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치밭목 오름길에 있는 무제치기폭포]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산에 가느냐고.
그러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길 찾으러 간다고.
지리산
대원사가 있는 유평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오솔길입니다.
언뜻 언뜻 속살 내비치는 자주끝동 반회장저고리 스란치마의
옷고름을 풀어놓은 듯한 가을 오솔길은,귀 막힌 아래 세상 사람들
귀뚤귀뚤 귀 뚫으라고 귀뚜라미가 우는 취밭목으로 인도합니다.
큰 산을 넘는 길은 오직 오솔길뿐입니다. 오솔길은 높이 오르는
길이 아니라 깊이로 파고드는 길이기에 태풍 '나비'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듯 끊기고 끊어진 듯 이어지는 오솔길은 하늘에 다다르는
지상의 유일한 길입니다. 아스팔트 포장의 큰길이 지나가는 곳은
산이 아닙니다.
문명은 더 빠르고 더 넓은 길을 원해서 지리산 성삼재 허리를
잘랐지만 자연은 더 좁고 더 느린 길을 원합니다. 산과 산 사이에는
늘 그런 길이 있습니다.
겨울이 끝나면 얼었던 가슴 풀어 헤쳐 얼레지 제비꽃 곱게 피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오솔길이 있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도
지금 그런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외가닥이지만 질긴.
[산악시인인 권경업 님의 부산일보 기고문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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