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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역사]

구례 피아골 연곡사①

▣구례 연곡사 지표조사 보고①

1- 서문

연곡사는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산54-1번지의 지리산 피아골에 위치하고 있다. 이 사찰은 정유재란과 구한말의 두 차례 방화로 전각이 소실되어 폐사에 직면하였으나 다행히 경내에 조각이 섬세한 동부도를 비롯하여 삼층석탑.북부도.소요대사부도.동부도비.현각선사 비가 남아있어 인근 화엄사.천은사.쌍계사 등과 더불어 지리산 남쪽의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조사는 사찰측에서 종각을 신축하기 위해 굴착 공사를 하다가 그 동안 묻혀 있던 축대가 드러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루어졌으며 종각을 건립할 수 있는 자리의 선정은 물론 연곡사의 역사적 성격을 구명하고 정비.복원 방향을 세우는데 기초적인 자료로 삼기 위해 다각도에 걸쳐 조사.연구되었다.
구례 연곡사의 지표 조사를 종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6개 분야로 나누어 조사에 착수하였다. 지표 조사 분야와 이를 담당한 연구진은 다음과 같다.

연곡사의 위치 및 환경 이영문(전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사)
연곡사의 연혁 이계표(광주직학시 문화재 전문위원)
연곡사의 시굴 조사 임영진(전남대학교 인류학과 조교수)
연곡사의 불교 유적?유물 황호균(전남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
연곡사 주변의 불교 유적 최인선(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강사)
연곡사의 정비?복원을 위한 제언 성춘경(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연곡사의 지표 조사는 위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1992년 12월 11일부터 예비조사에 착수되었다. 1993년 1월부터 3월까지 현장에서 지표 조사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93년 4월 30일까지 원고를 완성하여 1993년 5월 25일 출판하게 되었다. 연곡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경내의 석조물을 중심으로 부분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바 있지만 이번 지표조사에서는 무엇보다도 축대와 평탄면에 대한 시굴 떻潁?통해 적어도 3곳에 건물이 존재했다는 사실과 삼층 석탑의 북동쪽에 위치한 3단의 축대를 통해 연곡사의 중수 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점은 이번 조사에서 거둔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축대 조사를 통해 세차례에 걸친 축대의 축조와 두차례의 화재 사실을 밝혀낸 것은 『난중잡록』과 『대한독립운동사』등 문헌 기록의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과였다. 즉 정유재란(1598년)과 고광순이 의병을 일으킨 1907년 일본군들에 의한 방화로 2차례 사찰이 전소되는 참화를 당했던 역사적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경내 지상에 드러난 모든 유적과 유물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 유적.유물의 조사에서는 석탑 1기?금동불 한 분?부도 7기.비 3기?석등 부재.초석 11점.맷돌 5점.돌확 1기.석등 2기.괘불 석주 1쌍.건물 4동 등 총 37개의 자료가 조사되었는데 종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시대의 석등 부재를 새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들 자료에 대한 현상과 양식적 특징을 살펴 그 제작 연대를 구명하여 보았다.

문헌 자료를 통해서 조사하는 연혁 분야에서는 그 초창시기를 8세기 중엽의 화엄승려인 연기법사까지 올려 보고 중창시기는 현각선사 주석 당시인 10세기 중엽으로, 삼창시기는 소요대사가 활동했던 17세기 초반으로 비정하였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구한말 의병장인 고광순이 연곡사를 포함한 지리산 일대를 항일 의병의 독립 기지로 건설하고자 김동수 등과 함께 노력한 점인데 이는 연곡사가 불교 유적으로써 뿐만 아니라 항일 정신이 담긴 항일 독립 운동사의 중요한 의의를 지닌 곳막琯?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곡사 주변 골짜기에 산재한 절과 절터에 대한 조사에서는 2개의 절과 10개의 절터를 확인하였고 문헌을 조사하여 구례군에 분포한 76개의 절과 절터를 표로 정리하였다.

연곡사의 정비.복원을 위한 제언에서는 앞으로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가람의 배치 상태나 그 후 변천 과정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진 후에 이러한 자료를 통해서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지만 우선 시급한 종각 건립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끝으로 조사 기간 동안 여러모로 애써주신 구례군청 관계자와 연곡사 주지스님 및 평도.남산 마을 주민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혹한에 실시한 관계로 현장 작업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표조사에 참여해 주신 여러 조사원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한다.


1993년 5월 25일

전남대학교 박물관장 최 협

[구례군 자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