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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우리풀.꽃♧나무

질경이,길섶 잡초라고 가벼이 여기지 마시라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질경이
길섶 잡초라 하기엔 너무 청아한 자태

 




인식에 따라 가치가 변한다. 때로는 가치가 변하여 인식이 바뀌는 것이 더 적합한
경우도 있다. 실체는 언제나 그대로이지만 새롭게 인식되면서 가치도 의미도 모두
바뀌곤 하는 것이다. 세상사가 모두 그러하듯 이 이치는 식물의 세상에도 적용된
다. 질경이에게도 그러하다.

정말 잡초처럼, 아니 실제로 잡초로 살아온 식물이 질경이가 아닌가 싶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이러저러하게 질경이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속속 나오곤 하는데도 사
람들은 길에 지천인 질경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잡초에 불과하다.

질경이는 질경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집안에는 털질경이나 창질경
이 같은 식물이 있기는 하지만 보기가 그리 흔하지는 않으니 전문적으로 식물공
부를 하는 이가 아니라면 특별히 관심을 둘 필요는 별로 없다.


나란히맥을 한 달걀 모양의 잎은 아랫부분이 긴 잎자루까지 넓게 흘러 서로 감싸
안으며 뿌리 근처에 둥글게 모여 방석처럼 퍼져 달린다. 밟아도 밟아도 견딜 수 있
도록.

꽃은 6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여름 내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흰색의 아주 자잘
한 꽃들이 둥근 막대기처럼 모여 달린다. 수술이 길게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꽃이
누렇게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달린다.


익은 열매는 옆으로 뚜껑이 열리듯 벌어져 그 유명한 질경이의 씨앗 차전자(車前
子)가 6~8개 정도 나온다. 검은색이다.

질경이의 생약 이름은 바로 이 씨앗 이름이다. 말 그대로 수레바퀴 앞에서도 살 수
있는 씨앗 혹은 식물이다. 자라는 곳이 풀 속이 아니라 길가, 논둑, 들판, 마당이나
숲 가장자리의 길이다. 질경이가 이런 곳에 살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선택과 적응
을 해온 결과이다.

안락한 숲에서 길로 나온 것이다. 길은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많고, 땅도 딱딱하
고 척박하지만, 대신 경쟁자가 없어 햇볕과 땅을 충분히 차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
다.

물론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질경이는 적절히 변신했다. 사람들의 발자국에
견딜 수 있도록 스스로 잎은 땅바닥에 납작하게 퍼져 있고 줄기와 더불어 질기고
유연하여 꺾이지 않으면서 그대로 누워 있을 수 있다. 씨앗은 작지만 납작하여 아
무리 밟혀도 찌그러지지 않고 바닥에 잘 퍼진다.

무엇보다도 땅 속의 습기가 전달되면 끈적거리게 되어 사람들의 신발이나 차의
타이어 사이에 잘 달라붙어 멀리멀리 퍼져나가게 된다.

질경이의 이런 특성을 요즈음 사람들은 다이어트식품으로 이용한다. 주변의 수분
을 많이 흡수하여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을 준다는 것이며 또한 여기에 식이섬유
를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예로부터는 신장에 매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특히 나이 드신 여성들은 이
질경이를 많이 찾는다. 나물로 데쳐 먹어도 맛이 좋다. 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
워지고, 위에도 좋다는 기록도 있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날 때도 질경이차가 도움
이 된다.

길가의 하찮은 잡초인 질경이도 알고 보면 사람을 이롭게 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