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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지리산길 시범 01구간-전북 매동마을-함양 금계마을

숲길 지나 고개 넘고 계곡 따라 산과 나란히 걸어봅니다
지리산길 시범 1구간 ‘전북 매동마을~ 함양 금계마을’

매동마을 → 묵논길 → 개서어나무 → 철쭉 군락길 → 계곡길 → 상황마을 → 다랑논길 → 등구재 → 들꽃

‘장돌뱅이들이 봇짐을 메고 무수히 넘나들던 고갯길, 마을 사람들이 장을 보러 가던 오솔길, 산내(남원) 처녀가 마천(함양) 총각에게 시집가던 숲길….

숲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나타나고 마을길을 지나 논길을 걸으면 다시 마을을 연결하는 지리산 길이 열렸다.

지리산 길’은 지리산 둘레 3개 도(전남·전북·경남)와 5개 시·군(구례·남원·하동·산청·함양), 16개 읍·면, 100여개 마을을 이어주는 800리(300여km)에 이르는 도보길이다.

그 첫 단계로 지리산 길 시범구간인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 경남 함양군 휴천면 송정리 세동마을을 잇는 20.78km이 지난달 27일 개통됐다.

전라도 남원과 경남 함양을 잇는 옛 고갯길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 조망과 층층이 쌓인 다랑이 논, 창원마을 등 11개 산촌마을, 사찰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진다. 다시 마을과 다랑이 논 사이를 걸어가는 ‘다랭이길(10.68km)’과 지리산 빨치산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사람길(10.1km)’로 나눠진다.

제1구간인 ‘다랭이길’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금계마을까지, ‘산사람길’은 함양 마천면 의중마을에서 휴전면 송정리 세동마을까지로 6·25전쟁 당시 야전병원으로 이용된 벽송사와 대나무 숲, 마을어귀 당산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체 트레일 노선의 고도는 구례면 토지면이 50m로 가장 낮고 하동군 악양면 형제봉이 1100m로 가장 높다.

기찬 주말은 다랭이길을 직접 걸으며 숲길로 이어지는 역사의 가르침과 숲길 위로 묻어나는 문화의 향기를 음미하는 소중한 체험을 가졌다.

 

지리산길 시범구간 중 제1구간인 ‘다랭이길’의 첫 출발지점인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

마을 모습이 매화꽃을 닮아 붙여진 매동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 풍경이다.

마을 뒷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지인 등구재 고개까지 5.3km 거리임을 알리는 푯말이 나온다.

따가운 봄햇살에 이마에는 벌써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아무런 준비없이 길을 나선 나그네의 성급함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다행히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이 이마에 맺힌 땅방울을 식혀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솔길을 따라 수북이 쌓인 솔잎을 밟으며 오르는 ‘묵논’길은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길가에 피어난 야생화와 바람소리, 새소리는 홀로 깊은 산중을 걷는 나그네의 훌륭한 벗이 되어 준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속의 아름다운 정취에 취해 산길을 걷다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수령이 400~5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개서어나무’가 숲속 한가운데 버티고 서서 나그네에게 그늘을 제공한다.

오랜 세월 강한 비바람과 맞서며 인고의 세월을 보낸 ‘개서어나무’.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산에서 나무하다 지치면 더위를 식히는 쉼터와 비바람을 피하는 안식처 역할을 했으리라.

나무 아래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뒤 다시 울창한 숲속 오솔길을 따라 오르기를 10여분. 이번엔 철쭉군락지가 나그네를 반긴다.

활짝 피어난 철쭉을 따라 걷는 길이 외롭지만은 않다.

군데군데 지리산길을 알리는 표지판은 초행길인 나그네에게 훌륭한 길 안내자 역할을 한다.

숲속을 벗어나 마을 임도로 들어서자 지리산의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한없이 흐른다. 차가운 계곡물에 얼굴과 발을 담그니 시원하기가 그지없다.

깊은 산중의 오래된 돌담은 옛 사람들이 논을 만들기 위해 만든 축대인 듯 보이지만, 지금은 사람은 떠나고 묵어버린 논은 야생동물들의 삶터가 되어 있었다.

상황마을로 접어들자 치마처럼 펼쳐진 풍요로운 다랑이 논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골마을 농민들은 내달 중순 모내기를 앞두고 땅고르기 작업이 한창이다.

가파른 골짜기에 돌축대를 쌓아 층층이 만든 다랑이 논은 자연의 순수함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고단했던 농민의 애환을 담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을 배경 삼아 펼쳐진 다랑이 논과 산촌마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랑이 논을 지나 300여m의 오르막길을 오르면 고갯마루 ‘등구(登龜)재’가 나타난다. 거북이 등을 닮았다는 옛 전설에서, 등구사라는 절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유래까지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다양하다.

등구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던 고갯길로 함양의 마천 사람들이 남원 인월에 장을 보러 가던 길이었으며, 소장수가 소를 몰고 넘던 고갯길이었다.

등구재를 넘어서면 길게 쭉쭉 뻗은 서나무와 나무 사이로 길게 이어진 숲길이 인상적이다.

숲길을 따라 조금 내려서자 하얗게 피어난 들꽃 사이로 꽃길이 이어져 있고 농민들이 농사를 위해 만든 저수지가 동물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는 옹달샘으로 바뀌었다.

옹달샘 인근에 세워진 푯말에는 ‘쉿! 동물들의 오아시스’라는 글귀와 함께 낮에는 새들이 모여 드는 장소인 만큼 조용히 지나갈 것을 알리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하는 숲길을 지나 아름다운 농촌마을로 소문난 창원마을로 접어들었다.

소를 이용해 논갈이를 하는 전통적인 산촌마을.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말(창고 마을)’이었다가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지리산 천왕봉이 앞산처럼 느껴지는 창원마을의 풍광은 평화롭기만 하다.

고추 모종을 수레 한가득 싣고 언덕길을 오르는 할머니의 모습이 힘겨워 보인다.

언덕길을 함께 오르며 등구재 고갯길에 얽힌 아련힌 추억들을 들려주시는 김점달(70) 할머니.

“50여년 전만 해도 이곳 창원마을에서 남원 인월장을 가려면 반드시 등구재 고개를 넘어야 했다”라며 “이른 새벽 밥을 먹고 출발하면 저녁 무렵께나 되어야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 이곳 창원마을에서 인월장까지는 왕복 60여리(24km)에 이른다.

김 할머니는 “한 날은 인월장에서 돼지를 사다 집에다 데려다 놓았는데 이 돼지가 눈먼 돼지여서 할아버지께 혼이 났다”며 너스레를 떤다.

인심 좋은 창원마을에서 물병에 한가득 물을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금계마을로 향하는 숲길 입구의 너덜지대는 강물이 흘러간 듯 까만 돌들이 돌강을 형성하고 있다. 이 숲길은 아스팔트 도로가 생기기 전에 사용하던 옛길이다.

숲길 입구 언덕에 이르자 따가운 봄햇살 아래 못자리에 비료를 뿌리는 노부부의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남원 매동마을을 출발해 함양 금계마을까지의 다랭이길 탐방은 거의 4시간여 만에 마무리됐다.

지금은 이 길을 걷는 사람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지만 옛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서린 이 고갯길 문화가 되살아나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한 고개 두 고개 잇는 날이 기다려진다.

(사)숲길 윤정준 이사는 “지리산길은 정상 등정을 목적으로 수직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정복의 길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마을길, 논길, 숲길을 천천히 걸으며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아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숲길 측은 전체 구간 300km를 걷는데 232시간(32.5일) 정도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글·사진=이준희기자 jhlee@knnews.co.kr

지리산길 안내센터

사단법인 숲길 측은 남원시 인월면 일원리 198의 1 일대에 ‘지리산길 안내센터’를 설치했다.

이곳에서는 지리산길 이용객들에게 지리산길의 의미와 내용을 전달하는 지역교육 프로그램과 자원활동가 양성, 이용자 체험 프로그램 등을 운영 중이다.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 홈페이지 (www.trail.or.kr)나 지리산길 안내센터 ☏063-635-0850.

▲찾아가는 길

자가용으로 가는 길 = 남해고속도로 →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 함양 IC → 88고속도로로 갈아타 광주 방향으로 10분간 →지리산 IC로 나옴 → 인월면 소재지 숲길 사무실(인월에서 산내 방향으로 가다가 오른쪽 산천가든을 지나 우회전하면 된다)

 

[경남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