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지리산 칠선계곡, 10년만의 개방

생명력, 자연의 신비 그 자체
100대 명산 (5)칠선계곡, 10년만의 개방
최창민 기자  

 10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칠선계곡에 생명의 소리가 들렸다.
 5월의 수림은 울창했고 땅이 거른 자연수는 깨끗했다. 그 물이 빚은 담과 소는 자연의 신비, 그 자체였다.


 하늘을 나는 새, 계곡을 흐르는 물살, 그들의 궤적은 힘이 느껴졌고 동물의 발자국과 움직임은 생명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는 수수했고 동물의 행동은 자유로웠다.


 사람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연은 불과 10년만에 스스로의 복원력으로 치유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칠선계곡은 1999년 자연휴식년제 시행으로 비선담∼마폭∼천왕봉 6.2㎞ 구간은 출입이 통제돼 온데 이어 지난해 특별보호구로 지정돼 오는 2027년까지 20년 동안 탐방객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된다. 


 그러나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칠선계곡 탐방예약·가이드제’를 도입, 지난 10년 간 인간의 간섭이 배제된 칠선계곡을 직접 보고,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5∼6월, 9∼10월 4개월에 한해 매주 월·목요일 2차례씩 1회 40명 이내의 탐방객을 예약받아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칠선계곡을 제한적으로 탐방할수 있도록 했다.


 경남일보 100주년 기념 100명산 기행취재팀은 10년 만의 칠선계곡 개방에 앞서 지난 1일 추성리에서 칠선폭포 마폭을 거쳐 천왕봉을 올랐다. 탐방에는 국립공원직원을 비롯한 지리산 지킴이 12명이 동행, 칠선계곡 생태 모니터링과 탐방객 가이드 리허설도 겸했다.
 
 칠선계곡은 알려진 대로 천불동, 탐라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힐 만큼 원시림과 폭포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지리 10경 중 하나로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이면서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이 자랑한다.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있으며 대략 아래쪽은 담과 소, 위쪽은 폭포가 위치한다.


 여름에는 태풍과 폭우 등으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계곡물이 불어나 길을 끊고 계곡을 삼킨다.


 겨울역시 남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추운 날씨로 체감온도가 10도 더 이상 떨어져 갖가지 산악사고가 발생한다.


 10여km가 넘는 장거리에다 수직벽에 가까운 칠선계곡코스는 절경에서나 산행의 어려움에서나 탐방객을 질식시키고도 남음이 있다. 끝없는 인내를 바탕으로 줄기차게 올라야만 이 계곡의 묘미를 탐닉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험준한 계곡과 산은 야생반달곰의 마지막 서식처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취재팀은 그 계곡, 그 땅, 그 물, 그 나무, 그들의 환경을 살짝 엿보았다.
 산행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됐다. 위험한 산이기에 국립공원관계자들의 탐방객에 대한 준비는 철저했다.


 스트레칭, 병력, 약물복용여부, 복장과 등산화 도시락 점검은 필수에 여행자보험까지, 심지어 배낭을 열어 음식준비여부까지 점검한다. 한 가지라도 미비하면 탐방을 배제시킨다. 심하다 싶을 정도지만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라고 생각하면 수긍이 간다. 그만큼 이 산행에 대한 각오가 남달라야함을 느낄 수 있다.
 
 #대나무 산문 열면 본격적인 산행


 마을을 관통, 다리를 건너 오름짓하면 먼당에 정자나무가 버티고 선다. 거기서 숨고르기한 후 10여분을 오르면 두지터에 닿는다.


 마을 형상이 뒤주를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 과거 담뱃잎 건조장을 제외하고는 별장 같은 집이 몇 채 들어서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이어 대나무로 만든 산문을 열면 본격적인 산행.
 칠선계곡에서 처음 맞는 소는 철다리에서 볼 수 있다. 이름은 없고 그냥 쏘(소)다. 마을사람들이 산신제를 지내는 용소는 아래에 있지만 통제돼 지름길로 왔기 때문에 볼 수는 없다.


 등산로를 가로질러 동물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토끼, 노루, 아니면 산돼지? 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호두나무가 있는 곳은 과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다.


 또 다른 먼당이 추성 망바위. 여기서부터 계곡과 헤어져 산행한다. 4km 지점인 선녀탕까지 육산과 너덜길이 교차해 이어진다.
 
#칠선녀 목욕한 선녀탕 운치더해


 계곡을 가로질러 조망하기 좋게 목책으로 정비해놓았다. 선녀탕은 한 가운데 바위가 솟아 있는 것이 특징. 물이 맑은데 물고기는 없다. 험한 지형상 올라올 수가 없다고 한다.


 칠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곳이다. 소 위로 적당한 크기의 단풍나무가 길게 늘어져 운치를 더한다. 겨울에는 눈을, 봄과 여름에는 신록을, 가을에는 제 이름대로 단풍을 달고 있으리라.


 선녀탕유래. 옛날 일곱 선녀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곰이 선녀를 탐하려고 선녀의 옷을 훔쳐 숨겼다. 목욕 후 하늘로 가려던 선녀는 옷이 사라진 것을 알고 낭패한다. 이때 사향노루가 자신의 뿔에 걸려 있던 옷을 선녀에게 내줘 무사히 하늘로 올라갔다. 미련한 곰이 옷을 숨긴다는 것이 잠자고 있던 노루의 뿔에 걸어 놓은 것이다. 훗날 선녀들은 감사의 표시로 노루를 경치가 좋은 칠선계곡에 살게 했고 곰은 인근 국골로 내쳤다는 전설이다.


 선녀탕보다 더 시각적인 곳이 옥녀탕이다. 위에 형성된 암반지형이 청정수를 한곳에 모아 옥녀탕으로 쏟아낸다.


 오를수록 수량이 적고 경사가 심해 소와 담의 규모가 작아져야하나 오히려 더 큰 소 하나가 버티고 선다. 비선담이다. 철다리에서 아래쪽으로 봐야한다.


 이곳에서부터 원시림이 시작된다. 지난 10여년 동안 통제돼 사람의 발길이 없었던 구간이다. 등산로 곳곳에는 고목이나 잡목이 길을 가로막고 쓰러져 있어 구부리고 넘어 헤쳐나가야한다.


 이런들 어떠리, 저리한들 어떠하리. 인위적 간섭 없이 동물들에 의해 비바람에 의해 그렇게 자연적으로 분해되고 있다.


 등산로를 벗어나 그늘진 곳에는 원시림에서만 볼 수 있는 이끼를 비롯한 고사리등 양치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초록의 양탄자처럼 사방을 덮고 있다. 바위를 덮은 것은 물론이고 땅도 바위도 덮었으며 살아 있는 고목까지 뒤덮을 기세다.


 땅기운을 받은 야생초는 제각기 꽃을 피워 지천에 널려 있다. 다람쥐, 뻐꾸기가 눈앞에서 어지럽게한다.


 그야말로 놀라운 자생력이다. 철쭉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가장 자유롭게 늘어져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파리를 피우기 전 꽃을 먼저 피워낸 모습이 목련처럼 소담스럽다.


 곧이어 이 계곡의 대명사 칠선폭포가 나타난다.
 폭포의 높이는 대략 5m정도로 가늠이 가능하지만 물길은 시퍼렇다 못해 검어 가늠하기가 어렵다. 폭포의 위용이 바람과 물보라를 일으켰다. 물 알갱이가 얼굴에 달라붙는다.
 
 #3층폭포, 자연의 오묘함 감탄만 나와


 3층폭포는 다양함이 특징이다. 칠선계곡에 있는 폭포를 이곳 한곳에 모아놓은 것 같다.


 혹시 다른 폭포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다면 이것을 한번 보시라며 마치 세트로 전시해 놓은 것 같다.


 아래쪽 폭포는 위용을 뽐내는 것이 칠선폭을 닮았다. 중간 폭포는 암반으로 된 옥녀탕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제일 위는 마폭처럼 철철거린다.


 그중 중간 폭포가 압권이다. 두 줄기의 물이 떨어져 담을 이루고 다시 아래쪽 폭포로 곤두박질 치는데 하나의 암반위에 만들어진 형세가 특이하다. 도무지 형언한 길이 별로 없고 자연의 오묘함에 감탄만 나온다. 조사팀을 만났는데 물은 알카리수에 가깝다고 한다.


 울창한 수림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휴식년제 모니터링 구역이 나타난다. 야생화와 초목이 지천이다. 이어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물줄기 두 갈래가 만나는 마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천왕봉과 중봉사이의 물줄기와 통천문 아래의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10년만의 개방…조용하던 산 ‘시끌벅적’


 이곳에서 천왕봉까지는 숨 가쁜 오름길을 각오해야한다.
 경사가 급한 곳은 수직 벽에 가까워 코가 땅에 닿을 정도이며 컨디션에 따라 시간은 1∼ 2시간 소요된다.


 천왕봉 2∼1 km전에는 몇 백년이 됨직한 아름드리 주목군락이 주인공이다. 오죽하면 구상나무도 주목처럼 서 있을까. 붉고 비틀어진 것이 주목이요. 비교적 바른 것이 구상나무다. 원시림이 서로 뒤엉켜 씨름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천왕봉이 가까워지면 잣나무가 듬성듬성 보인다.
 이때부터는 수직 벽에 가깝다. 고개를 숙이면 코가 땅에 닿는다. 갑자기 코가 시원해짐을 느껴 흙을 파보니 얼음이 나온다. 지난 겨울에 내린눈이 아직 녹지 않고 있다. 웬걸, 조금 더 올라가니 탐방로가 아예 눈밭이다. 새싹은 아직도 움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허연 눈이 등산길과 경사면을 뒤덮고 있다.


 5월, 도시에는 기온이 30도까지 올라 덥다고 호들갑인데 지리산 북쪽은 아직도 겨울인 것이다. 170개의 철 계단을 지나면 철쭉밭이 나온다. 어느새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하늘이 보인다. 천왕봉이 보인다.


 10년만의 칠선계곡 개방으로 조용하던 이 산이 또 다시 사람의 소리로 시끌벅적해 질 것이다.


 명산의 위용과 칠선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만끽 할 수 있는 산행이 계속되려면 개방 이전보다 더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