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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文化 이야기

비뚜로 보는 문화재<54>곡성 태안사 능파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54) 전남 곡성 태안사 능파각

지붕 씌운 누교… 악귀 막는 역할

전남 곡성은 섬진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고장이지요. 읍내에서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한동안 달리면 두물머리에 자리잡은 전라선의 압록역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이번에는 보성강을 끼고 달리는 강변 드라이브 코스가 이어지지요.

이렇게 4㎞ 정도를 가면 왼쪽으로 보성강을 가로지르는 태안교가 나타나는데, 신라 말 선불교를 일으켜 세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의 종찰인 태안사로 가는 길목이 되지요. 해발 753.7m의 동리산 들머리에 있는 절은 이곳에서 6㎞쯤 더 들어가야 합니다.

태안사는 6·25전쟁을 겪으며 많은 피해를 입었음에도 동리산문을 연 적인선사 혜철(785∼861)과 제2대 조사인 광자대사 윤다(864∼945)의 부도 및 탑비를 비롯하여 볼 만한 문화유산이 적지 않습니다. 계곡에 놓인 능파각(凌波閣)은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태안사의 이름을 알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지요.

능파각은 다리 위에 누각을 세운 누교(樓橋)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누교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백제 무왕(재위 600∼641)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전북 익산 미륵사터에서는 아래는 석조 다리이고, 위는 목로 회랑으로 추정되는 유구가 조사되었습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경주의 월정교는 누교로 복원하고자 현재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붕이 있는 다리는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도 등장합니다.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 있는 로즈만 다리와 할리웰 다리라고 하지요. 하지만 능파각이 미국의 지붕달린 다리와 다른 것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전각으로도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능파각은 천왕문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일반적으로 천왕문은 절의 일주문 안쪽에 세워지지요.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에는 금강역사상을 모시는 것이 보통입니다. 악귀나 부정한 기운이 통과할 수 없으니 그 내부는 청정도량이 됩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다리는 사바세계와 피안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경계를 상징한다고 하지요. 아래로 동리산 계곡의 맑디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내려가는 능파각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속세에서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장소라는 상징성 또한 부여되어 있습니다. 능파교에 금강역사를 모시지는 않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천왕문에 해당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보아도 좋겠지요.

하지만 지금 능파교가 있는 곳은 일주문 밖이어서 천왕문의 상징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주변에 충혼탑과 연못을 조성하면서 능파각 밖에 있던 일주문을 안으로 옮겨놓은 결과라고 합니다.

능파각은 신라 문성왕 12년(850) 혜철이 창건했다는 속설이 전하고 있지요. 하지만 좀 더 믿을 만한 ‘태안사사적기’는 영조 13년(1737)에 지은 뒤 1923년까지 4차례에 걸쳐 중수했다고 적었습니다. 능파각은 1996년에도 해체하여 썩은 재목을 교체하고 다시 세우는 보수작업이 이루어졌지요. 이렇듯 보수가 잦은 것은 폭우가 내리면 계곡이 넘치기 일쑤이고, 평소에도 습기가 목재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임보 시인은 ‘능파각’에서 ‘개울 위에 다락을 세웠으니 누각(樓閣)이요/개울 위에 다리를 놓았으니 교량(橋梁)이요/개울 위에 절문을 얹었으니 산문(山門)이다/동리산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고 읊었습니다. 짤막한 시에서 능파각의 성격까지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리산이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오동나무가 우거진 숲’이라는 뜻이라고 하니 능파각을 ‘계곡 물 위에 뜬 봉황의 집’이라고 표현했나 봅니다.

이제 자동차를 타고 태안사를 찾으면 능파각을 건너지 않고도 곧바로 절 마당에 닿습니다. 하지만 조금 걷더라도 계곡의 운치를 느끼면서 시인이 ‘봉황의 집’이라고 감탄한 능파각에 들러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