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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7)조희룡의 '호산외기'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7) 조희룡이 지은 전기집 ‘호산외기’ 사마천은 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본기(本紀)·표(表)·서(書)·세가(世家)·열전(列傳)의 다섯 가지 체제를 채택했다. 본기는 제왕들의 이야기이고, 표는 도표 형식으로 사건을 기록한 것이며, 서는 제도를 서..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6)中人文學②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서당 훈장인 최경흠을 중심으로 모였던 직하시사(稷下詩社)는 자신들의 창작활동보다도 중인 선배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공로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 개인의 시집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몇백 편 정도의 작품 분량이 있어..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6)中人文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6) 후세에 전해진 중인들의 문학 서당 훈장인 최경흠을 중심으로 모였던 직하시사(稷下詩社)는 자신들의 창작활동보다도 중인 선배들의 생애와 업적을 정리한 공로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한 개인의 시집을 출판하려면 적어도 몇백 편 정도의 작품 분량이 있어..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5)문학동인 벽오사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5) 조희룡이 만든 중인 문학동인 ‘벽오사’ 조희룡(1789∼1866)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많은 중인 친구들과 사귀었다. 그런 교우관계를 통해서 보고 들은 선배 중인 42명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56세에 저술한 ‘호산외기(壺山外記)’인데,3년 뒤에 다시 새로운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4)화가 조희룡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4) 직업적 화가이기를 거부한 화가 조희룡 신분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제자는 여러 갈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사대부들도 많았지만 중인 쪽에 특별히 많았다. 이상적 같은 역관 제자는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 주었으며,..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3)화가 최북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3) ‘왕실의 광대‘ 되기를 거부했던 화가 중인 화가 김명국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러나 그의 후배 최북(崔北·1712∼1786)은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리지 않았다. 신분차별이 심했던 조선 후기를 예술가의 자존심 ..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76)남한산성과 강화도 [병자호란 다시 읽기] (76) 남한산성과 강화도 남한산성은 천험(天險)의 요새였다. 성곽의 가장 높은 누대에서는 도성과 살곶이(箭串場)가 한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인조가 들어갔던 무렵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기온이 몹시 떨어져 성으로 오르는 길이 온통 얼어 붙었다. 청군의 선봉이 제 아무리 ‘강철..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2)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2)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관 홍순언 문관인 정사(正使)는 공식적인 국서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역관은 배후에서 절충하는 일을 맡았다. 절충하는 과정에는 유창한 외국어가 기본이었지만, 때로는 금품도 오가고, 여러 해 동안 오가며 맺어둔 인맥..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