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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異山

■산중일기<상> 5.16일 ~ 5.29일[5]

 

[현대불교www.buddhapia.com/기획연재/정시한의 산중일기/'부디엔스'님의 글]

 

5월

16일 맑았다
흰 구름이 골짜기에 가득했다. <심경> 수편 26장을 읽고 <선경> 10여 장을 보았다. 처음으로 행소를 하였다. 보정이 돌아와서 푸른 매실을 주었는데 시어서 입에 댈 수 없었다. 설종과 근삼이 보리를 구하려고 마을로 내려갔다. 빨래를 하고 앞 시냇가에서 발을 씻었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함양의 관인 자만(自滿)과 군자사의 승려 영우(靈祐), 은탁(隱卓)이 와서 함양태수 서찰과 쌀 3두, 소두(小豆) 5승, 미싯가루 소찬 등의 음식물을 전해 주었다. 밤에 많은 비가 내렸다.

17일 새벽에 일어났다 밤중부터 새벽까지 많은 비가 종일 내렸다
시냇물이 불어서 반석이 물에 잠겼다. 폭포수가 날리고 물결이 부서지니, 소리가 우레 같아서 골짜기가 진동하였다. 그 여파가 안개처럼 뿌옇더니 위아래가 아득하고 지척에서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런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라고 하였다. 몸과 마음이 가쁜하지가 않았다.
아침에 답장을 썼다. 아침 식사 후에 한동안 잠을 잤다. 일어난 뒤에도 몸이 거뜬하지가 않았다. <심경> 10장과 <선경> 두어 장을 보고 김생의 서체 10여 글자를 익혔다. 근삼이 비를 무릅쓰고 돌아왔다. 설종도 돌아왔다. 자만, 영우, 은탁 등이 저녁 때에 비를 무릅쓰고 떠나 금강대로 갔다.

18일 흐리다가 비가 오고 가끔 안개가 끼었다
저녁부터 밤까지 많은 비가 내렸다. <심경> 30장을 보고 <선경> 20여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청언이 와서 보고 갔다.

19일 하루종일 흐리고 비가 내렸다
안개가 자욱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심경> 21장을 보고 <선경> 1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명학이 와서 보고 갔다. 저녁 무렵에 잠을 잤다. 연일 비가 내리고 안개가 사람을 침해하니 사람들이 모두 고단해 하였다. 그 가운데 나는 특히 심하였다. 희안이 비로소 침의(枕衣)를 꿰맸다. 장차 빨래를 하려고 그런 것이다.

20일 가끔 흐리다가 개었다. 저녁에는 비가 내렸다
<심경> 32장을 보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행소를 시작하였다. 명학이 와서 보고 갔다.

21일
일찍 일어나서 새벽까지 있었다. 기운이 없어서 낮에 잠을 잤다. 가끔 맑고 흐렸다. <심경> 15장을 보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통견과 해철이 솔잎차를 가지고 와서 주고 갔다.

22일 흐렸다
사시에 비가 조금 내렸다. <심경> 10장을 읽고 <선경> 1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60여 글자를 익혔다. 금강대의 노승 경천이 맛좋은 청장(淸醬) 1병과 송피전초(松皮全椒), 양색좌반(兩色佐飯)을 주고 갔다. 경험방(經驗方)과 침약(鍼藥) 등의 5, 6가지를 적어놓았다.

23일 흐렸다
<심경> 27장을 보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오향대의 승려 명학이 와서 보고 갔다.

24일 가끔 맑고 흐렸다
<심경> 두어 장을 보고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천주암의 승려 회인(懷認)이 죽순과 오이와 잣 등의 물건을 가져다 주고 갔다. 호열의 본명이 바로 회인이었는데 지금 개명한 것이라고 하였다. 침의를 빨아서 풀을 먹여 마르지 않았는데 희안이 승려 간병차로 저녁에 금강대로 갔다.

25일 흐리고 바람이 불다가 비가 조금 내렸다
오후에 비가 어두워질 때까지 내렸다. 아침 식사 후에 방안 청소를 하였다. 희안이 금강대에서 돌아왔다. <심경> 24장에서 끝편까지 보고 또 첫권부터 6장까지 보았다.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근삼이 마을에 내려갔다. 발을 씻었다. 명학이 침의의 터진 곳을 꿰매어 주었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저녁을 먹은 뒤에 금강대에서 병든 승려가 죽었다. 통견이 부고를 전하고 희안과 보정을 불러갔다. 저물녁에 입이와 함양 관아의 하인 안국(安國)과 승려 두 명이 와서 고향 편지와 함양 태수의 서찰을 전해 주었다. 셋째 아들 도진(道晉)이의 병이 아직도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심사가 불안하였다. 밤에는 편한 잠을 자지 못하였다.

함양태수가 대미(大米) 2두, 점미(粘米) 1두, 콩 2두, 청(淸) 2승, 누룩 3장, 필묵(筆墨)과 간폭(簡幅) 등의 물건을 보내왔다. 저녁에 침의를 빨아놓고 잤다.

26일 흐리고 비가 내렸다
답장을 써서 함양 관인편에 부쳤다. 두 사람의 승려도 돌아갔다. 연곡사 승통 여인(如印)이 천오(天悟), 덕홍(德泓), 근달(勤達) 등 네 사람을 데리고 와서 안부를 묻고 쌀과 수십 개의 청과(靑瓜)를 제공하였는데, 청과는 받고 쌀은 돌려보냈다. 이 암자의 승려들이 나무를 베어 죽은 승려를 화장하려고 모두 금강대로 갔다. 저녁을 먹기 전에 화장을 마치고 모두 돌아왔다. 고향에 편지를 썼다. 저녁에 상탁(床卓), 촉대(燭臺), 향로(香爐) 등의 물품을 침방(枕房)에 설치하였다.

27일
밤에 일어나 새벽까지 촛불을 밝혀놓은 다음, 정화수를 떠다 놓고 거애(擧哀)와 재배(再拜)를 하였다. 그리고 앉아서 새벽을 지샜다. 이날은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내렸다. 고향 편지와 여러 곳에 답장을 입이(立伊)에게 부쳤다. 오후에 비를 무릅쓰고 돌아왔다. <심경> 11장을 보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28일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내렸다
저녁에는 천둥이 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심경> 15장을 보고 <선경> 2장을 보았다. 서체 60여 글자를 익혔다. 버무린 목맥병(木麥餠) 3승을 여러 승려들과 꿀에 타서 나누어 먹었다.

29일 새벽에는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심경> 15장을 보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명학이 비를 무릅쓰고 일찍 와서 혼자서 빈집에 비가 새는 곳을 다시 덮었다. 방과 뜰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희안이 저녁에 삼일암에 갔다가 어제 빚은 단술을 가져와서 저녁에 승려들과 나누어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