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山 情 無 限

월간 마운틴 4월호, 지리산 콩으로 청국장 빚는...

 

 

지리산 콩으로 청국장 빚는 ‘지리산 두류실’ 대표 조용섭 씨.

“정직한 식품 개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연일 봄소식을 알리는 남녘의 지리산자락에 청국장 꽃이 피었다. 지리산의 흙과 바람과 물을 먹고 자란 콩을 무농약 볏짚을 솎아 황토방에서 발효한 정직한 청국장이다. 2010년 농업기술센터가 선정한 ‘농촌건강장수마을’ 전북 남원시 주생면 대지마을에 자리한 ‘지리산 두류실(www.jirisankong.com)’은 지리산꾼이자 한국산악회 회원 조용섭(57) 씨가 설립한 소규모 식품회사다.

 

부산은행과 롯데캐피탈 지점장 등을 지내며 반백년 이상 부산에서 살아온 조씨가 전라도 땅에 터를 잡은 이유는 오직 하나, 지리산 때문이다. 동아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선배들의 꼬임에 빠져 포터로 따라가 가혹한 신고식을 치른 것을 시작으로 벌써 36년째, 산행 횟수를 가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2004~2006년엔 서울신문 주말판에 ‘조용섭의 산으路’를 연재하며 전국 각지의 산을 두루 섭렵하기도 했다.

 

“두류(豆類)는 콩을 총칭하는 말이자 지리산의 또 다른 이름(頭流山)이기도 합니다. 우리 몸에 이로워 ‘우주의 식품’으로 불리는 콩과 ‘생명의 산’ ‘어머니의 산’인 지리산은 같은 음운을 가졌습니다. 거기에다 골짜기를 뜻하는 우리말 ‘실’을 붙여 이름을 지었지요.”

 

1년간의 귀농 준비 후 전남 구례군 산동면을 거쳐 남원에 정착한 조용섭 씨는 지리산 두류실 외에도 영농조합법인 ‘남원에서 왔어요’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짧게는 4년, 길게는 20년이 넘은 귀농인 6명이 합심해 만든 이 영농법인은 북상 중인 봄꽃소식처럼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매월 둘째 넷째 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담역 구내 판매부스에서 소비자들과 직거래 장터도 운영할 정도.

 

높이와 산길에 한정된 지리산 산행 탈피를 위해 순천대대학원 사학과를 수료한 그이는 우담 정시한(1625~1707)이 170여일간 지리산에 머물며 쓴 <<산중일기>>를 토대로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근래엔 (사)숲길의 청탁으로 지리산둘레길 남원~함양구간 스토리텔링 작업도 하고 있다. 두 발로 걸어보고, 원고를 쓰고, 일부는 목소리 녹음까지 했다. 직접 농사 짓고, 제조하고, 연구하고, 판매하고, 공부까지 하느라 한시도 쉴 틈이 없는 사람이다.

조씨의 향후 목표는 딱 두 가지다. 청국장을 주력 상품으로 다양한 대용식을 내놓는 것과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유산 공부에 매진해 학위를 따는 것. 이미 남원시에서 주최한 허브식품개발업체 공모에 선정돼 산행과 도보여행자를 위한 휴대용 레저상품세트(허브청국장)를 출시한 것은 물론 서울 수도권 소재의 대형 한의원에 탈모 치료 보조식품을 납품 중이다. 

“청국장은 고대시대부터 군인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인데다 체내 흡수력도 좋아 체력소모가 많은 산행 행동식으로 유용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환갑이 넘은 나이에 강원도 원주에서부터 함양을 지나 지리산에 든 우담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신(新)산중일기>>를 쓰고 싶기도 하고요.”

 

작업실 한쪽에는 낡고 때묻은 그이의 등산장비들이 즐비하다. 예전처럼 산속을 누비기는 힘들지만 지리산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삶의 터전이 되었다. 적어도 조용섭 씨에게는 높이로 판단할 수 없는 또 다른 산인 셈이다.  

 

월간 <<마운틴>> 2012년 4월호 중에서 ---

[글, 사진/황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