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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병자호란 이야기(79)남한산성의 나날들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79) 남한산성의 나날들 Ⅲ 왕세자를 보내지 않으면 화친은 꿈도 꾸지 말라는 청군 지휘부의 요구가 있은 직후 성안의 분위기는 복잡했다. 여전히 화친을 시도해야 한다는 부류와 화친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최후의 결전을 벌여야 한다는 부류로 나뉘었다. 결단은 쉽지 않았다.1636..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5)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5) 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세계가 둥글다는 지식이 보편화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양에서는 세계일주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세계일주에 나선 귀족들이 많았으며, 누가 더 빨리 세계일주를 하는지 내기를 걸기도 했다. 그런 소재로 1870년대에 쓴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44)역관의 어려움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4) 역관의 어려움, 외국어 교육과 험난한 뱃길 외국어를 배우려면 해당 외국에 유학하여 배우거나, 국내에서 배우더라도 해당 외국인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쇄국정책을 펼쳤던 조선시대에는 학생을 외국에 보내지도 않았고, 외국인 교사를 초빙하지..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3)조선 최고 부자 변승업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3) 조선 최고의 부자 변승업과 그 후손 박학다식하기로 이름난 육당 최남선은 조선 최고의 갑부를 변승업이라고 했다. 변승업(卞承業·1623∼1709)은 일본어 역관인데,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중개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 그는 연암 박지원의 소설 ‘..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42)백두산 정계비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2) 백두산 정계비를 세운 역관 김지남 조선시대 과학자는 대부분 중인 출신이었다. 양반 출신의 과학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관청이 자주 바뀌다 보니 평생 과학 연구만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남병철·병길 같은 천문학자 집안 말고는, 중인 집안에서나 대대로 과학.. 더보기
병자호란 다시 읽기(78)남한산성의 나날들② [병자호란 다시 읽기] (78) 남한산성의 나날들 Ⅱ 남한산성을 공략하려는 청군 지휘부의 계책은 치밀했다. 그들은 성 주변에 참호를 파고 목책을 설치했다. 이미 1631년 홍타이지가 명의 대릉하성(大凌河城)을 공략할 때 사용했던 전술이었다. 성을 외부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 그야말로 고사(枯死)시키..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9)숭록대부에 오른 神醫 허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9)숭록대부까지 오른 ‘神醫’ 약을 쓰는 의원과 별도로 침의를 양성하자는 주장은 세종시대 전의감(典醫監) 책임자였던 황자후가 처음 내세웠다.“병을 속히 고치는 데는 침이나 뜸만 한 것이 없습니다. 의원으로서 침을 놓고 뜸을 뜨는 구멍을 밝게 알면 한 푼..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38)침술의 대가 허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8) 침술의 대가 허임 의원은 전형적인 중인의 직업이지만, 모두 중인은 아니다. 중인이 형성되기 전인 조선 전기에는 물론 선비들이 의원 활동을 했으며, 중인층이 형성된 조선 중기 이후에도 선비 출신의 의원이 많았다. 이들을 유의(儒醫)라고 하였다.‘동의보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