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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詩]봄까치꽃/정일근

[국제시단] 봄까치꽃 /정일근

 

 

[개불알풀/봄까치꽃]



 

겨울 속에서 봄을 보려면

신도 경건하게 무릎 꿇어야 하리라

내 사는 은현리서 제일 먼저 피는 꽃

대한과 입춘 사이 봄까치꽃 피어

가난한 시인은 무릎 꿇고 꽃을 영접한다

양지바른 길가 까치 떼처럼 무리지어 앉아

저마다 보라빛 꽃, 꽃 피워서

봄의 전령사는 뜨거운 소식 전하느니

까치도 숨어버린 찬바람 속에서

봄까치꽃 피어서 까치소리 자욱하다

그러나 콩알보다 더 작은 꽃은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느니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들리지도 않느니

그 꽃 보려고 시인이 무릎 꿇고 돌아간 뒤

솥발산도 머리 숙여 꽃에 귀 대고

오래 까치소리 듣다 제 자리로 돌아간다

두툼한 외투에 쌓인 눈을 툭툭 털고

봄이 산 135-31번지 초인종을 누르는 날







시작 노트 - 내가 계속 도시에서 살았다면 나는 '봄까치꽃'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벌써
봄까치꽃이 핀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자연은 시인을 가르치는 스승이고 시인은 자연의 말씀을
전하는 전령사다. 자연이 내게 말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미 봄이 온 것을 알려라'.
그래서 봄까치꽃이 핀 것이다.



약력 -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
수상.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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