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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異山

■산중일기<상>윤4. 1일~ 4.15일[2]

[정시한의 산중일기/현대불교(www.buddapia.com)/부디엔스 님]

 

윤4월

1일 가끔 맑고 흐림.
아침을 먹은 뒤에 견성암(見性菴)에 다녀왔다. 다리에 힘을 조절하고자 해서였다.

군자사(君子寺)의 승려 선보(善寶)가 보러와서 해의(海衣)를 조금 주고 갔다. 함양 태수가 서찰로 안부를 묻고 막장(末醬) 3두와 포육(脯肉)과 석수어(石首魚) 등의 음식물을 보내왔다.

2일 흐림.
오후에 시작한 비가 하루종일 내리고 밤에까지 내렸다. 재차 견성암에 다녀왔다. 지자암(止慈菴)의 승려 사철(思哲)과 무주암(無主菴)의 승려 설청(雪淸)이 와서 보고 갔다.

3일 흐리고 가끔 비가 내리다가 그쳤다.
견성암에 다녀왔다. 실상사(實相寺) 승려 처일(處一)이 와서 보았다. 자징(自澄)도 와서 보고 갔다. 밀납에 찌꺼기를 제거하였다.

4일 맑았다.
견성암(見性菴)에 다녀왔다. 처일이 돌아갔다. 능연(能衍)이 이곳에 와서 마음을 다하여 음식 수발을 하였다. 10여리나 되는 마을을 다니면서 쑥과 미나리 등의 채소를 구해오고 올벼쌀을 구해다가 저녁밥을 잘 지어 주니,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군자사(君子寺)의 불존 승려 전이와 실상사(實相寺) 수좌 승려 계오가 와서 보았다. 계오가 식기와 사발을 주었다. 저녁에 모두 갔다.

5일 가끔 맑고 흐렸다.
오후에는 우레 소리가 들렸다. 아침을 먹은 뒤에 상고대암(上高臺菴)으로 가는데 돌길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었다. 녹음이 짙어가고 쇠잔한 꽃이 간간이 석대의 여기저기에 피어 있었다. 석대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산들이 빙 둘러있고 마을과 사찰 암자가 눈 밑에 펼쳐져 있었다. 큰 냇물이 굽이쳐 흐르고 구름과 연기가 명멸하는데 풍경이 끝이 없었다.
수좌 승려인 보인(寶仁)은 현재 가사를 만들고 있었는데 곶감을 대접하였다. 한동안 구경하고 있노라니 무주암(無主菴)의 수좌인 신순(信淳)이 와서 보고 방사(房舍)를 도배 중이라고 말하였다. 또 소나무로 처마를 만들고 있는 중이니 속히 오라고 하였다. 신순과 함께 천인암으로 돌아가니 노승 유일(裕日)과 불전의 승려 추우(秋祐)가 저녁을 정갈하게 준비하였다. 마음이 매우 편치 않았다.

6일 맑다.
재차 견성암(見性菴)에 다녀 왔다. 경수(庚宿)가 무주암(無主菴)에 다녀왔다.

7일 맑다. 세찬 바람이 불었다.
재차 견성암에 다녀왔다. 군자사(君子寺)의 승려 성문(性文)과 법안(法眼)이 와서 보고 가면서 미나리 나물을 주고 갔다.

8일 가끔 맑고 흐렸다.
승임(勝稔)이 아침을 잘 차렸다. 아침을 먹은 뒤에 무주암(無主菴)의 승려 설청(雪淸) 및 경수(庚宿) 등과 함께 옮겨왔다. 무주암에 올라가 저녁을 먹은 뒤에 사철(思哲) 수좌와 지자대(止慈臺)에 올라가 한동안 앉았다가 돌아와서 윤판옥(輪板屋)에서 유숙하였다. 사철 수좌도 함께 유숙하였다.

9일 흐리고 가끔 맑았다.
아침식사 후에 삼응(三應)과 함께 묘적암(妙寂菴)으로 가서 잠시 앉았다가 사철(思哲), 삼응 등과 함께 서동(西洞)을 찾아가니, 오래된 암자터가 석대 위에 있었다. 좌우에 서 있는 바위가 특이하였고 동쪽에 석천(石泉)이 있었다. 산세가 바람을 끌어앉은 듯하여 두어 칸의 집을 지을 만하였고 맑은 기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참으로 도인이 수련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하겠다.
신순(信淳) 수좌를 무주암(無主菴)에서 불러다가 칸 수를 헤아려 보고 두 곳에 있는 샘을 깨끗이 청소하고 더 파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샘물이 부족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경수(庚宿)가 군자사(君子寺)에서 해송자(海松子)를 사왔다. 절에 온 승려가 미나리 두 묶음을 보내 왔다. 저녁을 먹은 뒤에 또 지자암의 동대에 갔다가 사철 수좌와 함께 와서 유숙하였다.

10일 가끔 흐리고 맑았으며 바람이 불었다.
아침식사 후에 신순(信淳)과 함께 지자암(止慈菴)으로 갔다. 또 사철(思哲)을 데리고 서대가 있던 터로 가서 우물을 파고 한도안 앉아서 구경하다가 무주암(無主菴)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은 뒤에 설청(雪淸)과 함께 지자암에 다녀왔다. 사철이 와서 함께 유숙하였다.

11일
새벽 자시(子時) 초에 어떤 물건이 우레처럼 미방(未方)에서 솟구쳐 오르더니 끓는 물과 같기도 하고 용과 같기도 하고 횃불과 같기도 하였는데 창문이 훤해졌다가 사라지곤 하는 광경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였다. 축시(丑時)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없어졌다.
아침식사 후에 삼응(三應) 수좌와 함께 무량굴로 갔다. 또 묘적암(妙寂菴)으로 올라가면서 절터와 굴을 두루 보았다. 묘적암에 도착하여 사철(思哲)과 함께 잠시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무주암(無主菴)으로 돌아가니, 대략 10여리 쯤 되었다. 돌길이 매우 험하여 오르내리기가 무척 힘들었다. 진사 박세기(朴世基)가 와서 보았다. 그리고 함께 유숙하였다.

12일 가끔 맑고 흐렸다. 밤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
박진사가 돌아간다기에 묘적암(妙寂菴)까지 함께 가서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사철(思哲)과 함께 한동안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무주암(無主菴)으로 돌아오니, 함양 태수가 서찰과 시를 보내서 안부를 묻고 또 쌀 3두와 마른 석어 2속과 도미어(道味魚) 1마리와 명아주 10엽을 보내왔다. 장흥동에서 서찰을 보내왔는데, 서찰에는 도항(道恒)과 사신(思愼)의 서찰이 있었다. 여기에서 지난달 그믐 이전의 소식을 알고 나니 마음이 놓였다.
답장을 보냈다.

13일
새벽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 천지를 진동하였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사시 이후부터는 비가 더욱 심하게 내리고 바람도 멈추지 않았다. 초목을 모두 준비해 놓았는데 어두워진 뒤에 그쳤다. 암자로 옮겨가서 유숙하였다.

14일 가끔 맑고 흐렸다.
천인암의 승려 능연(能衍)과 추우(秋祐)와 지응(智應) 등이 와서 보고 갔다. 사철(思哲) 수좌도 와서 보고 갔다. 오후에 다시 윤판옥(輪板屋)으로 옮겨 가서 유숙하였다.

15일 흐림
아침식사 후에 자겸(自謙)이 돌아왔다. 서로 반가웠다. 이윽고 상고대암의 수좌 보인(寶仁)과 천인암의 승려 행련(幸聯)이 와서 보았다. 잠시동안 앉아서 대화를 나누다가 무주암(無主菴)에서 출발하여 여러 승려와 서로 작별하고 요열(了悅)과 경수(庚宿)를 데리고 무량굴(無量窟)에 도착하였다.

의철 수좌를 도솔암(兜率菴)으로 보내 방에 불을 지펴서 따뜻하게 해놓고 두타암(頭陀菴)으로 내려오도록 하였다. 노장 원혜(圓慧)와 석겸(釋謙)이 서로 영접하였다. 저녁식사 후에 그곳에서 유숙하였다. 요열은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