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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미안하다 콩들아 - 초보농부 이야기

 

[무성한 잎으로 매우 튼실하게 잘 자라준 콩]

 

미안하다 콩들아

 

종자를 뿌리고 난 다음의 콩작목의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순(筍)지르기라 할 수 있다.
순지르기는 콩의 본엽(本葉)이 7매 정도가 되도록 자랐을 때 콩 대의 윗부분 1~3마디를 잘라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콩 수확에 치명적인 결과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쓰러짐(倒伏)은 약 60% 줄여 주고 수확량도 약 6%

높일 수 있으며 콩 종자의 충실도도 높여준다고 한다.(콩 종자 100개의 무게 비교시 약 0.6g 증가)

 

7월은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레저용 제품 세트(허브청국장(환), 허브스프레이, 허브폼클렌징, 허브마스크

시트팩)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고, 대부분의 작업들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터라 그 쪽으로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디자인 및 포장용기 결정, 화장품류 생산업체와의 납품계약 완료 등의 가장 중요한 사안들이 마무리되면서,

일은 제반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나름대로 속속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도록 의욕적이고 희망적인 생각과

몸짓으로 동분서주하는 내게 늘 어두운 생각의 그림자가 있었으니 바로 콩밭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욱 소리에 따라 큰다고 누군가가 말했듯이 밭에 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여다보고 예정된 작업을

하여야하건만, 초보농부인 나는 늘 시기를 놓쳐 허둥거리면서 가까스로 해내곤 한다(물론 작목 교범에 나와있는

정확한 작업시기를 기준으로 해서이다). 결국 그 일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주변 마을 동지들에게 sos를 쳐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콩밭은 나의 진정성을 알아주었는지 마을 어른들이 '시범포'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무성한 초록의 바다를 이루며 나의 콩들은 잘 커나갔다. 그러던 중 지난 7월 17일, 콩 작목반 기록을 남기기

위해 잠깐 짬을 내어 콩밭 사진을 찍던 나는 우리 콩들에게도 드디어 순을 자를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신제품 출시로 인해 두 형제가 정신없이 바빴고, 또 여름 장마가 계속되면서 맞이한 7월 마지막

주말에 콩밭을 찾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부드러운 연록의 잎들이 예쁘게 물결을 이루던 콩밭이 어느새 진록의

밀림으로 바뀌어 있었고, 무성한 잎들 아래로는 벌써 꽃들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장마 속에서도 마침 금요일부터는 날이 개었다. 토요일부터 만사를 제쳐두고 찜통 무더위의 대기 속, 콩의 바다로

뛰어들어가 혼신의 몸짓으로 순지르기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염복 더위에 대낮에 작업을 하다가는 '일도 못하는

사람이 정신없는 짓 한다'는 핀잔을 들을까봐 저녁 시간에 마을 작목반 동지 형수씨의 지도 대로 대나무 회초리와 낫을

들고 콩밭으로 들어갔다. 순지르기에 회초리를 사용하는 것은 콩농사를 많이 짓는 이웃동네 순창지역에서 작업하는 것을

벤치마킹한 것인데, 마치 펜싱을 하듯 회초리를 휘둘러 콩대의 윗부분을 가격해서 순을 잘라내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작업은 쉽지않았다. 이미 크게 진록의 모습으로 튼실하게 자란 콩대는 나의 서툰 매질에 맞섰고, 주위의 콩들도 나의 팔의

행동반경에 슬슬 제약을 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땀이 비오듯이 내렸고, 손에 물집도 생길 정도로 회초리를 휘둘렀다.

(멀리서 보면 마치 검객처럼 보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몸짓은 이미 순지르기라는 중요한

목표는 상실되어갔다. 유감스럽게도 말을 잘 듣지않는 콩들에게 나는 그냥 무의미한 폭력을 가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순간 콩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 시간도 채 못넘기고 다음 날 아침을 기약하며 철수를 하였다.

(어두워져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약 3시간 여의 작업을 하고 고개를 들어본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내로 작업을

완료하여야 하건만 일의 진도가 너무도 더딘 것이다. 아직도 '콩작목의 생력화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하는 초보농부

답지않은 푸념을 하며 나는 콩밭을 빠져나와 작목반 동지 형수씨에게로 갔다. 물론 SOS를 치기 위함이다. 근데 이 양반,

나의 이런 과정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옆에 있는 이장님과 함께 나를 놀리며 웃는다. 예초기 사용, 인부 모집, 정글도

사용 등, 순지르기 작업에 대한 갖가지 의견들이 나오던 도중, 기막힌 의견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장님에 의해서 나왔다.

바로 전정기의 사용이다. 예초기 사용이 위험해서 사용을 극구 만류하던 형수씨도 찬성이다. 어딘가로 전화해서 빌린 이

전정기로 인해 7마지기의 콩밭 순지르기는 약 3시간 반만에 마칠 수 있었다.

 

이 글을 이리 장황하게 쓰고자 한 일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계실 줄은 모르겠으나, 전정기가 예초기보다 훨씬 가볍고 또

사용하기에도 그리 크게 위험하지 않아 콩순지르기의 생력화에 큰 도움이 되는 기계임을 나같은 초보농부들에게 알리고자

함에 뜻이 있음이다. 

 

 

             [전정기]

 

 

             [정글도]

 

지난 주말의 수고로움으로 8월을 맞이함이 더욱 희망적임을 느끼며 글을 줄인다.

 

 

2011. 8.3

남원에서
두류/조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