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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옛글과의 만남

백운거사(白雲居士)의 語錄

사모하여 배우면 비록 그 실상을 얻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거기에
가깝게는 될 것이다.

[慕而學之 則雖不得其實 亦庶幾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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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李? 이규보(李圭報))가 이름을 숨기고자 하여 그 이름을 대신할 만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옛날 사람은 호로 이름을 대신한 이가 많았다. 거소로 호를 한 이도 있고, 소유물로 호를
한 이도 있고, 소득의 실상으로 호를 한 이도 있었다.

이를테면, 왕적(王績)의 동고자(東皐子), 두자미(杜子美)의 초당선생(草堂先生), 하지장
(賀知章)의 사명광객(四明狂客), 백낙천(白樂天)의 향산거사(香山居士)는 거소로 호를
한 것이며, 도잠(陶潛)의 오류선생(五柳先生), 정훈(鄭熏)의 칠송처사(七松處士), 구양자
(歐陽子)의 육일거사(六一居士)는 소유물로, 장지화(張志和)의 현진자(玄眞子), 원결(元
結)의 만랑수(漫浪?)는 소득의 실상으로 호를 한 것이다.

이수는 이와는 다르니, 사방으로 떠돌아다녀서 거소가 일정하지 않고, 한 물건도 소유한
것이 없으며, 소득의 실상도 없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옛날 사람에 미치지 못하니, 그 자호
(自號)를 무엇이라 해야 좋겠는가?

어떤 이는 초당선생이라 지목하나, 나는 두자미 때문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더구나 나의
초당은 잠깐 우거한 곳이요 상주한 데가 아니다. 우거한 곳을 가지고 호를 한다면 그 호가
또한 많지 않겠는가?

평생에 오직 거문고ㆍ술ㆍ시 이 세 가지를 매우 좋아하였으므로 자호를 삼혹호선생(三酷好
先生)이라 하였다. 그러나 거문고를 잘 타지도 못하고 시를 잘 짓지도 못하고 술을 많이 마
시지도 못하면서 이 호를 가진다면 세상에서 듣는 사람들이 크게 웃지 않겠는가? 그래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고쳤더니 어떤 이가,

“자네는 장차 청산에 들어가 백운에 누우려는가? 어찌 자호를 이처럼 하였는가?”
하기에 나는,

“그런 것이 아닐세. 백운은 내가 사모하는 것일세. 사모하여 이것을 배우면 비록 그 실상
을 얻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거기에 가깝게는 될 것이네. 대저 구름이란 물체는 한가
히 떠서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나부껴 동서로 떠다녀 그 형적이 구
애 받은 바 없네.

경각에 변화하면 그 끝나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네. 유연(油然)히 펴지는 것은 곧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기상이요, 염연(斂然)히 걷히는 것은 곧 고인(高人)이 세상을 은둔하는 기
상이며, 비를 만들어 가뭄을 구제하는 것은 인(仁)이요, 오면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은 통(通)이네. 그리고 빛깔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검은 것은
구름의 정색이 아니요, 오직 화채(華彩) 없이 흰 것만이 구름의 정상인 것이네.

덕과 빛깔이 저와 같으니, 만일 저를 사모해 배워서 세상에 나가면 만물에 은덕을 입히고
집에 들어앉으면 허심탄회하여 그 흰 것을 지키고 그 정상에 처하여 무성(無聲)ㆍ무색(無
色)하여 무한한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네.
이렇게 되면 고인의 소득의 실상에 가깝지 않겠는가?”
하였다. 어떤 이가,

“거사라고 칭함은 어떤 경우여야 하는가?”
하고 묻기에,

“산에 거하거나 집에 거하거나 오직 도(道)를 즐기는 자라야 거사라 칭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집에 거하며 도를 즐기는 사람이다.”
하였더니 어떤 이는,

“이와 같음을 알고 보니 자네의 말은 통달한 것일세. 기록해 두어야겠네.”
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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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20권 어록/민족문화추진회에서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