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歷史.文化 이야기

정비석 作 '소설 명성왕후'는 폐기처분해야

정비석作 '소설 명성황후'는 폐기처분해야"
국사학자 이태진 '한국사 시민강좌'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국민의 바른 역사의식 확립을 위해 이 소설(정비석作 '소설 명성황후)은 독서계로부터 폐기 처분 선고를 받는 것이 옳다"
학술원 회원이자 서울대 인문대학장으로 재직 중인 국사학자 이태진 교수가 최근 발간된 반년간 학술지 '한국사 시민강좌(일조각 펴냄)' 제40호에서 소설가 정비석(1991년 작고)씨의 작품 '소설 명성황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태진 교수는 '역사 소설 속의 명성황후 이미지'라는 글을 통해 1980년 출간된 '소설 명성황후(출간당시 제목 '민비')'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기구치 겐조(菊池謙讓)가 자신의 소설 '대원군전'에서 묘사한 명성황후의 부정적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구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으며 1910년 명성황후 시해의 책임을 흥선대원군에게 떠넘길 목적으로 '대원군전'을 출간한 인물이다.

   그는 서원철폐와 세도정치 종식 등의 업적을 세운 대원군을 '건설적 영웅'으로,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대원군의 업적을 무너뜨린 명성황후를 '파괴적 영웅'으로 내세워 두 사람 간 대립구도를 왜곡ㆍ강조했다.

   둘 사이에 대립구도를 설명하기 위해 기구치는 수많은 허구를 끼워넣었다. 그는 대원군이 명성황후에게 아이가 생기기도 전에 궁인 이씨 소생의 왕자 이선을 세자로 책봉하려하자 황후가 적의를 품게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원군이 왕자 선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전하는 바가 없다. 더구나 궁중의 어른인 조대비가 살아있는 가운데 대원군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태진 교수는 "조선왕실의 후계자 선정 전통으로 볼 때 왕비가 20세도 되지 않았는데 궁인 소생을 원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완화군을 둘러싼 왕비와 대원군의 갈등관계는 기구치의 완전한 픽션"이라고 단정한다.

   기구치는 또 모든 것을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대결구도로 몰고가기 위해 1873년 대원군의 실정을 논핵한 최익현, 홍재학 등을 왕비당으로 규정하고 왕비의 지시에 따라 탄핵상소를 올린 것처럼 서술했다.

   그러나 최익현은 왕비의 지시와는 별도로 이미 1868년 대원군이 벌인 토목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홍재학이 탄핵상소를 올렸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구치가 왜곡ㆍ강조한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원한관계,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고종의 모습은 오랫동안 고종시대사의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이 교수는 "이런 인식이 유포되는 과정에는 소설이 큰 역할을 했다"며 "기구치의 역사상을 충실하게 활용한 소설이 정비석의 '소설 명성황후'"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정비석의 "소설 명성황후'는 기구치의 대원군전을 텍스트로 삼았기 때문에 대원군과 '민비'의 대립관계를 기본구도로 삼았다. 그런데 단순활용에 그치지 않고 소설 주인공에게 능동성을 부여한 결과 '민비'는 포악한 여성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정비석은 명성황후를 태어날 때부터 억세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태생적으로 시아버지에게 질 수 없는 인간형으로 그렸다는 것.

   정비석은 또 상궁 장씨의 하문을 도려내고 복술쟁이 이유인을 비롯해 이경하의 서자 이범진, 좌영사 이조연 등과 불륜관계를 맺는 등 잔인하고 음탕한 짓을 서슴지 않은 인물로 명성황후를 묘사했다.

   이 교수는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 참으로 잔인하다"며 "작가가 서양 궁정 소설에 등장하는 문란한 성관계를 도입해 근거 없는 성관계를 설정한 것은 무례하기 그지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작가가 고종실록을 한 번이라도 펼쳐 봤다면 이런 만화를 그려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 정도의 역사소설은 논외로 돌리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이런 종류의 독서물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이 담은 잡다한 스토리는 현재도 수많은 청소년용 만화의 텍스트가 되고 있으며 2001년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명성황후'의 줄거리도 이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국민의 바른 역사의식 확립을 위해 이 소설은 독서계로부터 폐기처분 선고를 받는 것이 옳다"고 역설했다.

   한편 한국사 시민강좌 제41호는 '역사와 소설, 드라마'를 주제로 한 특집을 마련하고 '고구려 드라마 열풍의 허와 실(여호규ㆍ한국외대)', '역사 소설에 그려진 이순신(이민웅ㆍ해군사관학교)', '소설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양동안ㆍ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의 글을 실었다.

   kind3@yna.co.kr
(끝)

[07/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