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先人들의 智異山

■산중일기<상> 5. 01일~ 5.15일[4]

5월

1일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였다. 아침 식사 후에 삼일암(三日菴)에 다녀왔다. 금류동과의 거리가 720보이므로 다녀온 거리를 합하면 1440보였다. 고향편지를 본 뒤로 화기(火氣)가 올라서 눈이 아프고 기운이 날이 갈수록 고르지 못하였다.
아침에 삼일암에 가서 오랫동안 낮잠을 자다가 돌아왔다. 눕고만 싶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생각만 하면 마음이 편치 못해서 장차 병이 날 것만 같았다. 억지로 회재(晦齋)의 '원조오잠(元朝五箴)'과 '입잠(立箴)' 두어 편을 읽고 <선경(仙經)>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金生)의 서체 100여자를 익혔다. 저녁 때에 눈이 더욱 어둡고 피곤한 것이 지난 밤보다 훨씬 심하였다. 마음을 안정하지 못하고 밤이 깊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2일 새벽에 비가 내리고 아침에 흐렸다. 식사 후에는 맑았다
잠명(箴銘) 12수를 두 번 읽고 <선경(仙經)> 한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200여자를 익혔다. 저녁을 먹은 뒤에 오향대(五香臺)를 다녀왔다.

3일 맑았다
잠명 12수를 두 번 읽고 <선경> 두어 장을 보고 김생의 서체 200여자를 썼다. 설종(雪宗)이 보리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삼일암의 승려 선혜가 와서 보고 갔다.

4일 맑았다
아침식사 후에 오향대를 다녀와서 잠명 10수를 두 번 읽고 <선경> 두어 장을 보고 김생의 서체 200여 글자를 익혔다. 근삼(勤三)과 새진이 돌아왔다. 앞 시냇가에서 발을 씻었다. 국기일(國忌日)이라서 행소(行素)를 하였다.

5일 맑았다
승려들이 제사를 지내기 전에 먼저 시식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서글퍼서 스스로 안정을 찾지 못하였다. 조금 늦게 잠명 16수를 두 번 읽었다. 금강대(金剛臺) 승려 경천(敬天)이 여러 가지 색의 떡과 나물을 가져다 주고 갔다.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연곡사(燕谷寺) 노승 학의(學儀)와 희감(希鑑)이 색깔이 있는 떡을 가지고 와서 오랫동안 앉았다가 갔다. 김생의 서체 60여 글자를 익혔다. 본암의 승려 희안(希眼), 근삼, 보정(普晶)이 불공차로 반야봉(般若峰)에 있는 무착대(無着臺)의 터에 갔다. 이 암자와의 거리는 20리쯤 된다고 하였다. 새진은 그의 집으로 가고 설종만 혼자 있었다.
오향대 승려 명학(明學) 해철이 와서 보고 갔다. 저녁부터 바람이 불어 밤에 편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6일 맑기도 하고 흐렸다
이천(伊川) 선생의 '시잠(視箴)'부터 진서산(眞西山)의 '야기잠(夜氣箴)'까지 11수를 두 번 읽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300여 글자를 익혔다. 오향대의 승려 청언(淸彦)과 거사 이상원(李尙元)이 와서 보고 갔다. 새진이 돌아왔다.

7일 가끔 맑았다가 흐리고 수시로 안개가 자욱하였다
오향대의 승려가 떡과 과일 및 밥을 보내와서 모두에게 먹도록 하였다. 이상원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오유청(吳幼淸)의 '이일잠(理一箴)'에서부터 정이천(程伊川)의 '안락재명(安樂齋銘)'까지 12수를 두 번 읽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200여 글자를 익혔다. 천주암(天柱菴)의 승려 호열(湖悅)이 왔다가 바로 가고 청언이 와서 성련(性聯)이 부친 편지 한 장을 보여 주었는데, 글씨와 필법이 모두 훌륭하였다.

8일 맑고 바람이 불었다
여여숙(呂與叔)의 '극기명(克己銘)'부터 초려(草廬)의 '자신명(自新銘)'까지 23수를 두 번 읽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를 100여 글자를 익혔다. 무주암(無主菴)의 수좌승 자겸이 찾아와서 서로 반가왔다. 또 전날 맡겼던 의복 잡물을 지고 왔다.
오향대의 승려 청언, 통견, 명학이 함께 와서 보고 갔다. 행소(行素)를 하였다.

9일 가끔 맑고 흐렸으며 바람이 불었다
<심경> 7, 8장을 보았다. 아침식사 후에 자겸대사와 함께 반석에 나가서 앉았다가 그대로 삼일암에 함께 가서 한동안 낮잠을 잤다. 밤에 빈대에게 시달려 불을 밝히고 두어 차례 잡았는데 편히 잠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폭포수 아래 앉아 있기도 하고 또 반석에 올라가 한동안 앉아 있다가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나니 희안, 보정, 근삼 등이 무착대에서 불공을 드린 후에 돌아왔다. <선경> 두어 장을 보고 김생의 서체 70여글자를 익혔다.

10일 흐리고 거센바람이 불었다 오후부터 시작하여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자겸이 돌아갔다. 금강대 승려 경천이 나물을 가지고 와서 주고 갔다. <심경> 9장을 보고 <선경> 두어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자를 익혔다.
저녁밥으로 처음 보리밥을 먹었다.

11일 새벽부터 가끔 비가 내리다가 멈추고 바람이 불었다
<심경> 10장을 보고 <선경> 10여장을 읽었다. 김생의 서체 100여 자를 익혔다. 처음으로 행소를 하였다. 밤마다 빈대를 잡았는데 많고 적은 것이 무상하여 완전히 없앨 기약이 없었다.

12일
새벽에 일어났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마음이 고달파서 안정을 취하지 못하였다. 흐리고 비가 오다가 멈추었다. 밤이 되어 <심경> 19장을 읽고 <선경> 10여 장을 보았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저녁을 먹은 뒤에 피곤해서 낮잠을 잤다. 객승 담언(曇彦)이 비를 무릅쓰고 왔다.

13일 가끔흐리다가 맑았다. 밤에 비가 내렸다
아침 식사 후에 객승이 떠났다. <심경> 19장을 읽고 <선경> 10장을 읽었다. 통견(通見)과 해철(海哲)이 와서 보고 갔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14일 안개가 자욱했다.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근삼의 승려 형인 필훈(必薰)과 호열이 왔다. <심경> 14장과 <선경> 20여 장을 읽었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필훈은 가고 호열이 소찬과 마른 밤을 마련해 주었다.

15일 흐리고 가끔 맑았다
새벽에 머리를 빗고 세수한 다음 가묘(家廟)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심경> 27장을 마져 읽고<선경> 16장을 읽었다. 통견이 와서 보고 갔다. 보정은 마을에 내려가고 호열도 갔다. 김생의 서체 100여 글자를 익혔다. 꿈에 어버이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