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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60개화파의 鼻祖(비조) 오경석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6) 개화파의 비조(鼻祖) 오경석 우리나라 개화파의 비조(鼻祖)로 흔히 오경석·유대치·박규수 세 사람을 꼽는다. 역관 오경석(吳慶錫·1831∼1879)은 북경을 열세 차례나 드나들며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에 시달리는 청나라의 모습을 보고 자주적으로 개화해야 한다..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4)서울에 中人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4) 서울에 중인은 얼마나 살았을까 조선후기 전문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인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았다. 지방에는 중인이 맡을 관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신분은 호적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데, 하버드대학의 와그너 교수가 1663년에 작성된 서울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3)동래부순절도 그린 장교 변박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3) ‘동래부순절도’ 그린 장교 변박 부산(동래)은 일본(쓰시마)과 맞닿아 있어, 국방상 중요한 곳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외교와 무역이 이뤄지던 왜관(倭館)이 부산에 있었고, 일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동래읍성과 부산진성도 역시 부산에 있었다.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22)화원 김명국의 일본 활약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2) 화원 김명국의 일본 활약상 조정에서는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면서 조선의 문물을 과시하기 위해 솜씨가 뛰어난 사자관(寫字官)이나 화원을 선발하였다. 중국사행의 경우 사자관이 긴요한 인원이 아니라고 하여 감원시키거나, 무명의 화원들을 보냈던 것과 좋..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1)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1) ‘신필(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전문지식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원이다. 시인들은 한자를 아는 일본 지식인에게만 관심을 끌었지만, 화원은 한자에 조예가 깊지 않은 부자 상인이나 무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20)馬才人과 馬上才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0)마재인(馬才人)과 마상재(馬上才)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에서 소개한 통신사 수행원의 열댓가지 기예 가운데 하나가 마상재(馬上才)이다. 마상재란 말 위에서 하는 재주를 말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총쏘기, 달리는 말의 좌우로 등을 넘기, 말 위에 누워 달리..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19)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18세기 일본에서 쇼군(將軍)이 정권을 세습하면서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박지원은 역관 이언진의 전기 ‘우상전’ 첫머리에서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준비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신사 일행을 접..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18)한어 譯官 이언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8) 한어 역관 이언진의 활약상 일본에서 문인들에게 환대를 받고 돌아온 역관 이언진(李彦 ·1740∼1766)이 연암 박지원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보냈다.“오직 이 사람만은 나를 알아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이건 오농..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