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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역사]

현존 최고 비로자나불

by 지리산 마실 2007. 3. 15.
역사 속의 지리산(12)현존 최고 비로자나불
천왕봉을 바라보며 ‘평화 신라’ 를 노래하다


역사의 장면 1. 1959년 한 청년이 지리산 정상에서 웅장한 불상을 발견하게 된다. 지게로 짊어지고 내려오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불상의 풍채를 깎으면서 내려와 산청 내원사 양지바른 곳에 모셨다고 한다. (보물 제 1021호)

   
▲ 산청 내원사 석조비로자나불은 정각에 들어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돼 있다. 사진은 강우방 교수가 비로자나불이 정각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리 찍어뒀던 것이다. 내원사로 옮겨지면서 깎여 정면에서 보면 무릎이 낮아 보이고 측면에서 보면 등이 편평해 보인다.

역사의 장면 2. 1980년 부산시립박물관은 납석제사리함을 입수하게 된다. 사리함 그 겉면에는 비로자나불을 조성하게 된 내력이 이두체 한문으로 적혀 있었다. ‘신라 혜공왕 2년(766)에 비로자나불을 조성해 모시다’(국보 233호)

서기 766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돼 있는 납석제사리함. 박경원 선생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이 사리함이 산청 지리산 내원사에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 대좌의 중대석에서 출토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석조비로자나불은 비로소 766년 조성된 현존 최고의 비로자나불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 고대 조각사와 사상사의 숙원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현재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내원사 정각에 모셔져 있다.

766년 지리산 중턱엡현재 산청 내원사 정각에 자리

지권인을 맺고 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정면에서 보면 무릎이 낮아 보이고 측면에서 보면 등이 편평해 보인다. 내원사로 옮겨지면서 깎였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쓸려 세부표현은 명확하지 않지만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얼굴은 약간 갸름하고 풍만하며, 은은한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다. 벌어진 어깨와 넓은 가슴은 과장되지 않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잘록한 허리와 양 팔 사이에 옷주름이 꼼꼼하게 표현돼 있어 섬세함이 돋보인다. 상체의 폭과 두 무릎의 폭의 비례가 조화를 이뤄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비로자나가 ‘어디나 비추는 광명’이란 의미가 있는 것처럼, 풍만한 몸체와 섬세한 얼굴윤곽은 햇살이 비출 때 더욱 더 잘 드러난다. 하지만 최근 이 비로자나불이 정각 안에 모셔지면서 그 웅장함은 느낄 수가 없게 됐다.

비로자나불이 처음 모셔져 있던 곳은 지리산 중턱에 있는 석남암사터로, 멀리 천왕봉이 보이는 천하의 절경이었다고 전해진다. 766년 통일신라가 가장 왕성할 때, 왜 경주가 아닌 지리산 중턱에 현존 최고 여래 비로자나불을 만든 것일까.

/도움말·사진 강우방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경남도민일보 박종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