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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청학동 찾아 청학동으로 가는 마음

'청학동' 찾아 청학동으로 가는 마음

고려말 이인로가 지리산서 찾던 곳
인간 이상향 담은 무릉도원 인듯
현재 청학동은 1950년대 전후에 생긴곳

최창민 기자 cchang@gnnews.co.kr
2007-07-05 09:30:00
 두류산은 드높이 구름 위에 솟고 만학천암(萬壑千巖)둘러보니/ 회계(會稽)와 방불 하네/ 지팡이 의지하여 청학동을 찾으려 했으나 속절없는 원숭이 울음소리만 숲 속에서 들리네/누대는 표묘한데 삼산은 안보이고 써 있는 넉자가 이끼 끼어 희미하네/묻노니 선원은 어디인가/낙화유수만이 가물가물/

 세속의 삶을 청산하고 산에 들고자 했던 고려 말 학자 이인로는 결국 청학동(靑鶴洞)을 찾지 못하고 이 한편의 시를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그럼에도 싯구에 나타난 지리산 예찬은 아마도 이곳이 청학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미려하고 서정적이다.당신은 마음에 간직한 안식처가 있습니까.
 
 여름이란 계절은 이런 안식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한다. 신록이 감싸 안은 선경(仙境), 그 사이를 부드럽게 관통하는 청류(淸流), 거기 어디쯤 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벗 삼아 노랫말이라도 흥얼 거릴 수 있을 것이다. 청학을 찾는 마음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바야흐로 일상 탈출, 자연회귀의 본능적인 심사가 발동하는 계절이다.

 이 보게 사람들. 이제 청학에 들어보자.

 청학동 가는 길은 더 간편해지고 더욱 가까워졌다. 차로 산청 내대마을 못 미쳐 왼쪽 교량을 건너 5분정도 오르면 삼신봉터널이 나온다. 입구에 ‘하동 속으로’ 라는 글귀가 신비감을 더해 준다. 이 도로는 몇해 전 완공됐다. 전에는 주로 하동 횡천, 청암으로 청학동에 갔는데 요즘은 산청 지방도가 더 빠른 길이 됐다. 낙원으로 가는 길이 굴을 뚫어 조금은 편해 졌다 하니 좋아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학자 이인로가 현세에 발현이라도 한다면 기절초풍 할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청학동엘 가려면 고운(孤雲)의 흔적이 있는 쌍계사, 환학대(喚鶴臺), 불일평전과 폭포를 거쳐 제대로 가야할 것 같다. 얼마 전 영면한 봉명선인이 기거했던 산장에 들러 생각을 여미고 청학이 날았다는 폭포를 지나 산속으로 걸어가는 것이 제격일 듯싶다.
 
 이인로 파한집에 청학동이 묘사돼 있다.‘옛 노인들이 전하는 바로는 그 속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매우 좁아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고 몸을 구부리고 수 십리를 가서야 허광(虛曠)한 경지가 전개된다. 거기엔 양전옥토가 널려 있어 곡식을 심기에 알맞으나 청학만이 살아 이런 이름이 붙여졌고 대개 여기엔 옛날 세상을 피해 온 사람들이 살았기에 무너진 담과 구덩이가 가시덤불에 싸여 남아 있다’고 돼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에서 서쪽으로 140리 거리에 청학동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자료에는 지리산 남쪽 기슭 입구에 폭포가 있고 폭포를 지나 석문, 석문 다음에 평원이 있다고 전해진다. 신선과 청학이 한데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아가는 별 유천지. 여기에 살면 무병장수하고 흉년 난리가 들어오지 않으며 자손이 번창 한다고 한다.

 예부터 사람들은 세속에 찌든 심신을 탄하며 청학동을 찾아 스멀스멀 산으로 들었다. 때로는 비결쟁이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고 또 때로는 세속에서 취하지 못한 꿈을 실현하는 이상향이 되기도 했으리라.

 지리산에는 청학동이라는 곳이 세석평원, 불일폭포 악양 청학골 등 의견이 많지만 어쩌면 이 세상이 아닌 안식의 땅이라는 생각이든다.
 
 여하튼 터널을 지나 묵계삼거리에서 고불고불 5분 정도 더 올라가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청학동이다.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왼쪽 먼 발치 숲에 청학상(象) 한쌍이 보인다. 이정표 역할인듯 한데 아뿔사, 색깔도 아니고 자태도 아니다. 청학에 대한 관념이 ‘확’깨져버리는 부조화다.

 청학동은 1950년대 전후로 유불선합일 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正儒道)의 사실들이 이곳에 정착했는데 현재 20여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상투를 틀고 갓 쓰고 도포 입고 전통예법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최근 돌과 시멘트으로 포장한 마을 길 좌우에 집들이 저마다 앉기 좋은데 자리잡고 있다.
 민가의 몸체는 황톳집이고 지붕은 산죽으로 이었다. 가정집도 있지만 빈집이 몇 채 있다. 엿 파는 아줌마는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 묻지 말라는 표정,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니 “모델료나 톡톡히 주시쇼, 아니면 매실을 사 가시오” 한다. 한복을 입고 있는 모심정 주인은 주말관광객에게 청학동을 자세히 설명한다.

 청학동의 옛흔적은 별로 안보인다. 모심정 뒤안 바위에 이인로의 ‘청학동’ 시를 새겨놓았는데 ‘만학천암’을 ‘만구렁 천바위’라고 풀어 쓴 우리말이 재미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청학동에서 신성시하는 천제당이 있다. 봄 가을 두 차례 제를 올린다. 도조(道祖) 강대성 탄강일에 대제치성을 봉행하고 24절기에도 보국안민을 기원한다. 전북 순창 태생의 강대성(1890-1954)은 갱정유도 교조 격에 해당하는 인물. 천제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나무로 입구를 장식한 원시적인 모습이었으나 현대식건물로 탈바꿈했다.
 
 삼성궁은 청학동 못 미쳐 왼쪽, 산중턱에 있다. 돌로 쌓은 입구에서 징을 3번 치면 안내인이 나온다. 굴을 지나면 온통 바위로 둘러싸인 승경(勝景)이 펼쳐진다. 한민족의 시조 삼성, 즉 한배임·한배웅·한배검을 봉안한 곳이다. 세석고원 영신봉에서 남으로 분기한 능선은 삼신산에 솟구쳤다가 기맥을 타고 덕바위를 거쳐 이곳에 당도한다.

 많은 돌을 이용해 쌓은 돌계단과 돌탑은 마이산이 끼고 있는 돌탑을 연상케 한다. 안개 낀 이날은 산세가 잘 보이지 않았으나 평소엔 풍광이 신비롭다 한다. 낙천선사 문하에 출가한 한풀선사가 일으킨 선원이다.

 계절은 신선놀음을 하기좋은 여름으로 향하고 있다. 청학동은 겉보기엔 매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속을 보는 청학동 나들이는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일이 될 것이다.
 


▲사진설명=하동 청암면 묵계리에 위치한 현재의 청학동 입구(위 사진)와 징을 울린 뒤 들어갈 수 있는 삼성궁 입구.

 

[경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