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현판과 주련' 경복궁편 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란 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하고 신도시 건설 총책임자로 삼봉 정도전(鄭道傳)을 임명한다. 이에 삼봉은 신왕조 정궁을 건립하고는 그 이름으로 경복궁(景福宮)을 추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이 분부를 받잡고 삼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시경(詩經) 주아(周雅) 편에 보이는 구절 즉, '술에 이미 취하고 덕(德)에 이미 배 부르니 군자께서는 만년토록 경복(景福)을 누리소서'라는 시를 외우면서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이름하기를 청하오니 전하와 자손께서는 만년 태평의 업(業)을 누리시고 사방 신민들이 길이 보고 느꼈으면 합니다."
'景'이라는 글자를 후한시대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빛남이다"(光也)라고 풀고, 그 이전 전한시대 무렵에 나온 다른 사전인 이아(爾雅)에서는 "크다"(大也)라고 풀었으니, '경복'은 글자 그대로는 태양과 같이 빛나는 복, 혹은 크나큰 복이라는 뜻을 담은 셈이다.
이 경복궁에는 4대문이 있어 남쪽을 광화문(光化門), 동쪽을 건춘문(建春門), 서쪽을 영추문(迎秋門), 북쪽을 현무문(玄武門)이라 한다. 이 또한 경복궁이 그런 것처럼 다 유래와 의미가 있다.
이 4대문들은 음양오행설에 따라 남쪽은 이글거리는 태양과 연동해 '光'을 취했으며, 동쪽은 신록과 생명을 상징한다 해서 계절로는 봄(春)을 배당하고, 그 반대편 서쪽은 낙엽이 지고 생명이 다하기 시작하는 무렵이라 해서 계절로는 가을(秋)을 배열했다.
남쪽에 대비되어 북쪽은 음기가 가장 강하며, 완전한 죽음에 가깝기 때문에 색깔로는 검정(玄)을 취하고, 그런 검은 색의 대명사로 뱀과 거북의 합성 동물 정도에 해당하는 현무(玄武)를 대문 이름으로 삼았다.
경복궁과 같은 궁궐은 물론이고 조선시대 사대부 집에서도 기둥 같은 데다 각종 문구를 아로새긴 현판을 세로로 걸어놓곤 했다. 이런 세로 간판을 주련(柱聯)이라 한다. 기둥(柱)에다 써 붙인 대구가 되는 글귀라는 뜻이다. 그래서 거의 예외없이 주련은 쌍을 이루기 마련이며, 대부분이 운율을 맞춘 시구가 동원된다.
요즘은 워낙 한글전용 교육이 강조되는 까닭에 이런 주련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웬만한 한문실력을 갖췄다 해도 흘려 쓴 초서나 행서가 대부분이라 글자 판독조차 쉽지 않다.
현판이나 주련은 근현대화 과정에서 급격히 훼손됐다. 건물 자체가 몽땅 사라지면서 함께 멸실되거나, 겨우 살아남았다 해도 문화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면서 도난 피해도 많았다. 이런 극심한 피해에서 경복궁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다행히 함화당(咸和堂)에는 온전히 쌍으로 살아남은 주련이 있다.
"평생에 배웠으니 무엇 때문이었나? (平生所學爲何事)
후세에 뉘 있어 이 마음 알아주리" (後世有人知此心)
이는 평생 공부한 경륜이 지금은 쓰이고 못한다는 한탄과 함께 그래도 후세에는 누군가 알아줄 사람이 있으리란 위안을 표현한 것이다. 출전은 남송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육유(陸遊.1125-1210)의 시 '서쪽 창문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西窓獨酌)이다.
이처럼 모질게 살아남은 경복궁 현판과 주련에 대한 종합 보고서가 최근 문화재청에서 '궁궐의 현판과 주련1'이라는 제목으로 도록 형태로 나왔다.
문화재청이 연세대 철학과 이광호 교수팀에 의뢰해 실시한 종합실태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해서 완성한 것이다.
이번 경복궁 편을 '1'이라 한 까닭은 앞으로 앞으로 창덕궁과 덕수궁 편이 계속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272쪽.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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