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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 답사일지/낙 동 정 맥

[스크랩] 낙동정맥 구간종주 제5구간 답사보고

by 지리산 마실 2005. 10. 17.


마루금답사모임 뫼벗 낙동정맥 종주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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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 간 명: 제 5구간(답운치-애매랑재)(도상거리 약11.9Km)
2. 일 시: 2000.12. 9(토) - 2000.12.10(일)
3. 소 재 지: 경북 봉화군 소천면, 울진군 서면
4. 날 씨: 흐림, 가끔 비, 진눈깨비
5. 참 가 자: 제환상,조용섭,장병천,김현을,황정주 이상5명
6. 산행형태: 야영. 워킹산행(1박2일)
7. 도 엽 명: 1/25000 쌍전 1/50000 소천
8. 교 통 편: 전세 승합차
9. 운행시간표

12. 9 18:00 부산 동래 전철역 출발
18:40 양산 내원사 입구/석식
20:00 출 발
23:40 야영지도착/36번 국도변(답운치에서 울진방향 차량으로
5분거리)
12.10 02:00 취 침
06:20 기상/조식
09:05 야영지 출발
09:10 답운치 도착/출발준비
09:18 산행시작/출발
09:24 헬기장/통과
10:00 휴 식
10:11 출 발
10:50 휴 식
11:00 출 발
11:25 임도/통과
11:57 이정표/휴양림에서 올라오는 산행로
12:15 통고산(1067M)/산제/간식
12:45 출 발
12:50 이정표/갈림길(우측으로 진행)
13:17 임도/통과
13:39 헬기장/휴식
14:03 출 발
15:23 애매랑재
15:38 사전마을/남회룡분교/산행종료

10.답사후기

가.정맥답사 5구간을 맞으며...

고단하고 어지러운 세상사처럼 우리 낙동정맥 종주팀의 대원들에게도
예기치않은 많은 일들이 발생하더니, 결국 이런저런 이유 끝에 11월을
답사없이 건너 뛰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랴...
생활의 터전이 우선인 것을.......

이번 주말도 현을의 회사문제로 산행이 힘들어지게되자 다른 팀원들의 배려로
회사문제가 정상화 될 때까지 순연하기로 의견을 모았었는데, 뜻밖에도
현을은 짬을내어 참석하겠다고 한다. 모처럼 2박3일간의 산행으로 답운치
에서 출발, 통고산을 지나 애매랑재에 도착하여 고개아래의 사전마을이나
남회룡분교에서 야영한 뒤, 다음날 칠보산을 거쳐 영양-백암-평해에
이르는 지방도의 발리 한티재까지 진행하기로 하였다.

금요일 오후들어 출발시간만 카운트다운 하고 있는데,
오후 4시 30분경 대장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 조형, 우리 사무실로 좀 들렀다 가야겠다."
" ??? 그기 무슨 말이고? "
" 내일(토) 긴급 대기상황 발생이다. 나는 가기 힘들것 같다.
내 준비물도 가져가야 안되겠나?"
" ......."
" 내 땜에 일정 연기하지 마라! 그래서 이리 늦게 연락하는기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서는 그런 식으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가지못하는 다른 대원들의 입장을 배려, 지금껏 수차례
일정을 연기하여 왔는데, 정작 대장 본인에게 긴급상황이 발생하여 출발
을 못한다는데 나머지 대원들끼리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대장이 토요일 늦은 오후부터는 시간을 낼수 있다하여 의논끝에 우리는
1박 2일간의 코스로 하여 답운치-애매랑재 까지의 구간을 답사키로 한다.
나머지 애매랑재-발리 한티재는 당초 계획대로 다음 구간으로 답사키로 하고...

그 바람에, 다음 날 비교적 짧은 구간에 부담을 던 대원 몇몇은, 대장을 위로
방문, 같이 어우러져 곡주에 흠뻑 젖었으니, 그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토요일 오후 6시 부산 동래 지하철역에서 집결하여 출발한다.
근 2달만의 답사산행이다. 현을과 병천을 구서와 양산에서 태우고 고속도로가
사고로 막힌다하여 35번 국도로 진행하다가, 양산 내원사 입구 용연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여기서 차량이동중 먹고 마실 먹거리등을 준비하고...
이 때 준비한 하북막걸리의 맛은 일품이었다.

이번 구간의 산행 출발점은 36번 국도상에 있는 고개인 답운치이다.
7번 국도로 동해안을 북상하다가, 울진에서 불영계곡을 타고
현동,봉화로 연결되는 36번 도로를 따라 오르면 닿는 곳이다.
말 그대로 '구름을 밟는 고개'라는 곳......

7번 국도를 진행하다가 항상 그러하듯, 화진휴게소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잔씩을 마시며 동해바다를 가슴으로 맞이한다. 보름 하루전이라 거의
제 몸을 다 키운 달은, 밝기 만큼이나 차가움으로 더욱 우리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요즈음 오징어가 대풍이라는데, 오징어잡이 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밤바다는 너무나 조용하다.

23:40 36번 국도 답운치에서 울진쪽으로 약 5분거리의 도로변에 차를
주차할 수있는 곳이 있고, 이 도로변의 계곡 바로 위에 야영하기에 안성
맞춤인 아주 좋은 공간이 있다. 이 공간 바로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다만 지난번 지나오며 볼 때와는 달리 화단을 조성하려는 듯,
흰색의 굵은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설치하고 짧은 밤을
그냥 보낼 수 없는냥 빙 둘러 앉아, 밤의 끝자락을 술잔과 함께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밀레니엄이니, 새천년이니 하며 호들갑스럽게 희망에 들떠 맞이한 이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너무 빨리 지나간듯한 올해에 대해 아쉬운 것은
없었다. 다만 아직까지 무언인 가에 체한 듯 개운해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서 씁쓸한 실망감 만을 느낄 따름이다.

다른 때 보다 술을 적게 가져간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는 더욱 차가와지고, 내일 '흐리거나 비'라는 일기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오늘밤 내내 달과 별이 맑다.

02:00 아쉬움을 접고 취침에 들어가다.

나. 아름다운 오솔길의 마루금....

06:00 현을이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눈치보며 미적거리면서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왠일인지 칼같이 일어나는 대장도 그대로 누워있다.
조금 있으니 현을이 '행님'하며 정색을 하며 부르는데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온은 영하를 살짝 넘겼으나 엄청 춥다.

아침 출발 시간을 조금이나마 당겨보려고 부산히 움직였건만 출발시간은
여전히 비슷하다. 어제밤, 아니 오늘 새벽 취침전에 휘발유 버너를 챙기지
않고 바깥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고무박킹이 얼어 오그라들어 펌핑이
잘 되지 않고 그냥 헐렁거린다. 이런! 낭패를 당했다.
안전불감증.. 여기서도 문제다. 혹한기에는 배터리 관리도 마찬가지.
외부에 노출시키지 말고 호주머니에 넣어 보관함이 좋을 것이다.

오늘 코스는 비교적 짧은 편이라 될 수 있으면 점심은 하산해서 먹기로
하고 간단히 행동식 김밥을 1인당 두개씩만 가져가기로 한다. 병천이 준비하는
김밥의 내용물은 답사 횟수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있고 다양해진다.

아침식사후 짐을 정리하고 답운치 출발지점으로 차량이동을 한다.
하늘은 어제와 달리 회색빛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고, 쌀쌀한 날씨에 금방
눈발이라도 날릴 것 같다.

09:18 답운치에서 스틱을 모으고 구호를 외친 후 이번 구간 산행을 시작
한다. 답운치를 출발하여 오르는 산길은 아주 길이 잘 나있다.
약 2개월여 지나는 사이 황홀했던 숲속의 색은 어두운 회색톤으로 너무나도
변해 있었고, 잔뜩 찌푸린 대기와 어우러져 '황량함'이란 말이 절로 떠 올리
게 한다. 하지만 겨울산의 황량함이란 연초록 봄의 보호막이 아닌가!
이 처연한 황량함도 우리는 정겨운 마음으로 가슴에 담는다.
오르다보면 금방 좌측으로 헬기장이 나온다. 저 멀리 오른쪽(서쪽) 산자락
으로 임도를 내었는지 9부 능선이 허옇게 그어져 있다.

오늘 답사구간은 말하자면 통고산 구간이다.
통고산은 아름다운 불영계곡과 왕피천을 품고 있고, 또 이 산자락의 동쪽에
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며, 이 곳 통고산만을 산행
목적지로 삼아 많은 등산객들이 찾기도 하는, 이 쪽 정맥의 산 치고는 사람
들의 발길이 비교적 잦은 곳이다. 이번 정맥구간의 진행은 답운치에서
오르며 줄곧 동쪽으로 치우친 동남쪽으로 진행하다가 통고산에 닿은 뒤,
다시 서쪽으로 치우친 서남쪽으로 남하하게 된다.
이번 코스가 걸쳐있는 행정구역은 대부분이 경북 울진군 서면이다.
다만 산행의 종료지점인 애매랑재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닿는 사전마을은
봉화군 소천면의 남회룡리에 속하는 곳이다.

울진군 서면은 울진군에서 가장 너른 면적을 보유하고 있으나, 인구는
가장 적은 지역이다.(98년말 현재인구 2,709명 울진군 총인구 68,426명)
그 만큼 산간지역이 많은 곳이다.

이제 제법 추워진 날씨에 서릿발이 제법 높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다.
동계복장으로 중무장하였더니 걸으면 땀이나고, 쉬면 금새 추워진다.
혹한기 산행은 땀을 흘리지 않을 정도로 걸으라고 하지만, 일정에 쫓기는
우리에게는 교본대로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항상 기본에 충실
하여야함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숲길 사이로 길은 너무나 잘 나있다.
이때 까지 걸은 정맥의 마루금길 중 가장 너르고 오르기도 수월했다.

그리고 이 곳 산길 주위에는 아름드리 적송이 많으며, 그 소나무와 어우러진
참나무숲은 아주 정갈하다.
이따금 낮고 여린 철쭉가지에 연두빛 애벌레집이 매달려있는데, 그 풍선처럼
생긴 모습과 생존의 방법, 그리고 온통 회색의 세상에 푸른빛을 내는 그
자체도 신비롭다. 그리고 누군가 말한다. '저렇게 눈에 띠면 위험할텐데...'

그리고 주먹만한 집에 구슬이 촘촘이 들어앉아 있는 열매를 지닌 참옻나무를
처음으로 보게 된다.

10:00 낮은 봉우리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낙엽이 너무 푹신푹신하다.
다른 산자락보다 소나무가 많기는 하지만 역시 개체수는 참나무가 훨씬 많다.
쭉쭉 뻗은 갈참나무, 아직 키가 작고 매끈한 수피를 지닌 상수리나무등등.
마루금길에 깔려있는 수많은 낙엽은 전부 갈색의 참나무 류의 이파리들이다.

겨우살이, 또 다른 말로 기생목...
큰 참나무의 옆으로 뻗은 가지위에는 예외없이 초록의 겨우살이가 엄청 많이
자리잡고 있다. 참나무의 생명이나 생장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겨우살이가 자리잡은 나무가지는 나중에 결국 죽어버린다고 한다.
이것은 겨우살이의 집요한 약탈일까? 아니면 참나무의 한없는 베품일까?

우측 전방 정맥의 가지능선으로 조림한듯한 적송군락지가 시원스럽게 보인다.
황장목 또는 춘양목이라고 하는 이 적송은 울진군의 郡木으로 지정되어 있다.
무차별 벌목을 하기 전만해도 이곳 울진에는 울창한 적송숲이 많았다고 한다.
마루금 좌측 통고산휴양림 부근에는 지금도 아주 오래된 적송군락지가 있다고
하는데, 이 곳 마루금길 좌우에도 군락지는 아니지만 크고 아름다운 적송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따금씩 아주 가는 빗방울이 뜬다.

10:50 여태까지의 길과는 다르게 비교적 급한 경사길을 올라 약 900고지의
능선에 이르는데, 스틱을 디디는 땅이 아주 딱딱하게 얼어있다.
약 147' 방향으로 통고산 정상이 보인다. 우측 산자락은 아주 완만한 사면
으로 넓게 드리워져 있고, 그 깊은 골짜기에서는 아주 세찬 바람이 일고있다.

가끔씩 시야가 트일때 끝없이 드리워지는 산자락을 보며, 우리가 사는 주위에
산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산속에 우리가 산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갖게된다.

11:25 여기서도 임도를 만난다. 절개한 사면을 올라 마루금길을 진행하면
우측의 급사면 깊은 산자락따라 나있는 임도가 조금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별모양을 그리듯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는 곳도 있다. 이렇게 좌충우돌 산자락을
비집고 들어가며 나 있는 임도는 서쪽 저 멀리로 뱀꼬리처럼 사라진다.
이곳에서 약 10여분 진행하면 또 좌측 산자락으로 임도가 나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도 보이는데, 이 길은 통고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이
라고 한다.

11:57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난다. 아마도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길인가보다.
모처럼 중년의 부부 산행객을 만나다. 벌써 정상에 갔다 내려오는 모양이다.

12:15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초소와 통신중계탑이 있는
통고산 정상이다(1.067M). 가는 빗방울은 좁쌀보다 작은 싸락눈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곳의 정상 표지석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신선한 감명을 준다.
2M 높이의 자연석으로 세워져있는 정상표주석(標柱石)의 석판에 음각되어 있는
내용을 옮겨본다.

'이 산은 서면 쌍전리에 위치한 해발 1067M의 백두대간 낙동정맥으로 산세는
유심웅장하다. 전설에 의하면 부족국가시대 실직국의 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겨
이 산을 넘으면서 통곡하였다하여 통곡산으로 부르다가 그 후 통고산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산의 동쪽에는 진덕왕 5년 의상대사가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
과 비슷하다하여 이름지어 불리워지고 있는 천축산이 있고 산기슭에는 그 당시
창건한 불영사가 있으며 하류에는 불영계곡이 있다. 이 標柱石은....中略.....
세우다 1998. 11.23 울진군수'

표지석이나 표시석이 아니라 흔하지 않게 표주석이라 표현되어있다.
담당하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표현한 문구나 또 석주가 서 있는
모습을 미루어보아 산을 무척 사랑하고 아시는 분 같았다. 정맥길을 사랑하고
또 답사중에 있는 우리로서는 정말 귀하고도 반가운 일이다.

아직도 아무런 생각없이 '태백산맥이 흐르는..'운운하며 적혀있는 글귀를 보며
분통을 터뜨릴 때와는 얼마나 기분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이 곳에서 조촐하나마 산제를 지낸다.
간단히 간식을 꺼내 먹고 주위를 조망하는데 유일하게 서남쪽으로만 하늘이
열려, 그 곳에 우뚝 솟아있는 일월산만이 잘 조망될 뿐이다.
낯선 이방인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음이 불만인냥 까마귀 일가족이 연신
시끄럽게 짖어대고 있다. 정상 옆의 통신중계탑은 언양 신불산의 그것과 비슷
한게 최근에 설치된 것 같다.

낙동정맥답사후 이 곳에서 처음으로 단체산행객을 만나다.

12:45 통고산 정상을 출발한다. 이제 바로 애매랑재까지 하산길이다.
초소와 중계소를 지나 마루금길을 진행하면 이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의 왕피리 방향으로 정맥길이 열려있다. 왼쪽길은 통고산 하산길이다.

러셀!
평평한 마루금길에 쌓인, 눈이 아닌 무릎까지 오는 낙엽을 러셀하며 걷는다.
일부러 더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낙엽을 헤쳐 걷는다. 듣기에도 상쾌하다.
하산길은 표고 약 900M 남짓한 봉우리 서너개를 오르내리는 길이나 그리 힘들
지는 않다. 다만 간혹 마루금의 급사면을 돌아갈때 쌓인 낙엽이 미끄러워
걸음에 조심하여야한다.

13:17 또 다시 임도를 지난다. 우측 계곡에서 매서운 칼바람이 볼을 때린다.
북서쪽의 바람은 역시 차가웁다. 쟈켓의 후드를 덮어쓴다.
마루금의 산길 오른쪽으로 매우 너른 지형이 만들어지는 것이 보인다.
산줄기가 합쳐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앞 봉우리에서 정맥의 오른쪽으로
지능선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 오르막길을 올라 봉우리에
이르면 아주 오래된 헬기장이 나오는데, 이미 헬기장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한지
오래된 듯하다. 13:39

이제 약하게 흩날리던 비가 역시 가늘지만 진눈깨비로 변해서 내린다.
오늘은 술을 준비하지 않았는데(없어서), 정주의 배낭에서 비장의 강장주가
소형 페트병에 담겨져 나온다. 그리고 커다란 공포의 복숭아 통조림이 현을의
작은 배낭에서 또 튀어나와 모두를 놀라게한다.

그 때 나는 생각나는 말이 있어 픽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 때까지
'酒種''淸濁'불문만 강조하고 있었는데 한가지가 더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晝夜'불문...
대낮에 한모금씩 돌리고 남은 술을 나 혼자 다 마시면서 생각나는 말이었다.

酒種不問
淸濁不問
晝夜不問

삼각점이 있을 937.7봉을 지도정치해 보는데 빤히 보이는 저 앞의 봉우리가
맞을 것 같다. 이곳 헬기장의 고도도 그와 비슷한듯 하다.
비교적 오랜 휴식후 다시 출발을 하는데, 방향은 내륙쪽인 정서에 가깝다.
고도 900M 남짓한 봉우리들을 지나는 이곳 정맥의 길은 크게 특징있는 길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정갈한 참나무숲은 품위를 잃지 않고 있었고,
부드러운 길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마루금길 진행내내 우리는 그냥 걷는게 아니라, 엄청나게 널브러져
있는 낙엽길을 소리내며 차면서 걸었다.
937.7봉인듯한 곳에서 삼각점을 찾아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이후로도 비슷한 고도의 봉우리를 2군데 가량 더 지나온다.

14:39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내려오며 우연히 뒤 돌아본 우측의 가지능선
산자락은 은빛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많은 자작나무가 서있었다. 아마도
조림한 듯한데 아직은 가느다란 몸으로 흡사 도열해 있는 듯 서있다.
이제 길은 너르나 급사면 하산길이 많이 나온다.

15:00 약 5분간 급경사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다. 아! 낙동정맥이여, 애매랑재여....

15:20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환상이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뒤돌아
선채 뒤에 오는 일행을 쳐다보고 있다. '조형, 이거 이래도 되는거가!''???'

참혹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큰 도로를 내려고함이었을까, 좌우로 족히
50M 정도는 될성싶은 높이로 고개의 산자락을 잘라내었고, 고개길은 파헤쳐
져 있다. 워낙 절개면이 높다보니 사면을 3단의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파헤쳐 지며 퍼낸 흙으로 푸석푸석한 급사면을 내려오는데 길이 미끄럽다.
무심한 포크레인이 '생태계 파괴는 이렇게 하는 것이야'하며 위세를 떨치듯
고갯길에 서 있다. 한마디로 이 때까지 정맥길에 나있는 임도는 그야말로
가소로운 수준이었다. 고개로 내려온 나는 비감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한
동안 뒤돌아 서 있었다. 사전마을로 내려오는 길 좌우로는 아직도 시멘트
냄새가 풀풀나는 콘크리트로 타설한 벽이 서 있었고, 길을 따라 나있는 작은
개울은 공사가 없는 날이었지만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전마을을 지나 남회룡분교에 도착하였으나 차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연결 끝에 도착한 영목의 이야기로는 남회룡초등교에서 서남쪽으로 31번
국도와 연결되는 길이 교통지도상에는 잘 나있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
비포장 좁은 길로 갈 수가 없었다 한다.
하는 수 없이 다시 36번 국도와 만나는 옥방쪽으로 되돌아와 울진쪽으로
운행을 하여야 한다. 엄청나게 먼거리를 우회하여야 하는 것이다.
후일 지나가는 팀도 이 길의 운행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감이 좋을 것이다.

옥방에서 방향을 틀어 36번 국도로 접어드는 커브길 조금 지난 곳에
플래카드가 자랑스러운 듯 걸려있다. '축 환경보호 우수상 수상 울진군 서면'
씁쓸했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울진에 닿아 7번 국도로 돌아오는 길 한참동안 잠이 들었었다.
국도변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나오는데, 동해에 달이 떠 오른다.
오늘이 보름이다. 커다란 달이 동해에 떠 오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고요한 수면위로 오르는 달을 보며 현을이 한마디 한다.
' 동해바다가 꼭 호수 같네요...'

그 아름답게 달빛에 젖은 동해바다를 보면서도 쉬이 감흥이 일지 않는다.

양산에 도착후 병천의 제의로 맥주 한잔씩을 걸치게 되는데 그제서야 조금
마음이 돌아오는 듯하다. 아니 술기운에 지나간 우울한 것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하였든 다음 구간에 그 참담한 현장을 다시 만나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갈 일이다. 아름다운 정맥의 길을 보게해준 대가치고는
너무나 비싼 값을 치른 것 같다.

아! 애매랑재여....

(기록/정리 두류/조용섭)
출처 : 지리산 산길따라
글쓴이 : 두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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