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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운조루에서/강영조

[아침숲길] 운조루(雲鳥樓)에서 /강영조
아름다운 산하의 풍경은 사람 길러내는 토양과 같아

 
내가 구례 운조루를 찾은 것은 산수유가 지고 난 뒤였다. 남해 푸른 바다를 등 뒤로 하고 저문 섬진강변을 느릿하게 달렸다. 하동 꽃길로 유명한 섬진강변 길을 북쪽으로 달렸다. 벚나무 거무튀튀한 늙은 가지는 하얀 꽃을 훌훌 털어내고 연초록 새 이파리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바람이 슬쩍 불기만 해도 여자아이 원피스 옷깃같이 가벼운 꽃이파리가 생선 비늘처럼 푸른 하늘로 하늘하늘 날아오르는 산화의 풍경보다 물기 머금은 투명한 새 이파리가 융단처럼 뒤덮인 부드러운 신록의 풍경을 더 좋아 한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이란 사람이든 식물이든 숭고하다. 나는 부드럽고 아늑한 숲길을 가급적 천천히 나아갔다. 그런 아름다운 봄날 강릉의 선교장, 창녕의 아석헌과 함께 조선 삼대 명택이라고 하는 운조루를 찾았다.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달려오던 산자락이 섬진강을 만나자 움칠하고 머물러서서 병풍산을 만들고 거기서부터 강변까지 구만리 들판을 펼쳐놓은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가 터를 잡고 있었다. 야트막한 산에 기대고 서 있는 고택과 너른 들판 저 너머로 백운산과 계족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오봉산 그리고 그 기슭을 따라 섬진강이 흘러나가는 꿈결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고택의 기와지붕과 키 큰 은행나무 이파리에 바스러지던 오후 햇살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의 지명인 토지(土旨)는 토지(吐指)의 의미라고도 한다. 이른바 금가락지를 토해놓았다고 하는 뜻이다. 풍요로운 생산과 부귀, 영화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오른다고 하는 금환낙지(金環落地)의 명당이라는 땅이다. 거기에다 운조루가 터를 잡은 곳은 금거북이 진흙 속에 파묻혀 있는 금구몰니의 명당이다. 이런 풍수설화를 뒷받침하듯 집터를 잡을 때 돌 거북이 땅속에서 나왔는데, 그곳에 물기 많은 부엌을 둔 것도 그 거북이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풍수의 본질은 생기와 감응이다. 생기란 땅속에 흐르는 기운이다. 그 기운은 땅의 기복으로 알 수 있다. 감응은 그 기운을 받을 때 나타나는 인간생활의 길흉화복이다. 풍수란 땅의 형상과 그 땅 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유비적인 관계로 설정해두고 있다. 그 사람이 사는 장소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산하의 풍경을 보면 그곳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풍수의 본질은 산하의 풍경이 인간의 삶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사술(詐術)의 대명사인 풍수만의 전유물은 아닌 듯하다. 조선조의 유명한 실학자인 정약용은 '택리지'의 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라 안 장원 중에서 아름답기로는 영남이 제일이다. 까닭에 사대부로서 수백 년 동안 때를 만나지 못했어도 그 존귀함과 부유함이 줄지 않았다. 그 집들이 각자 한 분, 훌륭한 조상을 모시고 한 정원을 점유하여 일가끼리 살면서 흩어지지 않았으므로 집을 공고하게 유지하면서 뿌리가 뽑히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 씨는 퇴계를 모시고 도산을 점유하였고, 유 씨는 서애를 모시고 하회를 점유하였다.' 정약용의 이 글로 미루어 보건대 아름다운 산하에서 귀하고 부유한 사대부가 태어난다는 생각은 조선조 선비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전근대적인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폄하할 것만은 아닌 듯하다.

독일이 세계에 자랑하는 아름다운 도로 아우토반의 계획을 입안한 토트 박사도 정약용과 마찬가지로 풍경과 그 속에 사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풍경과 토지란 인간 생활과 국민 문화의 기초적인 표현이다. 사람을 양육하고 만들어내는 고향이다." 또 일본의 경관공학자 나카무라 요시오도 풍경은 그 나라 국민의 작품이라고 했다. 다들 산하가 이루어내는 풍경이 바로 사람을 길러내는 토양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인데 이는 동서양에 공통된 생각인 모양이다.

나는 운조루의 후손들이, 정약용의 표현대로 존귀하고 부유한 것은 그들이 터를 잡은 곳의 풍수적 감응에 의한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미리라고 하는 풍경을 골라낸 당주의 안목과 그곳을 잘 지키고 가꾼 후손들의 지성과 저력이 조선 삼대 저택으로 이름을 떨친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운조루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국토 산하의 풍경은 그 나라 국민의 저력과 지성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