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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스크랩] 낙동정맥 구간종주 제2구간 답사보고.



마루금 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종주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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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간명 : 제 2구간(통리 -매상골, 도상거리 13.0Km)
2. 일 시 : 2000. 9.23(토) -9.24(일)
3.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통동,철암 삼척시 가곡면
4. 날 씨 : 맑음
5. 참가자 : 제환상,조용섭,장병천,김현을,황정주,김정기 이상 6명
6. 산행형태: 1박2일 워킹산행
7. 도엽명 : 1/25000 도계,철암 1/50000 장성
8. 교통편 : 승합차 대절
9. 운행시간표
9.23(토) 17:00 부산 명륜동 전철역 집결
23:25 강원 태백 통리입구 삼거리
(태백특산물 약초생산판매장 앞마당)
야영준비 및 저녁식사

9.24(일) 01:45 취 침
05:30 기상 및 아침식사
07:00 산행시작
07:10 태현사
07:17 송전탑
07:34 능선오름
08:20 1090봉, 휴식
08:30 출발
09:45 고비덕재(안부,헬기장)
10:05 3거리 착(마루금-백병산 갈림길), 휴식
10:20 출발
10:49 산죽밭
11:00 방위각 약 90도 꺾이는 지점
11:10 휴식
11:27 출발
11:38 송전탑
12:40 1085봉 밑, 휴식
13:00 출발
13:30 토산령. 휴식
13:40 출발
14:21 1071봉. 휴식및 회의(매상골로 하산결정)
14:50 안부
15:00 안부위 봉우리착. 하산
15:30 지능선 하산완료
16:10 주차장 도착(산행완료).휴식. 세면.정리
16:55 출발(차량이동), 칼국수집
18:00 귀가(차량이동). 416번 지방도 및 7번 국도
23:20 부산도착


10. 후 기
가. 다시 태백으로.....

이상스럽게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병든 닭처럼 눈반 껌벅이며 그저
습관처럼 일상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땀으로 벗겨져 희미한 연필로 쓴
메모지를 보면, 아득한 옛날인냥 좀처럼 재생되지 않는 산길들의 기억들...
가끔씩 사금파리 반짝이듯 떠오르는 생각의 편린들을 모으고 짜맞추고
또 꺼집어내느라 안간힘을 쏟아본다.
아뿔사! 기록을 내어 보임이 이렇게 부담스런 일이 될 줄이야.....

매월 2,4째주 월 2회 진행하기로 되어있는 정맥 구간종주를 이번 9월은
한가위 명절과 겹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9월 4째, 10월1,2째주 3회를
연속하여 실시 하기로 의논끝에 결정을 내렸다. 1구간 답사 이후 근
1달만이다.
물론 지난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9.9-9.10 일에 환상,병천과 함께 영남
알프스 능선산행을 따로 하기는 하였지만.....

배낭을 꾸려놓고, 16:20까지 오겠다는 차를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 그만 깜박 잠이 들었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16:35분이다. 화들짝 놀라 튀어나오는통에 1/25000지도를 챙기지
못한것을 알게된건, 집결지인 명륜전철역에 도착할 때 즈음이다.
잊어버릴까봐 배낭옆에 고이 챙겨 놓았는데도 어떻게 내 시야에서 벗어
났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그냥 배낭에 꽂아두면 될걸, 그 사이 한번
더 챙겨본다고 하는 통에 생긴 일이다. 이 일땜에 정주아우에게서
두고두고 잔소리를 듣고.....

마침 구서동에서 기다리고 있는 현을이 1/50000 지도를 가지고 있다하여
그냥 출발하기로 한다.

전철역에서 집결한 환상(대장),정주, 오늘 업저버로 참석한 정기(산),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서 17:05분 출발하여 구서동에서 현을(여명),
양산에서 병천을 태운다. 당초 오늘 야영지인 태백 통리로의 접근은
경부고속도(대구)-중앙고속도(영주)-봉화-태백으로 하려고 하였으나,
길이 잘 나있고 차량정체도 비교적 덜한 7번 국도를 다시 이용하기로
하고 경주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간다.
이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눈치챈 사람이 있을런지는 모를
일이다. 모두 반가운 만남에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나는 포항을
지난뒤 만나는 국도변의 한 상점앞에 차를 세우게 하고 절실히 필요한
물품 몇몇을 구입한다. 여기서 무엇을 구입하였는지는 밝히지 않으려
한다. 이야기 사이사이 돌아가는 잔속에 1.8리터 페트병과 비상용 4홉
들이 맑은 물은 속절 없이 비워져버리고.....

차량운행 휴식중 전망 좋은 화진휴게소에서 메트리스를 깔고 앉아
집어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동해의 오징어잡이 배들을 보며 소주를
마시는, 잠깐동안의 낭만을 느껴보기도 한다. 그러는 도중 모처럼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생글이에게서 안부전화를 받다. 항상3째주를 비워
두어 지사동 행사는 꼭 참석하려 하였지만 이번 정기행사가 4째주로
연기되며 겹쳐지게 되어, 같이 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차량이동이 두번째인 영목은 역시 전문가답게 지난번 보다 훨씬 수월
하게 차량운행을 한다. 그리고는 가스랜턴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는
오징어잡이 배들을 뒤로하고 삼척 원덕읍에서 내륙으로 방향을 튼다.
깜깜한 밤에 멀리서 오징어잡이 배들을 쳐다보는 것은 무척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정작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의 고단함과 치열함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듯이.....

내륙으로 한참 들어가다 신리고개 못미친 지점의 육백산 식당에서
지난번처럼 역시 주인을 깨워 커피를 한잔씩 돌린다. 추적거리며 오는
비에 비를 피하며 마시던 지난번과는 달리, 오늘은 맑은 하늘에 수없이
드리워진 별을 보며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다.

가파른 신리고개를 지나 내리막길로 조금만 진행하면 38번 국도와 427번
지방도가 만나는 '태백특산물약초 생산판매점'이 있다. 지난 구간 산행
종료지점인 이곳 마당이 오늘 우리의 야영장소이다. 23:25 도착

앞에 빤히 보이는 통리역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으나 동네는 너무도
조용하다. 가끔씩 지나가는 대형트럭에서 나오는 힘겨운 엔진소리는
조용한 산간마을의 정적을 깨며 너무도 시끄럽게 공간을 뒤 흔든다.
그래도 통리는 아랑곳 없는듯 잠들어 있었다.

항상 그러하듯이 취사조,천막조가 나뉘어져 분주히 움직인다.
이번에는 현을이 7.8인용 대형 텐트를 가지고 왔다. 집 한채가 뚝닥
지어져 버린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찌게는 현을의 몫이다. 우륵매운탕이라!!
예닐곱개의 필름통에 들어있는 각종 양념으로 간을 맞춘뒤 드디어
나오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 하지만 이런류의 부식은 찬이 아니라
안주가 더 적격이라... 다시 대형 페트병 하나가 다 비워져버린다.
나는 홀짝홀짝 국물을 아껴가며 소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늦은 저녁 후에, 오늘 마루금 운행중의 점심에 대한 의논을 하는데
행동식으로 김밥을 해서 가자는 병천의 제의로 잔멸치,소금을 넣은
김밥을 싸기로 한다. 김밥용 밥과 아침밥을 다시 하고 병천과 환상이
김밥을 마는데 병천의 김밥 만드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당초 석개재까지 도상거리 16.8Km,실제거리 약22Km를 감안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점심을 김밥으로
간단히 해결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석개재까지 진행하지는 못하였다.
01:45 취침


나. 풀꽃의 향연뒤에 숨겨진 음모....

텐트 출입구에 잠자리를 잡은 정기가 역시 산사나이 답게 일찍 일어나
국과 찌게를 끓여 놓았다. 텐트 맨 안쪽에서 선잠으로 자다깨다를 반복
하던 나는 기상시간인 5시가 지나도 뒤척거리며 모른채 누워 있다가
결국 5:30분 경에 병천과 같이 일어났다.
병천도 잠을 푹 자지는 못하였나 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것 같은데도 생각과 달리 출발시간이 뒤 쳐진다.
어제 아니 오늘 이미 해 놓은 밥이 굳어져 시원한 국과 찌게가 있음에도
속에 넣기가 부담스럽다. 비교적 밥에 관한한 식성이 좋은 나로서도....
결국 이 아침밥은 하루종일 현을의 속을 갉아 내리게 만든다.
시간을 절약하려 미리 밥을 해 놓은 것이지만 생각해볼 일이다.
차라리 국밥이라면 몰라도.....

야영지에서의 출발시간이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어지자 내 놓고 말은
못해도 대장의 심기가 편치 않다.
나보고 들어라고 하는 소린지 한마디 툭 던진다.
'출발 시간이 이래 늦어가지고!@#$$%%^...'
하지만 제각기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대원들을 보고 더 이상 말은
않는다.

07:00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데 영목이 난감해하는 모습이다.
밤사이에 좌측 앞타이어가 펑크나 완전히 내려 앉아 있었다.
타이어 교체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2구간의 첫발을 디딘다.

삼척 신리고개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태현사로 가는
길이 콘크리트 포장길로 나있다. 태현사 앞쪽으로 해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정맥길이다. 도로가의 배추밭에는 수확이 한창이다.
트럭이 세워져있고 이른 새벽부터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나
보다. 비바람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한 농가가 있는가 하면 모처럼
가격이 올라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기도 한것이 우리네 사람들의 세상
사는 일이다. '손등과 손바닥'이라는 손의 양면성에 대한 개똥철학을
누가 듣건 말건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긴다.

태현사로 가는 길 옆에서 오늘 처음으로 종주팀의 시그날을 만나다.
하지만 정작 태현사 앞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능선상 지어진
듯한 법당앞 계단으로 조금 오르면 우측으로 길이 나 있는데,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산신각은 붉은 색이 도는 나무판자로 지어진건지, 붉은색을 칠한건지
하옇든 붉은 색의 느낌이 특이하다.
산신각 좌측으로 길이 나 있고 정맥종주팀의 시그날을 여러개 만나다.
이제 완만한 경사를 조금 오르면 송전탑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스틱을 모으고 구호를 외친다. '뫼벗! 뫼벗! 가자!'

본격적인 오름길에 나선다. 그리 경사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오름길이다. 이번 코스는 700고지에서 시작하여 900고지, 1200고지
까지를 오르내리는 다소 힘든 구간이 많다.
900고지를 오르며 현을이 소형 voice-pen에 멘트한다.
" 길이 장난이 아님..."
하지만 초입부분의 마루금 오름 이외에는 그리 힘든 곳은 없다.
성미 급한 상수리나무는 벌써 옷을 갈아 입으려하고 있고, 옻나무는 이미
이파리의 색깔을 달리했다. 대신 길섶에는 소박한 흰색의 구절초가 많이
피어나있다. 出仕하지 않은 선비처럼 고고하면서도 은은한 모습으로.....

지나온 삶의 흔적이 아득해지듯 여름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사정없이 내몰던 그 끈끈함과 집요함의 여름은 일순간에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다... 어디로 간것이 아니고 이 나무, 이 풀섶, 이 바위
어딘가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또 언젠가 차례가 되면 느닷없이
나타나 한바탕 설쳐 되겠지.....

금년 여름의 산행은 대부분 우중산행이었는데 비해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다.
어제 통리에 도착했을때 갑자기 개스가 밀려왔었는데 병천이 한마디
했다. '내일 날씨 좋다!'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지난 산행때는 歷史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한참 쏟아내더니,
天氣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것이 들어 맞는다. 서점을 경영하는
책방아저씨에게서 책읽기의 효용에 대한 순기능의 느낌을 강력히 받다.

오름길 약 10시 방향으로 개스가 걷히며 빛이 점점 강렬해지기 시작한다.
두번째 오름길을 올라서면 이제 1000고지의 마루금 길을 걷게된다.
가파른 사면을 힘들여 오르며 내가 '여긴 제법 난코스네!'하니,
어제 저녁부터 대장을 다소 위험수위의 조크로 몰아붙이던 정주가
한마디 한다. "행님, 이 코스는 난이 많이 나오는 코스입니꺼?"

처음으로 땀이 쏟아진다. 그런데 현을의 얼굴이 예사롭지가 않다.
본래 땀을 많이 흘리고 체구에 걸맞게 천천히 힘을쓰는, 지구력으로
산을 다니는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는듯 하다.
1090봉 아래 전망대에서 처음으로 시야가 트인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니 태백을 둘러싸고 있는 검은색의 산릉사이로 솜처럼 푹신하고 짙은
구름이 둘러 쌓여 마치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듯 하다.

지난번 지나온 북서방향의 마루금을 찬찬히 지켜본다. 우리가 지나온
정맥의 길이다. 저 멀리 산허리를 돌아가는 희미한 길이 닿는 곳에
V자모양으로 살짝 홈이 파진 곳이 피재인것 같다.
그곳에서 마루금을 연결하여 눈길로 따라와 보지만 연결이 쉽지가
않다. 답답하다. 지나온 것들은 왜 이리 쉽게 잊어버려지는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출발하려는데, 대장과 병천이 현을의 큰 얼굴에
보송보송 맺혀있는 땀방울을 보고 걱정스레 한마디씩 한다.
" 땀이 식은 땀 같은데...."

조금전 오르기 전까지의 산길과는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900고지 오름까지는 육산길에 낮은키의 참나무가 대부분이었으나 이곳
부터는 키 큰 참나무가 이곳이 마루금인지 분간을 할수 없을 정도로 짙은
그늘을 만들어 놓았고, 길은 부드러운 흙길로서 오솔길을 걷는것처럼 상쾌
하다. 언젠가 '이제 우리숲의 주인은 소나무가 아니라 참나무이다'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참으로 이곳에서 행세하는 나무는 참나무 밖에 없는
것 같다. 쭉쭉 뻗은 참나무 사이 마루금옆의 숲은 1000고지라는 것이 실감
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고, 습기찬 토양에 많은 나물류의 풀들이 자리
를 차지하고 있었다.

참취,곰취가 이따금씩 아름다운 꽃잎을 드러내고 있었고, 이파리가 큰 나물
류의 풀은 이름을 알수는 없으나 지천으로 널려져 있었다. 부드러운 흙과
숲으로 덮인 마루금을 나는 즐거워하며 또 감탄하며 걸었다.
여전히 현을아우는 후미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고 앞서 가던 대장과 병천이
이따금씩 걱정스레 뒤돌아본다. 1090봉을 지나 마루금의 숲길은 다소 완만
하지만 오르막내리막을 계속하는데, 짙은 숲속의 습한 곳을 지날때 앞서가던
대원들이 발길을 멈춘채 서있다.

"이게 무슨 꽃입니까?" 하고 정주가 묻는다. 내가 무얼 안다고...
하지만 대여섯 줄기에 특이한 모습의 꽃잎이 나란히 매달려 있는 투구꽃이다.
모습과 이름이 특이하여 마침 기억하고 있던 꽃이다. 모두들 꽃잎의 모습에
그 이름이 수긍이 가는 모양이다. 이 꽃은 마루금 산행 내내 길 가에 많이
피어나 있었다. 물론 수 없이 많은 풀꽃들이 피어나 있었건만 내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으니 어찌하랴...

아직까지 마루금 좌우로 흘러져 내리는 계곡, 또는 가지자락이 뻗어 가는
곳의 모습은 마루금길 좌우가 평평하게 넓고, 또 숲에 가려져 잘 볼 수는
없었지만, 간혹 하늘이 트이며 보이는 진행 방향의 왼쪽으로 또 다른 산줄
기가 우리가 걷는 마루금과 어우러져 둥글게 하늘금을 둘러쳐 가는듯하다.
아마 그 둘러쳐지는 산줄기의 뒷쪽으로는 신리고개로 오르는 416번 도로가
숨가쁘게 나 있을 것이고, 둘러쳐지는 안쪽으로는 풍곡을 들머리로하여
덕풍계곡,용소골, 버래기골 등 수 많은 비경들이,병풍처럼 일어서있는 산자
락사이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고비덕재 앞의 봉우리 오름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줄곧 1000고지 이상의
고도를 유지하던터라 운행이 그리 힘들지는 않다.

09:45 우리가 출발한지 2시간 45분만에 헬기장이 있는 안부인 고비덕재에
다다르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역 기역자 모양의 '정상 800M'
라고 표시된 철판이다. 물론 여기서 정상이라함은 백병산을 일컬음이다.
이곳은 하늘이 뚫려 훤하고, 수 많은 풀들이 빽빽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풀
들사이에 돌로서 만든 헬기장 표시가 있다.

고비덕재는 옛날, 지금의 태백 황지사람들이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넘나들던
 소금길이라한다. 오늘 우리 산행의 들머리인 통리도 내륙과 바다로 통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원통골에서 그 지명이 유래한다는데 이 역시 소금길이다.
우리의 옛사람들은 그 귀중한 소금을 구하기 위하여 이 높고 험한길을 오르
내렸다. 불현듯 지리산 불무장등의 그 편편한 허리에 드문드문 들어서 있던
무덤들이 오버랩된다.

고비덕재에서 백병산 3거리 까지의 오름길 약 200M는 경사가 가파르며 계단
길로 만들어져 있고, 길 양 쪽에 밧줄을 손잡이처럼 묶어 놓았다. 키 큰 나
무숲 사이의 풀섶은 여전히 푸근한 풀밭으로 산상의 화원을 이루고있다.

고비덕재에서 약 20분만에 마루금길과 백병산길과의 갈림길인 3거리에 닿는
다 . 흔히 백병산을 낙동정맥의 최고봉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늘 이 구간도 산군으로 분류할때 백병산군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정상은 마루금에서 약 600M 서쪽으로 벗어나 있고, 그 가지자락으로
마고할멈바위,병풍바위 등 주 능선과는 다른 바위길이 열려져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일단 정맥에서 벗어나 있는 백병산 정상은 이번에 들러지 않고, 후일
별도 산행으로 찾아가기로 결정한바 있다.

3거리에서 우리는 비교적 오랜시간 휴식을 취한다. 현을의 상태는 여전히 좋
지 않은데, 현을의 배낭을 들어보던 병천이 몇마디한다.
왜 이리 배낭을 무겁게 해서 다니느냐고...
'배낭을 바꾸어 매자'라고 하더니, 10년 넘게 현을과 동고동락하던 배낭의
무게 분산기능이 문제가 되니 배낭도 바꾸어라 하고 대장도 맞장구친다.
하지만 그 배낭으로 더 무거운짐을 지고, 더 어려운 길을 숱하게 다녀온
아우를 알기에 나는 아무말 않고 웃기만 한다.

이날 현을의 몸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은 이유는 아침의 마른밥이 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마루금의 길은 백병산쪽을 뒤로하고 동쪽 방향으로 길이 나
있다. 여기서 약 40분간 진행하면 다시 방위각이 170도 수준으로 꺾이며
마루금의 길은 남하하게 된다.

이제부터의 길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3거리를 출발하여 조금 진행하면 키 큰 산죽밭으로 길이 나 있는데 키가 거의
내 턱밑에까지 닿는다. 산죽밭을 지나면 길이 아주 좁아지며 철쭉이 길 양쪽
에 가지를 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오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하는 듯...

방위각이 꺾이는 지점을 조금 지나 우리는 다시 휴식을 취한다.
가져온 김밥을 하나 꺼내어 먹어보는데 목이 메어 잘 넘어가지 않는다.
현을은 아무것도 입에 넣지 않는다. 비교적 오랜 휴식후 출발이다.

" 이거 놔라!" " 못 놓겠다!"
철쭉과 싸우듯 길을 지나오니 빨리 지칠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는 간혹 나타
나는 산죽밭 밑의 잘 보이지 않는 바닥에는 나무줄기인지 뿌리인지 한번씩
나타나 발을 걸려고 달려들고...
앞서 가는 사람이 뒷사람에게 바닥 조심하라고 큰 소리로 알려준다.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고는 여유롭던 마음이 일순간 긴장으로
변한다. 올해 봄, 지리산 대원사 뒤의 한판골 능선에서의 처참하던 철쭉과
산죽 연합군과의 전쟁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한참 전쟁치르듯이 진행하다 조금 오르막으로 쳐 오르자 갑자기 시야가 트인
다. 송전탑이 나오는데, 이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한 공사도로를 만드느라
숲길을 다 베어 버렸나보다. 이 철탑의 송전선은 삼척의 가곡면쪽으로 연결이
되는 듯하다. 공사가 끝난 지금은, 길을 내어 놓았던 곳에 소나무 묘목을
심어놓았는데 반 이상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숲의 복구를 한다고 나무를
심기는 하였는 듯한데, 눈가림으로 시늉만 내었는지, 아니면 식재시기를 잘
못 택했는지....

약 250M정도 정맥 마루금을 파헤쳐 나있는 이 길은 서쪽 태백의 백산동 산제
당골로 내려가는듯하다. 얼마전 삼척 가곡면에서 주민의 동의없이 마구잡이로
산을 베어 설치하는 철탑과 송전선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리 뜻이 좋은 일이라할지라도 주변생활환경의 파괴가 수반되는
그러한 일은 주민들의 의견을 최소한이라도 반영하여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금전 휴식후 걸은 시간은 별로 되지 않지만 우리는 공사도로가 끝나는 지점
에서 다시 짐을 내리고 휴식에 들어가며,여태껏 아무것도 먹지 않은 현을에게
미숫가루라도 먹도록 강권한다. 다들 걱정하는 마음에 동지애가 넘친다.
언제인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현을의 배낭에 들어있던 리그 두대는
이내 몰수 당하게 된다.

조금 전 공사도로를 내려오며 우리는 처음으로 배낭메고 산을 오르는 사람을
만났는데 부산 다대포에서 출발해서 정맥종주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우리처럼 매 구간을 끊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몇구간을 한번에 몰아서 걷는데
이번에는 울진에서 시작해 올라오는 중이라 했다.
이제 그에게는 정맥의 길이 거의 다 와가고 있다.
고독감과 두려움을 이겨낸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휴식후 다시 오름길로 1085봉 쪽을 약간 왼쪽으로 비켜오르는데 무척 힘이
든다. 아마 오늘 걸었던 길 중에서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다.나무가지와의
싸움에서 녹다운 일보 직전이다. 아! 무서운 철쭉과 진달래...

12:44 1085봉 바로 밑의 능선길 밑에서 다시 휴식을 취한다.
마른 김밥을 억지로 집어 넣으며 체력보충을 한다. 약 6시간 진행하였지만
길은 아직 멀고 오르내림도 아직 몇차례나 우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행속도는 그리 늦지 않았다. 휴식후 마음을 다잡고 출발한다. 끝없이 급경
사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듯 하다가, 잠시 오르다가는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내리막길에는 산죽밭이 포진하고 있어 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약 30분 걸려 토산령에 도착했다. 철암에서 풍곡으로 넘나드는 이 고갯마루
에서, 동쪽인 삼척 풍곡쪽으로 나있는 길은 확인할 수 있었으나 서쪽 철암쪽
으로의 길은 방향으로만 가늠할뿐이다. 지도상에 풍곡쪽으로 넘어 닿는 곳엔
막장사택으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가 가야할 정맥의 길은 또 다시 급경사 길
로 고도를 한참 올려 놓는다. 약 170M 쯤 되는 고도차이다.
그런 길가에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철쭉을 포진시키고...

땀 흘리며 약 30분 가파른 길을 올라 1071봉에 도착했다. 현을의
걸음상태는 오히려 아까보다 많이 양호해졌다. 14:21

다시 휴식을 취하며 대장이 잠깐 회의를 하자고 한다.
오늘의 산행종료 지점인 석개재까지는 최소 17:00까지는 도착하여야 하는데
그것은 다소 무리인것 같고, 3구간도 역시 도상거리 24Km로 당일 답파가
도저히 힘든 구간이니 2-3구간을 묶어 1구간을 더 늘리고, 오늘은 다음
봉우리에서 매상골로 하산을 함이 어떠하느냐는 얘기다.
아마도 오늘 힘든 산행을 하고 있는 현을의 체력을 감안하였음이리라...
공론화할 필요가 있는 사항을 때 맞추어 대장이 이야기를 꺼낸것이다.
모두들 찬성이다. 다만 현을이 조금 주저하는듯한 모습이다.

결국 우리는 매상골로의 하산을 결정하고 석개재로 가있을 영목에게 태백
철암으로 해서 매상골로 들어오라고 연락을 취한다. 마침 트인 능선상이라
휴대폰이 연결된다. 다행이다.

하산을 결정하고 1071봉을 내려오는데, 이 길은 그냥 서 있기가 곤란할
정도로 급경사길이다. 스틱과 나무가지를 이용해 조심조심 내려 온다.
내려온 안부에서 바로 서쪽 골짜기인듯한 곳으로 희미하나마 사람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안부 바로 뒤의 봉우리로 연결된 능선으로해서 매상골로 내려
가는 산길소로가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어, 10여분쯤 급경사길을 올라가니
봉우리에서 매상골로 난 길이 나온다. 바로 앞 1071봉에서 안부로 내려오는
길은 아주 경사진 비탈길이다. 이제 태백 철암의 오지인 매상골로 하산이다.
하산하는 길은 오랬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는지 희미한데다가,어떤 이유
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무들을 베어 길을 막은듯 한 곳이 많았다.
이곳에는 줄기에 붉은 빛이 도는 아름들이 소나무가 많다.

옛부터 삼척.봉화의 소나무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이 소나무
들이 그 유명한 황장목인지 춘양목인지는 알 수가 없다.
나무를 베어내어 길을 막은 듯한것을 추측하여 현을이 하는 말,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서 일부러 길을 막은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소나무 밑둥치를 뒤적거려 본다.

다소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베어진 나무 밑둥과 버려진 큰 가지들을 비켜
지나느라 다소 힘이 든다. 하산하는 지능선길 맞은편 산자락의 급비탈에는
소나무를 베어내어 그 나무들을 쓸어내리듯이 내려 보내는듯 한데, 내려오지
못하고 급사면에 걸려있는 나무들도 제법 보인다.

약 30분만에 능선이 끝나는 평지에 닿는다. 오지 산골임에도 베어낸 나무들을
운반하기 위해서인지 비교적 너른 길이 나있는 것이 보인다. 능선을 내려 우측
으로 돌면 조림한 듯한 키 큰 낙엽송 숲이 우측 산비탈에 시원하게 쭉쭉 뻗어
있고, 길 옆에는 지름이 약 30센티 조금 못 미치는 듯한 플라스틱류의 둥근관이
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원통으로 결합하는 고리가 달려져 있다.
관의 안쪽으로 수없이 스친 나무들의 흔적으로 보아 산에서 베어낸 나무들을
밑으로 내려보낼때 쓰는 도구인 모양이다. 군데군데 나무를 쌓아둔곳이 보인다.

길 옆 개간한듯한 언덕사면에는 배추를 수확도 하지 않고 버려두어, 허옇게 제
몸을 줄여가며 썩어가고 있다. 개울가를 따라 걸으면 옥수수가 처마에 널려있는
외딴집이 나오고 또 다시 조그만 스레트집을 지나면, 숲속에 블록과 스레트로
지은 서낭당이 보인다. 이곳은 큰 차도 다닐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다.
그런데 우리 차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계속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조그마한
개울에 자갈을 깔아 '물길','사람길','찻길'로 공유하고 있다. 물길사이의
길을 걸어 내려오니 개울건너 우리차가 보인다.

초행길임에도 불구하고 영목이 잘 찾아 들어왔다. 16:10
우리는 스틱을 모으고 구호를 외친후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약 9시간에 걸친 산행이었다. 모두 개울물에 땀을 씻고 귀가길에 나선다.
16:55

통리로 가는 길에 칼국수집에 들러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집을 향하여 출발
18:00

23:00 양산도착. 병천,환상,정주 내리고 부산으로 이동.
23:30 부산 도착


다. 2구간 산행을 마치고...

이번 구간 정맥의 길은 처음에는 감탄사를 연발할 정도로 유순하고 호젓한
길로써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그 길은 우리에게 빛과 그림자, 사랑과 미움,
아름다음과 추함, 신뢰와 기만, 가진자와 없는자, 등 극단의 2분법이 세상에
횡행함을 상기시켜 주려는듯, 산상의 포근한 풀섶길의 감미로움을,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의 엄격함과 육신의 수고로움'이라는 명제로 우리를 가르치려는
듯 다스리기 시작했다.

'정맥종주가 너희들의 사치스런 산행에의 자기만족을 위하여 걷는 걸음이 되어
서는 안된다. 평탄한 흙길이던, 급경사의 바위길이던, 부드러운 풀섶길이던,
찰진 철쭉의 숲이던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것에 순응하는 걸음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또 되 뇌인다
'나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정말 모릅니다.

다만 저희가 이렇게 마루금의 길을 걸음은,
도전이 아니고 당신에게 동화되려함입니다.'



(기록/정리 두류 조 용 섭)








출처 : 지리산 산길따라
글쓴이 : 두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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