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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방/숲속의 글마당

[詩]한 시인의 가을

♧한 시인의 가을

임명수/시인


누군가 알 수 없는 이로부터
부름을 받고 있다.
그가 누군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그에게로 갈 수 없다
풀벌레가 울고 있다.
나는 그 부름에 답하기 위해 시를 쓴다.
아름답고 슬픈 몇 소절의 시를 위해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있다
어쩌면 홀로 깨어있는 청청한 이 시간
머나먼 별나라 돌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단풍나무 잎들의 붉은 발자국 소리 가까이 들린다.
풀벌레가 울고 있다.
누군가 애타게 나를 부르고 있는 듯 해서
창문을 열면
빈 마당귀에 죽음이 적막처럼 서있다.
어쩌면 머나먼 별 나라에서는
죽음은 친절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녹슨 램프 등을 닦고 있을 것이다.
정녕 사람이 그리운 이 가을 밤에
푸른 별빛처럼 그가 창밖에 와 있다.
죽음을 호상하는 풀벌레 울음.
내 슬픈 영혼이 무너지는 숲을
그에게 주고 싶다.

[시집 '새와 두더지와 시인이 나누는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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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임명수:

부산대 국문과 졸업
문덕수,신동집 선생 추천<시문학>천료
엔솔로지 <남부의 시> 창간주간
<목마>,<신서정시그룹> 동인활동
부산시인협회 본상 수상
시집 '나만이 아는 숲이 있다'외 3권 상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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