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김종해(1941~ )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지상을 헤매던 울적한 사람, 발자국을 되짚어 집으로 갑니다.
노을이 생을 바꿔줄 듯 말듯 붉은 입술로 사람의 이름을 핥고,
새가 지나간 자리에는 별이 몸을 풀며 어깨를 굽어봅니다.
이것이 따뜻함이라면 사라져가는 것은 흔적으로 아름다운가요.
안녕히라고 인사하는 사람들 저녁에 섞여, 마지막 짧은 저녁에
섞여 어둠이여, 아름다운가요. 돌아가는 사람들 뒷덜미에 쓸쓸함이
묻어 있거든 생은 그래도 아름답다고 별이여, 말해줄 것이지요.
사라지고, 떠나고, 짧은 것들 저녁에서 밤으로 가면, 작아서 아름다운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적막한 저녁의 자리에 꽃자리를 깝니다.
<박주택·시인> /중앙일보
* * * * * * * * * *
지난 주말, 지리산 산골마을에 들었던 날, 지독한 장염을 앓았다.
거의 밤을 새우며 뒷간을 들락거렸다.
그러던 중 어느 때인가, 마치 창자를 끊는 듯한 아픔에 아랫배를
안고 몸을 웅크리면서도 하늘을 보며 웃고 있던 적이 있었다.
투명한 듯한 짙은 푸른 빛의 별판이 서쪽에서 밀려오는 구름에
순식간에 완전히 잠겨버리는 그 찰나를 마주했던 것이다.
짧거나 작거나... 그런 개념은 잘 모르겠다.
그저 '아! 먹구름에 하늘이 잠기는 모습도 이렇듯 숨막히는
아름다움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내게 다가온 일을 소중하게
여길 따름이다.
내게 다가온 그런 아름다움이 시인의 감성과 어딘가 닿아있는
듯해 막무가내로 시를 옮겼다.
하긴, 또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가.../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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