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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역사]

거문고 중흥지 '지리산 운상원'

by 지리산 마실 2009. 1. 24.

거문고 중흥지 雲上院
이수기 (논설고문)/경남일보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번지 지리산 반야봉 남쪽 해발 800m의 칠불사(七佛寺) 위의 운상원(雲上院:운상선원:雲上禪院)은 거문고의 중흥지(中興地)다. 칠불사는 서기 97년 가야(伽倻) 수로왕(首露王)의 7왕자가 외삼촌인 장유화상(長有和尙:보옥대사:寶玉大師)을 따라 가야산~산청(산음:山陰)~의령 자굴산~사물현(史勿縣:사천)의 와룡산을 거쳐 101년에 지리산 들어와 칠불사 터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2년간의 수도 끝에 성불한 곳이다.
 ▼삼국사기 권32의 잡지 제1의 악(樂)의 기록은 신라사람 사찬(제8등 벼슬) 공영(恭永)의 아들 옥보고(玉寶高)가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연구, 금곡(琴曲) 30곡을 새로 지였다는 것이다. 금곡은 속명득(續命得)에게 전해졌고, 속명득은 귀금(貴金)~이찬(伊飡)~윤흥(允興)~안장(安長)~청장(淸長)~극상(克相)~극종(克宗) 등에게 전수되어 민간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거문고는 6줄로 된 우리나라의 대표적 현악기다. 금법(琴法)의 중흥자는 옥보고이고, 중흥지는 지리산 운상원 즉, 하동군 화개동 칠불사 운상원이다. 옥보고가 운상원에서 거문고 신곡 30곡을 지였다고 전해지는 시기는 대체로 신라 경덕왕(742~764년)때로 보고 있다. 옥보고로부터 약 1세기가 지난 뒤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져 보급됐다 한다.
 ▼옥보고(玉寶高)~속명득(續命得)~귀금(貴金)의 거문고는 신라 삼현삼죽(三絃三竹)의 하나로 향악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조선시대 거문고는 궁중에서보다 민간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거문고는 일부 양반들과 중인계층에 수용되어 선비들의 필수품의 하나로 여겨졌다. 아쉬운 점은 당시의 악보가 모두 전해졌다면 우리나라 음악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Write : 2009-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