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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스크랩] 낙동정맥 구간종주 제1구간 답사보고.

마루금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종주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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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간명 : 제 1구간(피재 - 통리역)
2. 일 시 : 2000.8.26(토) ~ 8.27(일)
3. 소재지 : 강원 태백시 적각동, 통동
4. 날 씨 : 비
5. 참가자 : 마루금 답사모임 뫼벗회원 5명
제환상,조용섭,장병천,김현을,황정주
6. 산행형태: 1박2일 워킹산행
7. 도엽명 : 1/25,000 함백,도계 1/50,000장성
7. 교통편 : 승합차 대절(13구간 블렛재까지 예정.
영천부터 대중교통이용)

8. 산행시간표
08:30 피재 출발
08:37 작은피재
09:10 930봉
09:16 산길소로(임도)
09:28 " (" )
10:00 위 2번재 임도로 되돌아옴
10:03 출발
10:30 휴식
10:37 출발
10:47 예낭골 산간도로
11:11 922봉
11:20 무명봉(900봉), 휴식
11:32 출발
11:37 철탑(약 5분간 진행후 산행로 좌측(동쪽)으로 꺾임)
11:45 932봉(삼각점)
11:58 느릅재
12:03 출발
12:18 900봉
12:30 좌측 하산길
12:51 통리역. 산행종료

9. 산행후기
가. 낙동정맥 종주를 시작하며....

나는 꼭 이러야만 하는가?
왜 지리에로만 들어가려고 하는가?
또 그런 내가 왜 1개월에 2회 산행을 꼬박 지키더라도 1년 이상은
족히 걸릴 이 긴 산행을 시도하려는 것일까?
도대체 나에게 있어 '산'은 무엇인가?
정맥종주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뜻있는 山友 5명이 수개월 전부터 계획하여 그 첫발을 내 딛기로
계획된 전날, 비가 몹씨 오는 저녁에 나는 들떠 있는 마음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쿵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새삼스러이 이런
생각속으로 빠져 들고 만다.

가만 있는 산,
가는 줄 오는 줄 모르게 조용히 다니면 될 터,
왜 이렇게 종주라는 틀 속에 생각을 가두어 놓고
자신을 옭죄어야만 하는가?
텅 비워진 머리속에서 생각해내는 여러 말꾸러미들은 아무래도
스스로를 설득시키기에도 충분치 않다.

궁색하나마 그 중 '산'을 찾는 의미보다는 엉뚱하게도 나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생각이 불쑥 떠 오르며 자답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해 봄이다.

차갑디 찬 바위를 부둥켜 안은채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할매 내 또 왔습니다'하고 외칠때, 갑자기 쿡하고 나의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함을 느끼고서는 나는 신내린 무당처럼
산오름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려 작정했고, 스스로에게도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맹세를 하였다. 신내린 무당이 그네의 길을 갈때 그때까지
괴롭히던 온갖 잡병이 물러가고 난마같은 일들이 풀려간다고 했듯이,
산에 깊숙이 스며들수록 내 일상은 더욱 활력이 일기 시작했다.
단순히 '육체의 건강함'만은 아닌.....
다만 걱정되는건 합리만을 추구하는 서구의 알피니즘에 너무 물들어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합리'란 인간의 입장에서 세속의 기준으로 세운 덕목이기 때문이다.
'산'은 자연이며 존재 그 자체이므로...

그냥 달려가지는 않으리라....
느끼리라, 부여잡고 사랑하리라, 그리고 같이 울리라...

항상 단순히 텅 비우려 애쓰던 머리도 이제 최소한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조금은 생각하며 채우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미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 잠은 오질 않는데 속절없이 비는
더욱 퍼 붓고 있다.

나. 종주 첫날 피재로의 접근

우리가 출발하는 토요일 오후5시의 부산은 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으나 이미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었고, 천둥번개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렸었다. 일기 예보에 의하면 이 비구름대는
북동쪽으로 한반도를 북상, 동해안쪽에 많은 비를 내릴 것이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출발을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일단 가자! 지하철 명륜역 입구에는 오후 5시 이전에 이미
모두 집결해 있다.추석을 앞두고 벌초등 성묘차량이 몰려
들 것으로 예상되는 고속도로를 피하기로하고 차는 경주에서
포항쪽으로 방향을 틀어 7번 국도로 북으로 향하기로한다.
비는 쉬엄없이 내린다. 영덕즈음 지나갈때 백산님으로부터
안전산행을 당부하는 걱정과 격려의 전화가 왔다. 새삼
지사동도 어느새 내게서 분리해서 생각할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음을 느낀다. 고마움을 느끼다.
울진을 지나 삼척 원덕면에서 내륙으로 들어가는 417번 지방도
로 차를 돌린다. 덕풍.용소골등 아름다운 골짜기의 들머리인 풍곡을 지나
가파른 신리고개를 넘으니 38번 국도와 만나고 이제 태백이다.
아니 정확히 태백시 통동이다.
본래 태백이란 도시는 없었다. 탄광으로 유명한 삼척군의
장성읍과 황지읍이 합쳐지며 태백산 아래의 이 두 고장은 참으로
지혜롭게도 至高한 태백시란 이름을 얻었다.
석탄산업의 衰落으로 원래 인구의 반 이상이 빠져 나간 이 도시는 이제
평균 해발고도 650M의 고원도시답게 '고원휴양도시'를 표명하며 이미지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태백에 이르자 6시간 이상을 찻길을 달려 왔고, 이미
밤11시가 되었건만 동료들의 얼굴엔 약간의 흥분감과 긴장감이 돈다.
태백시내 입구에서 35번 국도로 삼척군 하장면으로 난길을
오르다보면 피재가 나온다. 오늘 우리의 종착점이다. 우리는 시가지를
지나다 잠시 차에서 내려 산신제에 쓸 祭酒를 구입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후 다시 35번 국도로 오르는데 고도감이 꽤 느껴질 정도이다.
피재의 해발 고도는 920M이다. 모두들 조용히 응시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의
앞쪽에 드디어 三水嶺 碑가 보인다.

"피재다!" 차안이 가벼운 흥분으로 술렁된다.
삼척으로 흘러 동해로 빠지는 오십천, 남한강으로
해서 서울을 거쳐 서해로 빠지는 한강, 구비구비 영남의 내륙
물길을 모아 남해로 빠지는 낙동강이 처음으로 물길 호적을
올리는, 삼수령의 다른 이름이다. 조그마한 가게가 하나 있고
차를 대기가 좋다. 우리는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는데 끊임없이 추적거리며 오는 비에 텐트는 1동만 설치하고
일부는 차안에서 자기로 결정하고, 늦었지만 저녁 준비에
들어간다. 역시 여명아우의 찌게솜씨는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종주내내 부식담당은 고정시키자고 모두에게 건의
할 생각인데 카운터펀치가 겁이나 말은 차마 못 꺼내겠다.
밖이 소란스러웠던지 가게주인 아저씨가 셔터를 올리며 나온다.
야밤에 남의 가게 앞에서 허락도 없이 떠들던터라 모두를 미안해하는데
이 분은 오히려 우리 걱정을 해준다. '저기가면 비를 피할수가
있는데'하시며 여기저기 가르쳐준다. 정말 따뜻한 마음씨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그 자리에 있겠다는 새삼스런 양해를
구하고는 반주를 곁들인 늦은 저녁을 정말 맛있게 먹는다.
그 사이사이 자동응답 기상예보를 들어보지만 '오후11:30현재
40-80밀리 많은곳은 120밀리'의 비가 오겠다는 말만 되풀이된다.
01:00경 식사를 끝내고 정돈을 한 후 잠자리에 드는데 병천과
대장이 텐트에서 자겠다고 한다. 못 이기는체 차안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아마 이 비에 텐트안의 동료들은 잠자리가 아주
불편할듯하다. 하지만 차안 역시 쾌적한 잠자리를 부여받지
못했다. 바깥은 빗줄기가 가늘어지는 듯한데 차안에서는 갑자기
천둥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했으므로. 아! 오도가도 못하는 심정.
결국 선잠속에 약 3:30분경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눈을 떴는데
고냉지채소밭에 수확하러갈 인부들과 이들을 데리고온 상인들인듯 하다.
피재 서쪽에 위치한 매봉산에는 국내에서 가장 너른 (약40만평)
고냉지 배추밭이 있는데 약 20년전에 조성되었으며,
전국에서 가장 당도높고 질 좋은 배추가 생산된다고 한다.
피재에서 포장된 도로로 약 1.3K 서쪽 산길로 가면 나온다고
하는데 그 곳까지 다녀볼수는 없을터...
그 비오는 날 이른 새벽, 생업을 위하여 애쓰는 우리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고단함에 나는 잠시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애써 외면
하며, 그대로 눈을 감고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느라 끙끙대고 있었다.

다. 드디어 첫발을 딛다.

기상시간은 05:00이지만 계속되는 비속에 아무도 일어나려 하지
않고 있다. 조금씩 밝아지는 사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가게위 언덕의
공터로 올라가보니 잘 지어진 깨끗한 육각정 정자가 단아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빗물의 운명'이라는 제목의 삼수령 기념조형물이 서있고....
정자안(육각정)바닥은 하나도 젖지 않았다.
갑자기 그 북동방향으로 난 산길에 달린 시그널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 백두대간...아마도 삼척 덕항산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산줄기이리라.
낙동정맥 종주의 느낌을 백두대간으로 하여금 새로이 느끼다.
뒤 올라온 여명아우, 대장, 병천등과 전망대(정자)에서 정맥의 길을 찾다.
정확히 지도정치해본 결과 정맥의 시발점은 피재 조금 아래의 고개에서
시작하여 남남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요 아래의 그 시발점이 아마도 작은피재
일 것이다. 모두들 조금 줄어든 비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침은 역시 여명아우의 국에 곁들여 먹고는, 점심밥까지 준비를 끝내고
주위 정리와 함께 배낭 꾸리기에 들어간다.
이제 이곳에서 남은 일 한가지는 우리들의 정맥종주를 이 땅의 산신께
고하는 일, 즉 산신제를 지내는 일이다.
우리는 비를 피할수 있는 전망대를 제 올리는 곳으로 정했는데
비가 오건 오지 않건 참으로 의미있고 적격인 장소인것 같다.
제문은 내가 맡았다. 어려운 격식의 제문은 자신 없을뿐더러 그냥
생각나는대로 산신께 말씀드리듯이 적고 싶었다.

'단기 4333년 서기 2000년 8월 27일 마루금 답사모임 뫼벗 일동은
우리의 산과 자연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고 이제 낙동정맥의
마루금을 보듬고 아우르고자 이곳 낙동정맥 산줄기의 시발점인
피재에서 삼가 그 첫 발을 디디게 되었음을 천지신명과 이땅의
산신께 업드려 고하나이다.
저희들의 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여삐 여기시어 지금부터
전 마루금 답사가 끝나는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 이를때 까지
회원간에 돈독한 우애와 우정이 가득차고, 보람되고 무사한
산행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여기 그 간절한 염원의 일념으로 저희들은 이 성스러운 제를
올리나이다.
삼라만상을 관장하시며 전지전능하신 천지신명이시여!
이 땅의 산신이시여!
이 한잔 술을 흠향하여 주옵소서.

단기4333년 서기2000년8월27일
마루금답사모임 뫼벗일동 '


돌아가며 잔을 올리고 절을 올린 우리는 제를 마치고 음복을 했다.

피재에서 내려오며 우리는 가게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작은피재로 향한다.
피재에서 35분 국도로 남쪽(태백시 방향)으로 채 10분도 걷지 않아
우리는 정맥종주의 시발점에 도착했다.
마루금이 시작되는 곳엔 '출입금지'라는 글이 적힌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표식기가 달려있다. 역시 낙동강 수계의 지역에서 온 팀이
많다. 부경대,백두산산악회,석봉,등등...
대장의 제의에 우리 모두는 스틱을 모았다. '뫼벗! 파이팅!'
조금 가늘어지긴했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일년여 종주답사
일정의 첫 발걸음을 디딘다. 봉긋봉긋한 봉우리가 9개라하여 구봉산이라는
이름이 지도상에도 나와 있지만 그 정상은 어딘지 알수 없다.
아마도 정맥이 지나가는 930봉이 가장 가능성이 있을듯하다.
걷기 좋게난 임도와 낮은 구릉지대로 정맥길을 걷는다. 여기서 낮은
구릉지대라함은 마루금의 평균고도가 900고지이지만 워낙 출발점이
900M대의 높은 고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산간지방인 태백에는 논을 거의 찾아 볼수가 없다. 대신 산사면을 개간하여
그대로 조성한 채소밭,특히 고냉지 배추밭이 많고 가끔 연초록의 초지도
눈에 뜨인다. 우리가 걷는 정맥길 우측에도 시원한 초지가 조성되어 있다.
아뿔사! 너무 잘 나있는 길을 걷다보니 왼쪽으로 봉긋 올라가는 930봉을
비켜 와버렸다. 930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데 빤히 보인다. 9부능선
이면 마루금을 걷는것과 다름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대로 진행한다.
갑자기 빗방울이 더 굵어지고 바람도 몹씨 분다. 하지만 나의 온 오감과
마음은 명징해지는데 그 희열감을 갑자기 주체하지 못해 고함을 질러본다.
능선길엔 드문드문 당잔대가 그 가녀린 몸을 하늘거리고 있고, 이제껏 준비
해온 가을을 맞이하는 들꽃들이 지천이건만 이름을 다 알수가 없음이 다소
아쉬울 뿐이다. 우리가 걷는 능선길은 갈참,싸리,철쭉등의 낮은키 나무들이
밀생해 있으나 능선 우측의 산자락에는 조림한듯한 침엽수림이 보인다.
930봉을 지나 약 5분간 걸으면 산길 소로가 나타나는데 삼척 도계의
흥전리로 내려가는 길인듯하다. 내려다보이는 도계쪽의 뒤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산군의 마루금은 오히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정맥의 마루금보다
훨씬 위압적이다. 아마도 육백산, 용소굴 응봉산등 1200고지의 높은
산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산길소로를 만난지 10여분만에 또 왼쪽(북동)으로 휘돌아가는 산길
소로(임도)를 만났다. 우리는 진행방향의 잘 나있는 임도를 따라 그대로
진행한다.
바로 앞에 엄청나게 파헤쳐져 있는 능선파괴의 현장을 목격하는데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 광물을 채취하는 대백광업이란 곳이다. 포크레인과 프랜트가
설치되어 있다. 잘게 부서진 돌을 자세히 보니 미백색이고 빗물에도 잘
녹는 듯하다. 돌을 캐내어 절개된 자락은 계속되는 비에 이제 스스로를
허물어 내리고 있었다. '문명''만물의 영장'이라는 말들이 곧 '파괴'란
단어를 연상케 되는건 나의 기우일까? 아! 끝갈데 없는 인간의 교만함이여!
능선이 이제 돌아가는듯해서 대장이 방위각을 보자하는데 이런!!!!
진행방향이 거의 350도 정북에 가깝다. 이 1구간은 대체로 남남동방향으로
140도를 전후한 방향인데, 잘 나있는 임도를 따라 걷다보니 너무 지나쳐
와버렸다. 지도를 보면 조금전 2번째 만난 임도에서 거의 동측으로 진행
하다 다시 남측으로 방향을 트는 마루금이 있다. 이 산줄기가 낙동정맥의
마루금이다.
출발전 몇번 방향을 정확히 확인하였지만 도로처럼 길이 나있는 길을
아무런 생각없이 따르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고 만것이다.
종주 첫날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길을 살필수 있도록 비가 오는 와중에도 하늘을 환하게 열어준
것이 산신의 보살핌이라 느꼈다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잘못 진행해서 되돌아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약 40여분, 그래도 진행시간
은 많이 늦어지지 않았다.
이구동성으로 소구간마다 방위각을 확인하자고 입을 모은다.
그럼으로해서 더 산에 익숙해지고 친숙해지겠지...

정맥 들머리와는 달리 제법 키 큰 활엽수들이 숲길을 차지하고 있다.
낮은 키 나무들 보다는 다소 수월하지만 그래도 앞 사람의 진행에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매를 맞지 않는다. 계속 길은 고도를 낮추어간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이는데 길, 거의 도로수준의 길이 나온다.
정맥 서쪽의 예낭골에서 도계읍으로 넘어가는 길인데 차바퀴 흔적도
보인다. 예낭골의 산사면 채소밭에는 수확이 한창이다. 수확이 끝난
밭은 시커멓게 변해 그 옆의 초록색 밭과는 그 색깔이 대조적이다.
이제 앞의 봉우리는 922봉, 또 다시 잡목숲 오르막이다. 우측으로 조금
비켜 오르면 능선사면 바위길로 길이 나있는데 처음 대하는 비교적
단단한 바위길이다.
밑에서 올려 볼때는 봉긋하게 보이던 922봉은 숲으로 쌓여 정상부위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900봉(무명봉)이 나오는데 시야가 탁
트인다.
하지만 그 시야의 한계는 하늘울타리 안까지이다. 산첩첩,골첩첩...
그렇게 태백시와 삼척 도계는 하늘 울타리안에 갇혀져 있었다.
출발한지 거의 2시간이 지났다.
진행 도중 물 한모금 마신외에 900봉에서 우린 처음으로 간식을 꺼내
먹는 휴식다운 휴식 시간을 갖는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고....
오버트라우저 아래로 찬 스패츠 덕분에 발은 아직도 괜찮은 편이지만
이제 서서히 습기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약 10분여의 휴식후 우리는 932봉을 향한다.
900봉에서 출발한지 4분여만에 철탑을 만나고 다시 4분간 진행하면
거의 270도(동쪽)방향으로 꺽이면서 길이 열려 사면을 오르면 932봉이다.
삼각점이 있고 그 위로 나무를 세워 놓았다. 이제 진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비에 미끄러워진 급사면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는 내 걸음에 비하면
선두 세 사람은 아예 뛰는 수준이다. 나는 괜히 '뫼벗!'하고 큰 소리로
부르고는, '방위각확인'이라 소리쳐 앞서가는 사람들의 발을 더디게
만든다. 내리막길이 닿는곳은 느릅재(楡嶺)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옛날엔 삼척 도계로 넘어
가는 가장 주요한 간선로였다한다. 지금도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은 넓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길이니만큼 수많은 우리네 민초들의
애환이 많이 서린 곳.. 전설이 없을 수가 없다.
지금 느릅령에는 호환을 당할뻔한 효자이야기가 담긴 碑가 세워져 있고,
또 다른 문헌에는 여랑이라는 여자의 원혼을 달래준 효자이야기가 나온다.
어쨌든 효자이야기는 동일하다. 그런데 느릅재에 아담하게 지어져있는
사당(楡嶺堂)은 후자 이야기를 더 뒷 받침해주는것 같다. 치성드리러 온
사람 몇몇이 비를 뒤집어쓰고 있는 우리를 자꾸 흘깃흘깃 쳐다본다.


지금 시간은 12:00 이제 남은 도상거리는 1.6km, 실제거리 약 2Km...
넉넉잡아 1시간이면 오늘의 산행종료점인 통리역에 도착한다.
당초 다른 산행팀의 기록을 바탕으로 15:00를 하산 예정시간으로
잡은 것에 비하면 무척 빠른 진행이었다.
봉우리는 이제 900봉 하나 남았다.
느릅재에서 잠깐의 휴식후 우리는 900봉을 오르는데,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며 누군가 한마디한다. '역시, 그냥 놔주지는 않는구먼...'
짧은 구간이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같다. 본래 지도에 의하면 우측으로
봉우리를 우회하는 산길이 있었는데 이 길은 정맥종주대에서 길을 새로이
낸 것 같았다. 뾰족한 봉우리만 지나면 바로 하산길로 연결될줄 알았는데
봉 오름 뒤 貞婦人묘를 지나 편편한 능선길로 한동안 걷다 좌측 내리막
으로 길이 열려있다. 내리막 길은 다소 경사가 심하다.
이곳 내려오는 길의 숲은 이제까지의 숲과는 달리 키 큰 침엽수림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추적거리며 오는 비에 길은
매우 미끄럽다.
'한 엉덩이에 막걸리 한병'이라고 외쳐 보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나머지 대원은 오히려 나에게 가장 가능성을 기대했겠지만....
아직 숲길인데 열차 지나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얕으막한 언덕을 내려오니 통리(통동)와 통리역이 바로 눈앞이다.
모두들 만족감으로 가득찬 환한 모습들이다.
처음 시작때 그러했던것처럼 우린 다시 스틱을 모으고 외친다.
' 뫼벗! 파이팅'

어찌보면 4시간 20분여의 짧은 산행이었지만, 우리에게는 1년여에 걸칠
산행의 출발점에서 자신감과 가능성을 확인한 소중한 산행이었던 것이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지만 하늘은 점점 환하게 열리고 있다.
우리는 철길을 가로질러 다음 2구간 산행의 기점이 될 3거리에 있는
(신리고개.도계,태백) 약초 판매점 마당으로 갔다. 3시까지 오라고
했으니 아직 차는 올리가 없고 전화연락을 취해 오라고 한다.
마음씨 좋은 판매점 아주머니의 배려로 우리는 신축 건물안에서 비를
피해 취사를 할 수가 있었고 남쪽에서온 산사람들을 기특하게 생각
해서인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맛있는 김치까지 가득 담아주신다.
출발점의 아저씨와 종착점의 아주머니에게서 느낀 태백의 후한 인심은
아마도 쉽게 잊지 못 할것 같다.
산중에서 바로 먹기 위해 가지고 간 찬 밥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린
다시 밥을 짓고,찌게를 끓이고 해서 배불리 점심을 먹는다.
물론 반주도 곁들이는데, 병천은 기어코 거금을 주고 아주머니에게서
그 귀한 오미자주를 2리터나 사 왔다. 도대체 누굴 죽이려고(?)
이러냐며 핀잔을 주는 듯하는 내 손에는 이미 시에라컵이 들려져 있다.

아직까지 한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은 정주아우!
밑반찬 깔끔하게 준비해오느라 수고 많았네.
그런데 대장을 당당하게 대할 사람은 아우밖에 없을듯한데 힘내게...
내가 후원할테니.
5명의 낙동정맥 종주대 뫼벗...
모두들 보람찬 산행이었고 다음 2차 구간에서는 더욱 짜임새 있는
산행이 되길 빈다.

차량 귀가는 진입시 올라오던 코스로 그대로 내려가다가
고속도로의 혼잡을 피해 경주에서 35번 국도로 가다 포석정에서
저녁후 귀가함.


(기록/정리 두류 조 용 섭)





출처 : 지리산 산길따라
글쓴이 : 두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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