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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낙동정맥 구간종주 제 12구간 답사보고

마루금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구간종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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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간명 : 제 12구간(주산재 - 질고개)(도상거리 약 12.8Km)

(코스) : 우설령-(1.2km)-주산재-(1.4km)-745.4봉-(1.4km)-701.5봉-
(1.8km)-피나무재-(1.8km)-600봉-(1.7km)-622.7봉-(2.3km)-
575.1봉-(1.2km)-질고개(932번 도로)

2. 일 시 : 2001. 11.24(토)- 11.25(일)
3.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부남면, 영덕군 달산면
4. 날 씨 : 대체로 맑음
5. 참가자 : 제환상,이귀선,조용섭,장병천,이용면,이영숙,김현을,
박신희 이상 8명
6. 산행형태: 야영/워킹 종주산행
7. 도엽명 : 1/50000 : 청송(NJ52-14-20)
8. 교통편 : 대절승합차.
9. 운행시간표(후미기준)

- 11.24(토) 18:40 부산 출발
21:45 화진휴게소
22:55 야영장

- 11.25(일) 01:00 취침
05:00 기상/조식
06:50 야영장 출발/우설령으로 차량이동
07:07 우설령 출발/산행시작
07:45 주산재 능선/낙동정맥길 합류
08:02 별바위(745.2봉)/삼각점/휴식
08:15 출발
08:45 헬기장
08:55 701.5봉
09:02 휴식
09:14 출발
09:29 국립공원 경계표지석 통과
09:47 피나무재/도로/휴식
10:01 출발
10:37 무포산 갈림길
11:14 622.7봉/휴식/삼각점
11:30 출발
12:02 575.1봉/좌측으로 우회
12:26 질고개/도로/중식/산행종료


10. 후 기

가. 마지막 만남...

화진...
오늘밤 우리가 그대를 맞이함이 어떠한가요?

괜시리 그대의 옆구리 그 모래밭을 거닐기도 하고
그 모래밭 뒤, 먼 바다에 이르는 어둔 수평의 금까지
눈길을 그윽히 두고는,
때로는 설레임으로 때론 무력감으로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며,
자신을 고양시키거나 우울하게 하던
추억 저 편의 풍경들을 들추어내려 합니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것 처럼요....

이제 한동안 당신을 잊고 살아야 한다니
내 속내를 그대에게 드러내지 않을 수 없군요.

더 이상 가벼울 수 없는 은빛 편린으로 빛나거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먹청의 무거움이었거나
차가운 달빛, 혹은 쓸쓸한 별빛을 머금었거나
갇혀있는 호수처럼 처연하였거나
우윳빛 물알갱이들의 장막을 드리웠거나
살갗을 파고드는 금속성의 차가움이었거나
참을 수 없는 분노로 自害하듯 제 몸을 부수었거나
집어등, 그 먼바다에서의 치열함이었거나

그대의 품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모습은
늘 내게 위안이었고 평화로움이었다구요.

오늘 이리도 유난스럽게 당신을 대하는 건
아마도 내가 그대를 좋아했음을 알아달라는
서툰 감정의 표현이겠지요.

이제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걷게되면
비록 눈꺼풀이 쳐지고 걸음은 늦어졌으되
생의 반환점을 돌며 그대를 만날 때 즈음
내가 더욱 강하고 성숙해졌듯이
그때에도,
밝은 눈으로 그대를 바라보고
서둘러 걸음걷지 않는 이 되어
당신과 함께하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화진이여....
그래서 다만 작별의 키스는 아직 미루렵니다.

(화진휴게소에서의 마지막밤을 보내며...)

나. 바람과 낙엽이 함께한 길...

부산 연산동에서 1차 집결한 후, 19:30 양산에서 2차 합류.
경주에서 저녁을 먹고 7번 국도로 이동.

21:45 화진휴게소 도착.
오늘 우리는 낙동정맥답사를 시작한 후 차량이동 접근시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들르던 동해안의 화진휴게소를 마지막으로 통과하게 된다.
남쪽으로 많이 남하한 낙동정맥길로의 접근은 이제 포항에서 곧장 올라
가거나, 그 후로도 西南進하게되는 마루금길을 따라 경주, 영천쪽에서
바로 접근하게 된다.

환상(대장)은 어느새 백사장으로 내려가 거닐고 있고, 나는 화진휴게소
와의 작별을 핑계로 맑은 음료를 챙기고 있다. 비가 올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었으나 반달이 중천에 떠있는 하늘은 의외로 맑다.
간단히 이별주를 한잔씩 돌리고는 화진과 작별을 고하고 출발한다.
차량진행은 영덕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34번 국도를 타고 이동하다가,
영덕군 지품면 신양리의 신양3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영덕군 달산면으로
향한다. 곧 이어 나오는 갈림길의 좌측 69번 도로는 옥계계곡을 통과하여
포항시 기북면으로 연결되고, 우측(직진)의 길은 청송군 부동면으로 연결
되는 928번 지방도인데 우리는 이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야 한다.

22:55 늦은 밤, 산골마을의 숨막히는듯한 적막을 깨며 봉산리의 마을로
들어와서 도로 우측의 너른 공간에 차를 주차한다. 봉산리의 폐교 운동장
인데 마당에는 건자재등이 널브러져 있고, 廢 校舍안에는 곡식등을 말리
느라 늘어놓았다. 굵고 튼실한 백양목의 둥치를 보아 학교의 역사는 오래
된듯하나 폐교한지도 오래되어 확인할 표시물들이 거의 없다.
다만 운동장 구석 한켠에 버려지듯 우두커니 서있는 키낮은 철봉만이 그
역사를 말없이 알리고 있다. 이 운동장의 백양목 주위에서 야영하기로
한다. 물을 길러간 병천이 어찌했는지 이 늦은 시각에 마을의 가게에서
막걸리를 가져온다. 酒種, 淸濁不問의 기치아래 쉬엄없이 비어지던 하얀
페트병들이 백양목 아래에 쭉 서서 도열이 끝날 무렵, 하나 둘 텐트안으
로 들어가고 나는 밖에 펼쳐논 침낭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 때 양산과 경주에서 각각 이미 상당량의 前酒가 있던 두사람의
상태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도로 상승되어 있었다.

자정이 지난 시간, 반달은 이미 산자락을 넘어가버렸고 맑은 대기에
별빛이 곱다. 포근한 날씨이나 바람은 점점 세게 불기 시작하고 넉넉
하게 보이던 백양목의 가지가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한다.

느닷없이 울어제끼는 닭울음소리에 잠을 깬 후, 한동안 몸을 뒤척이는데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분다.

05:00 기상. 여전히 세찬 바람이 불긴해도 날씨는 그리 춥지 않다.
귀선누님이 준비해온 떡국으로 아침을 해결한 후, 차량으로 지난 구간
탈출한 雨雪嶺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06:50

주왕산국립공원 구역 남단에 위치한 우설령은 경북 청송과 영덕의 내륙
오지들을 연결하는 928번 도로의 고갯마루에 있는 고개인데 낙동정맥의
주산재앞 갈림길에서 가지쳐져 남쪽으로 진행하다, 동으로 방향을 틀며
이어지는 마루금상에 있다. 이 능선은 아름다운 옥계계곡을 품은 산자락
들을 일으키고, 바위봉우리가 8개의 각을 이룬다는 팔각산이 이 산자락
에 비켜서 있다.

그리고 정맥길은 우설령에서 영덕군과 작별을 하게된다. 영덕은 '바다와
대게'로 잘 알려져 있으나, 의외로 낙동정맥의 산자락과 아름다운 계곡
을 많이 품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마루금길은 낙동정맥의 마루금과
내연산군의 마루금 사이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포항시(죽장면)를 맞이하
게 된다. 하지만 이번 구간은 포항과의 만남을 잠시 미루고 숨을 고른
채, 청송군의 부동면을 진행하다가 무포산(霧抱山 716.7m) 옆 600고지
갈림길부터 청송군 부남면과 경계하며 질고개까지 이어진다.

07:07 우설령을 출발하여 산행시작.
낙동정맥 마루금에서 우설령으로 흐른 산자락을 따라 북쪽의 주산재로
접근한다. 차량진행방향의 우측 절개지 철망 왼쪽에 길이 나있고 시그
날도 달려있다. 지형도상 주산재는 별바위(745.2봉)아래의 평평한 고개
3거리에서 동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을 표시하고 있는데, 흔히들
합류되는 그 낙동정맥길의 3거리를 주산재로 표시하고 있다. 지형도를
따르자면 지난 구간 우리가 탈출할 때 방향을 튼 곳이, 길이 나있는
모습이나 거리로 보아 주산재일 가능성이 많다.

가파른 산자락의 좌측사면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을 따라올라 마루턱에
닿자, 동해에서 떠 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을 맞이하게 된다.
바다 일출에서 보던 크고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가 머금었던
안온함과 평화와 사랑의 귀한 보석을 세상밖으로 토해내듯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다보니 사진생각이 나고, 그러다보니 몸상태가 좋
지 않아 산행에 합류하지 못한 산유화가 생각난다. 늦더라도 피나무재로
이동해서 합류를 하라고는 하였는데...

다시 눈을 돌려서 본 숲길은 메마르고 황량한 겨울산이다.
그를 확인이라도 하듯 바람이 세차게 분다. 겨울바람이...

07:23 탈출지점 도착.
지난 구간 낙동마루금에서 우설령으로 진행하다가, 도로쪽에 가깝게
연결되는 산자락으로 내려서기 위해 왼쪽으로 방향을 틀던 지점을 통과
하는 사이, 어느새 해는 이글거리는 노랑의 빛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662고지의 봉우리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고른 다음, 5분여 진행하여
낙동마루금길에 도착한다. 가파르게 난 우측 급사면길이 그 때의 힘들
었던 순간을 생각나게 한다.

우측 전방에 우뚝 솟아있는 745.2봉의 모습이 위압적이다.

08:02 거리는 짧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올라 745.2봉에 도착한
다. 지형도상에는 별바위로 표시되어 있다. 하늘로 솟구쳐 붕 떠있는 듯
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고도감이 느껴진다. 돌탑이 세워져 있는 좁은 정상
에 서서 주위를 조망해 본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는 주위로는 정북으
로 왕거암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길게 하늘금을 그으며 달려오는 낙동
마루금, 서쪽으로는 주산지의 모습이 아련히 보인다. 정상에는 조그마한
파일이 박혀있고 측량시 사용한 듯한 깃대가 넘어져있다.
이곳 삼각점표지석의 방위각을 대장이 확인해보는데 무려 45도나 차이가
난다.

08:15 출발.
뒤돌아서서 급사면의 비탈길을 내려선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바위
능선을 트래버스하는 셈인데 거의 하산하는 느낌으로 한참을 내려선다.
이럴 때에는 참으로 철쭉이 고맙다. 찰진 철쭉나무는 손으로 잡던지 발을
디디던지, 몸을 확보하기에 가장 수월하고 안전하다.
이 곳은 잔돌과 낙엽 그리고 흙까지 흘러내리는, 말하자면 움직이는
산자락인데,한겨울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운행하여야
할 곳이다.

좌측 바위능선 사이로 하늘이 열리는 구멍이 있다.
천연적으로 생긴 이 구멍은 벌써 무슨 이름이 붙여져 있을 법도 할 만큼
예사로운 모습이 아니다. 745.2봉에서 약 10여분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올라 바위지대를 지난 능선과 합류한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우회한 이 바위지대를 통틀어 별바위로 부르는게 맞지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안부를 지나며 길은 완만하고 평탄한 길로 잘 나있다.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몹씨 분다. 둥근 봉우리를 우회하여 시원하게 트인 숲길을
지나 폐쇄된 헬기장을 통과한다. 745.2봉과 이어지는 바위능선, 그 옆의
급사면 길과 지금 이어지는 길을 보면 '야누스'적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길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무덤이 이 높은 곳에 너른 터를 잡고 들어 앉아 있고,
굴참나무숲이 능선상이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넓게 자리하고 있다.
아직까지 억새가 건강한 모습으로 꽃과 대를 세우고 있다.

08:55 701.5봉을 통과하고 다시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를 우측으로 돌아
지나면 특이한 모습의 나무들을 만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회색의 단단
한 나무에 참나무가 뱀처럼 몸을 감고 올라가는데, 오랜 세월은 아예
참나무를 그 나무에 박아넣어 버렸다. 무슨 인연이길레 그 두나무는
평생을 그리 서로 꽁꽁 묶어 끌어안고 살아야만 하는걸까?

무심코 길을 걷는 사이 갑자기 바람소리와 낙엽밟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09:02 시야가 트이는 능선턱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진행 방향의 저 아래로 피나무재를 통과하는 도로가 보인다.
바람이 다소 불긴하나 날씨는 좋은 편이다. 용면이 집에서 재배한
키위를 내어 놓는데 시긴 하지만 맛이 좋다.

09:14 휴식후 출발하여 내리막길을 진행하는데 마른 땅에 잔돌이 비교적
많다. 넓지는 않으나 건강한 소나무숲이 나타나 눈을 시원하게 한다.
갈색과 회색의 겨울숲에서 만나는 초록의 소나무숲은 머리를 쏴아하고
씻어주는 듯 청량감을 더한다.

아침부터 목놓아 우는듯 아무런 거리낌없이 불어제끼는 바람...
그 바람은 분명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듯하다.
내게 전하려는 말이 무얼까?

경사가 심한 내리막을 진행하다 완만한 오름길로 이어지는 낮은 능선의
턱, 양지바른 곳에서 어이없게도 철모르고 피어나있는 진달래를 만난다.

09:29 주왕산국립공원 경계표시석을 지난다. 아쉽게도 주왕산의 자락을
제대로 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언젠가 큰골, 절골로의
답사를 제대로 해보며 우리가 걸었던 마루금길을 회상하여 볼 작정이다.

걷기에 아주 수월한 평평한 마루금길을 걷다가 완만한 봉우리를 지나
피나무재로 떨어진다. 피나무재에는 오늘 산행의 출발지인 우설령에서
이어지는 928번 도로가 지나간다. 어린 시절부터 무협지에 폭 빠졌던
책방아저씨는 아까부터 血木嶺의 武林 大會戰 운운하며 우스개 소리다.
09:47

도로건너 절개지 철망사이를 통과하여 이동통신중계탑 옆 양지바른 곳
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정면의 동쪽에 보이는 봉우리가 무장산(霧藏山
640.8m)이다. 조금있으면 옆으로 지나가게될 무포산도 그러하고 이
지역의 산 이름들은 모두 안개를 품거나 머금었다. 산자락 주위는
간벌을 하여 버려진 나무가지들에 의해 숲이 어지럽다.
10:01 출발

산길은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오른쪽 급비탈 사면의 좁은 길로 이어진
다. 산자락 아래로는 낙엽송숲이 들어서 있고 간벌을 하여서인지 숲이
훤하다. 그리고 낙엽송의 작은 이파리들이 마치 눈처럼 흩날린다.
오른쪽 산자락 아래의 피나무재를 지나가는 도로가 거의 원을 그리듯
휘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10:15 능선길과 합류하여 잠시 진행하면 무덤 1기가 나오고 길은 잘
나있으나 마른 땅으로 된 길이 많다. 우측 산자락 아래로 비포장이긴
하나 차가 다닌 흔적이 많은 도로가 산자락을 따라 정맥길과 나란히
진행하더니 결국은 마루금길을 관통한다.

10:20 도로도착. 도로의 일부는 시멘트 포장이 끝나있고, 일부는 포장
을 준비중인 것 같다. 전체 포장을 할 계획인 모양이다. 길을 넓히려
산자락을 갉아낸 절개지가 너르고 아직도 흙이 흐른다.
600고지의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면 넓은 마루금길이 이어진다.
진행길 좌측 산자락 아래로 저수지와 마을 논밭들이 보인다.
능선을 우측에 두고 좌측사면을 진행하면 우측 600봉 건너 봉긋한
봉우리의 무포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10:37

무포산자락 아래로는 고스락으로 올라가는 산간임도가 어지러이 나있는
모습이 보인다. 평탄하고 편안한 산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정맥길은
갑자기 정면의 능선길을 버리고 왼쪽 내리막길로 방향을 튼다. 10:29
정면의 능선과 낙동마루금길 사이에 살짝 들어와서는 산자락 아래의
화장저수지로 들어가는 계곡과 물길이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정면
의 능선이 주능선처럼 보이니 진행에 주의를 기울여야할 곳이다.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과 오르막을 지나 600고지의 봉우리를 통과한다.
거의 평지길처럼 평탄한 600고지의 마루금길이 한동안 이어지고 모처
럼 현을아우가 선두가 되어 속력을 낸다.

바람이 분다.
황갈색의 큰 떡갈나무 이파리가 갑자기 일어선다.
그리고는 무리를 지은 낙엽들이 어디론가
소리를 내지르며 길을 떠난다.

한 곳에서만 붙박고 살아야만 하는 나무의 운명이
오히려 낙엽이 되어서 저리 바삐 움직이고 있다.
낙엽은 바람의 주술에 걸려 되살아 났는가?

이곳에서도 진초록의 건강한 소나무숲이 나타나 겨울산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저 멀리 좌측 산자락에 너르게 서있는 낙엽송 군락지에는 노란
불꽃이 일렁인다. 아직도 낙엽송의 노란빛은 강렬하다. 길고 평탄한
마루금길은 불이 났던지 억새가 많이 자리하고 있고, 조림한듯한 어린
자작나무가 많다. 자작나무의 이파리는 옅은 연두색의 상큼한 색깔을
띠고 있다.

11:14 622.7봉 도착하여 휴식.
평평한 봉우리인 622.7봉에는 건설부에서 설치해 놓은 삼각점표시가
있고 아주 정확하게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11:30 출발

훤히 트인 능선을 잠시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고 정맥길은 진행방향의
좌측으로 길이 열린다. 곧 이어서 너른 터의 큰 무덤이 나오는데 풀이
라고는 하나도 없는 맨 흙으로 된 봉분이다.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길은
떡갈나무 낙엽에 미끄럽다. 490-520 고도의 낮은 마루금길은 편편하게
잘 이어진다. 좌측 멀리로 마을에서 출발하여 산쪽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인다. 질고개로 연결되는 도로인듯하다.

575봉을 앞두고 완만한 오르막길로 오르는 마루금 왼쪽의 산자락으로는
낙엽송숲이 너르게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참나무가 많다.
능선턱을 오를 즈음에는 낙엽송이 능선까지 올라와 있다. 고도가 575m
밖에 되지않는 봉우리지만 꽤 높은 모습으로 서있어 마음을 다잡고 진행
하는데 정맥길은 그리로 가지 않고, 슬쩍 왼쪽의 사면으로 길을 낸다.
낙엽송 솔가리가 폭신하게 깔리고 철쭉이 많은, 예쁘고 좁은 길을 지나니
훤히 트이는 공간에서 575봉에서 내려오는 능선길과 만난다. 12:07

날씨가 포근하다.
정맥길을 걸어오는 사이 겨울은 어디로 갔는가?

질고개 앞의 낮은 봉우리를 통과하는데 키낮은 소나무숲이 밝지 못하고
어두운 모습이다. 고도가 낮은 마루금길의 소나무숲 사이로난 길을 걷는
다. 땅바닥에는 솔가리가 엄청 많이 깔려있다.

12:21 소나무숲을 진행하다보면 T자형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잠시 진행하다가 다시 우측으로 돌아 숲길로 진행하면 되는데 바로
질고개 뒤의 산자락이다. 양지바른 곳의 무덤5기가 있는 가족묘를
지나 질고개로 내려선다. 질고개는 청송군 부동면 나리에서 부남면
이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정표가 서있다.

12:26 질고개 도착/중식
점심을 먹는 사이 산유화로부터 통점재에서 시작하여 우리와 반대 방향
으로 산행을 시작했다는 전화연락이 온다. 진행도중 합류하여 같이 하산
하겠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끝난 13시경에 현을이 대원 모두에게 오늘
운행에 대한 의논을 하자고한다. 이번 구간의 남은 거리를 감안하면 약
5시간 정도 더 진행하여야 하는데 하산시간이 너무 늦어지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의 13구간도 20Km 이상되니 해가 짧은 겨울임을
감안하여 12,13 두 구간을 세 구간으로 나누거나 14구간을 감안하여
거리를 조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의논끝에 낮시간이 짧은 동절기 운행은 산행시작과 종료지점을 잘 선정
하여 도상거리로 15Km, 산행시간은 약 8시간을 기준으로 운행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다음 13구간은 질고개-성법령까지로 코스를 확정하고
오늘 구간운행은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 거꾸로 진행하고 있는 산유화
에게는 되돌아 가라고 연락하고 통점재에서 대기중인 영목에게도 산유화
를 태우고 질고개로 이동하라고 연락을 취한다.

차를 기다리는 사이 모처럼의 여유를 즐긴다. 늘 얼마나 바삐 길을
걸어 왔던가? 가끔씩 지나가는 차에 탄 사람들은 도로가에 어슬렁거리는
우리들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간다.
대장, 현을아우와 함께 셋이서 질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이현리의 마을
로 내려가 보기로한다. 질고개 도로를 건너 이어지는 정맥길 입구에는
'산불조심' 깃발이 달린 오토바이 한대가 서있다. 도로 바로 위의 낮은
봉우리에 감시초소가 있다.

마을을 내려서니 마침 時祭를 지내느라 먼 지방에서 올라온 차량들이
많이 늘어서 있고, 우측의 산자락 묘소에는 큰 집안인지 祭를 지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오른쪽에 있는 작고 낡은 2층짜리 건물은
폐교된 이현초등학교로, 49년에 개교하여 93년에 폐교했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마을 입구에 경로당이 있어 다음 구간때에 혹시나 이를 이용
할 수 있을까하고 가게에 들러 이장님을 찾으니 반장님집을 가르쳐 준다.
할아버지가 경로당 총무라고 하며 반장댁 할머니는 낯선 나그네들에게
전혀 경계심을 보이지 않고 회장님 댁으로 안내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사용을 허락하신다.
아마도 할머니께서 이용하게 해주자는 쪽으로 말씀 하신 것 때문에 쉽게
일이 풀린듯하다. 이현리의 어르신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산행시간과 거리는 짧았지만 마루금자락에 기대고 있는 마을을 방문하고,
또 그런 허락을 받아내니 보람과 또 다른 즐거움을 맛보다.

다시 올라오는 길에 경로당을 들어가보니 침구는 물론이고 싱크대,보일러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거의 콘도수준이라고 웃으며 입을 모은다. 추운 겨
울, 야영을 하며 겨울산을 느끼는 것이 겨울산행의 맛이기는 하나, 이런
정겨운 맛을 볼 수 있는 것도 정맥길을 걸으며 갖게되는 또 다른 즐거운
추억이 아니랴...

영목과 산유화가 차량으로 돌아와 합류하여 귀가길을 통점재로 하여 지나
가는데 이 곳에서 청송과 포항이 갈린다. 현재 비포장 도로이지만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다음 구간 하산하게될 성법령으로 차량을 이동하여
포항시 기북면쪽으로 귀가하는데 기북면의 여러 마을들에는 사과과수원이
엄청 많다. 이곳도 사과산지로 유명한 곳인 모양이다.

공동집하장에서 팔고있는 사과가격을 물어보니, 까치가 찍어버려 하품이
된 것은 마대 1자루에 1만원부터 팔고있고 2만원이면 아주 上品을 살 수
있다. 수고한 노동에 비해 너무 싼가격에 내어놓아야만 하는 그 모순과
악순환에 휘둘리는 농촌의 많은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보낸다.

다. 12구간 답사를 마치며...

이 구간은 짧긴해도 마치 야누스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이다.
구간 초반의 벌바위를 올라 내려서는 길과 옆의 험한 바위능선과는 달리
그 이후의 산길은 아주 걷기 수월한 순한 육산길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무포산 갈림길 지나 만나는 내리막길에서의 길 진행에는 주의를 기
울여야 겠다. 먼저 진행한 팀의 시그날이 아예 없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정확히 길을 찾아낼 수 있을런지.

계획된 구간을 소화하지 못함이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구간단축은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고, 겨울산의 운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서로
의견을 모은 것도 잘 된 일이다.

그리고 늘 야영을 학교운동장쪽으로 생각하던 것을 마을의 경로당이나
공공건물의 사용허락을 받고 이용해보는 것도 겨울산행시는 좋을 것으로
생각되며, 향후 구간답사시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볼 일이다. 


(기록/정리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