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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설흘산에서 본 절정의 봄빛. 바다 색과 어울려 산과 들도 파스텔톤으로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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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산인데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면 어떤 특별함이 있어서일 게다. 남해에 있는 설흘산은 몇몇 힘차게 솟구친 암봉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멋있다고는 생각 들지 않는다. 가다랭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 뒷산이기에 약간의 호기심은 있었다. 산행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 속 깊이 각인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가고 싶은 산이 되어 갔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산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새잎이 막 나서 연둣빛으로 소곤거릴 때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산빛 앞에서 발자국 소리까지 끊어버리고 몰입해 간다. 산은 처녀의 풋풋한 모습이라기보다는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애의 모습이다. 어쩌면 저렇게 부드럽고 맑은 빛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것일까?
섬에 있는 산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봄빛과 바다 빛 그리고 푸릇푸릇 돋는 나뭇잎이 함께 다가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다와 함께 가는 아기자기한 능선에서 바라다보는 파란 하늘과 그것을 닮은 바다 빛, 하얀 물거품을 남기고 가는 배, 해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빨갛거나 파란 지붕들, 그와 어우러진 붉은 흙, 연초록 이파리가 소곤거리는 산빛이 어울려 빚어내는 풍광은 절정의 봄이 가져다주는 파스텔 톤이었다. 그 색은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색에 푹 빠지게 하였다.
여기일까 저기일까 낯바닥 기웃거리며
그대 빠진 색을 탐해 보지만
흉내는 철쭉 근처에도 닿지 못하고
눈 밖에서 눈꺼풀을 닫는다 그대
아낌없는 붉은 기운에 눈을 다치리라
1970~80년대 등산복은 주로 원색이었다. 조난 시를 대비해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배낭이나 바람막이 옷을 빨간색으로 선호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검정색이 주를 이뤘다. 검정색은 산에서뿐만 아니라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즐겨 입는 색상이 되어 도심 거리도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밝은 색으로 넘쳐나는 거리는 평화롭게 보이고 안정감이 넘쳐난다. 그러나 검은 물결이 넘치는 거리는 어쩐지 무겁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심하게 말해 모두들 상가에 가는 길인지 얼굴 표정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내 폭력이 횡행하던 1980년대 미국에서는 회색이었던 교도소벽 색깔을 핑크색으로 바꾸자 놀랍게도 폭력사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다. 핑크색은 자궁 내부의 색이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연의 색상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데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들은 왜 우중충한 색깔로 몸을 감싸고 있는지 모르겠다. 겨울은 그렇다치고 봄이나 여름에도 검은 색조가 주를 이루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자신감이 없어서 무난한 검정색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요즘 들어서는 등산복도 연두색이나 노란색, 파란색과 같은 밝은 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 바라보는 눈을 상쾌하게 만든다.
집을 떠나 새로운 풍경에 맞닥뜨리게 되면 그 어떤 풍경도 아름답게 보일 것이지만 유별나게 빛나는 색을 만날 수 있어 봄산은 황홀한 기분을 제공해 준다. 자연에 들면 행복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서 만나는 변화무쌍한 색에서 조화를 발견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봄이 어른거리는 섬 기슭에서 커가는 보리밭, 마늘 싹들의 푸릇푸릇함과 함께 유채꽃 노란색깔이 어우러져 환상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이룬다.
'때깔 고운 음식이 맛도 있다'는 말처럼 빛 고운 색깔은 우중충한 회색 도시에서 탈출한 소시민에게 맛 나는 때깔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빛이었고 빛이 만든 색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행복에 푹 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