제 지리산 조개골로 하봉에 올라, 깊은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계곡산행을 하고 왔습니다.

새벽 4시반에 출발하여 오후 4시반에 산행을 종료한 조금 힘든 산행이
었습니다만, 이제껏 보아오던 지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들을
만나고 온 터라 아직도 그 감흥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봉...
智異靈峰 천왕봉에서 중봉을 거쳐 주능선이 잠깐 북진하는 곳에 있고,
능선 종주를 목적으로 걷는 자는 무심코 지나가기도 하는 평평한 바위 
봉우리...

그곳에서 나는 보았습니다.

흐린 날씨였지만 개스띠가 온 세상을 원으로 빙 두르는 그 공간 안에

들어 있던, 눈이 시리고 머리가 따끔거릴 정도의 그 경이로운 풍경들을

말입니다.

조용하고 숨막히는 듯한 단조로운 수묵의 모습이었으되,

형언할 수 없는 깊이와 瑞氣가 어린 우리의 산, 그리고 강과 바다!

 

 

지리의 주능선은 말 할 것도 없고,
덕유산, 가야산, 지리 중북부능선상의 삼정산...
그리고 삼정산 아래 그리움처럼 아득히 자리하고 있을 문수암,
삼봉산, 만복대, 고리봉, 그리고 놀랍게도 노고단 뒤에 슬그머니
자리잡고 있는 무등산의 실루엣....

東과 南으로 끝없이 흘러가는 산너울이 끝나는 그 곳에 귀한 모습을
드러낸 금빛 남해바다...

그 풍경들에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끼고는 눈을 감았다가, 

가슴을 쓸어 내린 후 더 없는 충만함으로 그 풍경들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6시간 동안 계속된, 험한 계곡으로 내려오는 산행은,

'니가 지리에 대해 아는게 없음'이라는 각서를 쓰라고 종용받는 듯
했습니다.

대략 도상거리로 가늠해 볼 때 3시간이면 충분히 내려 설 수 있을

것 같던 하산길을 무려 6시간이나 악전고투속에 내려왔으니까요...
 
더욱 열심히 알려고 노력하겠노라는 스스로의 다짐으로 그 무거움
에서 벗어나려 했습니다만, 한가지 분명한건 지리산에 다가설 수록
더욱 지리산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 저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지금, 
저는 또 다시

마음이 바빠집니다. 그 니를 알지 못하고 지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 듯 말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겠지요. 하지만 저에게 알 수 없는 삶의 힘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니 어쩔 수 없이 그리 되나 봅니다.

   

어느듯 깊어진 사랑은, 그 깊이 만큼의 그리움을 품게 됩니다.

그리움은 저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합니다만 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고, 해소되지 않는 갈증으로 더욱 목마르게 됩니다.

 

저는 기꺼이 그 목마름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며, 언제나 저와 함께

하게 되기를 빌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 목마름에 조금씩 물을 축여주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새삼스럽게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金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에 두서 없이 몇 자 드리니 부디 나무라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모쪼록 강건한 몸과 마음 유지하시고, 

지리의 자락에서 언제나 몸과 마음이 평화롭기를 빕니다.

 

 

[하봉에서 바라 본 두류능선과 산그리메]



 

[5년 전 여름 어느 날, 지리산을 다녀와서]

 

두류/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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