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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엉터리 녹색을 걷어 치워라

by 지리산 마실 2009. 1. 24.

[국제칼럼] 엉터리 '녹색'을 걷어치워라 /최원열
'녹색'포장 뜯으니 오히려 환경파괴…청계천과 4대강 본질적으로 달라
[국제신문]
 
'변화와 개혁'의 주인공 버락 오바마가 마침내 대통령 당선인 신분에서 미국 대통령으로 우뚝 섰다. 사상 초유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세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이지만 심기가 편치 않을 것이다. 질식 직전인 경제에 인공호흡을 해서라도 일단 살려놔야 할 절박한 사정이 그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연설을 보면 이러한 분위기가 피부로 다가온다. '국가'라는 단어가 18분30초 동안 무려 15번이나 되풀이됐고 '아메리카'가 9번, '피플'과 '일'이 각각 8번씩 등장했다. 여기서 국가, 아메리카, 피플, 일은 모두 국가 위기 극복으로 귀결된다.

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경제 살리기와 사회 개혁이다. 이 중 경제 현안은 단연 일순위로 오바마는 금융과 자동차산업 회생, 일자리 창출(경기 부양) 해법 찾기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있다. 바로 '녹색 산업'이다. 대체에너지 개발 등 고효율, 친환경적인 녹색 산업 성장을 통해 일자리 창출은 물론 경제 회생까지 겨냥하는 것이 '오바마 노믹스'의 근간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산업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오바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공정성을 자동차 산업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적해 왔다. 그는 한국을 몰아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국 업체들에게도 고강도 주문을 하고 있다. "고효율 자동차를 만들어라. 그렇지 않으면 지원은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각 관공서와 학교내 전열시스템 등도 모두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대대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업에 실직자들을 대거 고용함으로써 일자리도 늘리고 경기도 호전시키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에코플레이션(기후 변화에 따른 비용 상승)'을 철저히 막아 경제를 악순환에서 선순환으로 바로잡겠다는 오바마의 식견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미국 따라가기' 선수인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을 터. 오바마에 뒤질세라 '녹색 뉴딜'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라는 것이 가관이다. 지금까지 발표했던 것들 중 환경 관련 정책만 짜깁기해서 덜렁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한쪽, 저 보고서에서 한쪽 떼어내 포장한 뒤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여 놓고 '국가 비전'이란다. 쉽게 말해 4대 강 정비(토목)공사를 통해 일당 받는 인부들을 대거 투입하겠다는 발상이다. 이게 어디 환경친화적인 녹색사업인가. 4대 강은 청계천이 아니다. 강에 시멘트벽을 쌓고 배를 띄우기 위해 준설하겠다는 발상을 녹색 산업으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놀랍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이런 말을 했다. "녹색 뉴딜을 일용직 가장 실직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대응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녹색 뉴딜이 '실업병'에 대한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하고 있는 정책도 '녹색'과 정반대로 환경파괴적인 것들이 많다. '낙동강 죽이기'와 '지리산 뭉개기' 발표를 보면 이명박 행정부가 과연 미래 성장동력으로 녹색 산업을 받아들였는지 의심스럽다. 낙동강 중상류 지역 위천 공단 조성계획을 어렵사리 저지시켰더니 이번엔 대구국가과학산업단지로 슬그머니 이름을 바꿔 다시 들고 나왔다. 지금 발암물질인 다이옥산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바람에 취수 중단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는데도 앞으로 전문업체에 폐수처리를 위탁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거리를 정상권까지 연장시켜 주겠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탐방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게 이유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까지 '산림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며 기를 쓰고 저지해 왔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 고작 케이블카 거리 연장이었다니 기가 막힌다. 생태계는 비가역적이다.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 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은 기본 상식이 아닌가.

이 정부의 '프렌들리 리더십'은 철저히 경제 논리에 경도돼 있다. 그것도 오직 한 가지, 개발 논리에만 집중돼 있다. 오바마의 '유연하면서도 포용하는 리더십'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은 '녹색'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도 아니며, 환경친화적 개발은 더더욱 아니다. 녹색의 탈을 쓴 '환경파괴주의'일 뿐이다. 엉터리 녹색을 걷어치워라. 정부는 이제라도 진정한 녹색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논설위원 cwyeol@kookje.co.kr  입력: 200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