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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백운산에서 길을 묻다/술산 강영환

by 지리산 마실 2008. 4. 8.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 <8> 백운산에서 길을 묻다
지름길이 유혹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 아름답다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광양 백운산. 정상에서 억불봉 가는 능선에는 비에 젖은 길이 뚜렷하지만 아직 봄빛은 여물지 못했다. 멀리 솟아 있는 봉우리가 해발 1000m 억불봉.
산 이름이 친근한 백운산에 갔다. 그것은 각 지역마다 있기 때문이다. 절영도 봉래산처럼 저기압이 형성되거나 비가 오기 전에 혹은 비가 온 뒤 산머리에 구름이 걸리는 풍경이 곧 백운산이다. 그 지역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고 붙인 이름이기에 늘 가본 것 같은 그런 산이다. 함양 울주 밀양 양산 광양 근교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리산이 마주 뵈는 광양 백운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 헤맸다. 잘못 든 길은 최종 목적지를 훨씬 벗어나 도착한 뒤 많은 애를 먹었다. 가스도 없었는데 초행길이라서 그랬을까.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숲으로 들었고 그 끝에는 어떤 풍경이 놓여 있을지 두려웠다.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아니었다. 낯선 길에 대한 동경에 앞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막연히 갖는 두려움이었다. 양 갈래 혹은 여러 갈래 길 앞에서 선택은 언제나 하나이기에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잘못된 선택은 자신이 책임져야하기에 결정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산의 길은 외롭다. 혼자 가지 않더라도 짐을 진 채 자신의 힘으로 걸어야 한다. 도심 길을 갈 때도 물론이지만 위험이 많은 산에서는 혼자 져야할 책임이 무겁다. 불의의 사고라도 맞닥뜨리게 된다면 함께 간 일행에게도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이 짊어진 짐도 그렇거니와 지친 몸을 간수해야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산길은 쓸쓸하지 않다.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가 있고 주변에 핀 꽃과 노래하는 새들, 상쾌한 공기, 탁 트인 시야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산에 들지 않는가.

길을 묻는 사람은 언제나 많다. 그 길은 산에 있기도 하고 삶에 있기도 하다. 스승에게 길을 묻고, 길에 길을 묻고, 책에 길을 묻고, 하늘에 길을 묻는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길은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물어도 뒤에 남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길은 어쩌면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에 관한 글이 유난히도 많다. 길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나는 늘 길 위에 놓여 있었고 길 끝에 앉아 있었다.

좁은 길이 멀리 간다

바꿀 수 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숲 사이로 구불구불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물웅덩이를 만나면 피해서 간다


길 앞에서 가끔 난감해질 때가 있다. 길이 아닌 길이 나타나 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방향이 다른 길은 선택하면 된다지만 같은 방향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는 이른바 질러가는 길을 만나면 난감해 진다. 오를 때는 지름길을 만들지 않지만 내려올 때는 쉽게 만든다. 산이 좋아 가는 사람들이 산이 망가지는 일에 상관없다는 듯이 난감한 길을 만들었을까? 오래된 길은 다져질 대로 다져지고 주변도 잘 다듬어져 훼손되지 않지만 새로 만들어진 길은 푸석푸석하여 쉽게 무너지고 작은 비에도 토사가 쓸려 나가 패이기 쉽다.

어느 산악회에서는 지름길을 다니지 않거나 지름길을 만들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질러가나 돌아가나 같은 높이에 이르기 위해 소비되는 에너지는 같다. 무리하게 질러 가다가 미끄러져 다치는 경우도 있다.

거리가 조금 멀더라도 여유를 갖는 산행이 산을 보존한다. 오래된 길은 편안하고 행복하다.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곁가지, 지름길이 유혹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처럼.

과정은 달라도 어떤 길이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같다. 선택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길이 어떤 길인지 그리고 행복은 어느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인지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길을 잃고 난 뒤에야 생은 길 위에 놓여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가는 길은 언제나 끝나지 않는다. 다시 백운산에서 길을 묻는다.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