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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山 情 無 限

지당리 석불입상-밤마실 이야기

 

               [남원시 주생면 '지당리 석불입상']

 

#행복한 하루

어제 밤, 나의 '고양이 걸음 마을 밤마실'은 부득이 실시되지 못하였다.

 

마을을 나와 섬진강 상류인 '요천' 뚝방길을 따라 왕복 약 1시간 30여분 정도 걷는 이 밤의

산책을, 짖어대는 개(犬)들의 소란을 피하기 위해 살금살금 걷는다 하여, 언젠가부터 나는

'나의 고양이 걸음 밤마실'이라고 이름지었다.

 

가벼운 운동을 곁들인 이런 달밤의 체조같은 산책길에서는 마을 논밭 한복판에 서있는

석불입상, 논둑길과 뚝방길, 달맞이꽃, 배롱나무, 그리고 임무에 충실한 견공들을 만나며,

어떤 때는 요천에 드리워져 마치 반딧불이처럼 반짝이는 낚시찌도 만나고는 한다. 이런

소소한 풍경들을 손전등으로도 사용되는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담아 가벼운 글과 함께

'행복한 하루'라는 이름으로 웹공간에서 마무리 짓는데, 이제 시골생활에서의 내게는 꽤

바지란 떠는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제 그 기분 좋은 나의 일상을 멈추게 됨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뜬금

없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데 있다.

 

 

 

그제께 밤, 늘 그러하듯 가볍고 담담하게 페이스북, 동문밴드 등에 올린 글에 이런

답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 석불입상, 즉 돌부처 사진에 대한 질문들이다.)

1. 부산의 후배 - 선배님, 이게 뭡니까?

2. 인천의 친구 - 친구, 이기 뭐꼬?

3. 부산의 친구 - 친구야, 힘 좋게 생겼네. 든든하니 자네 하는 일 잘되겠다.

4. 그리고 심지어는 나만 보면 숨이 막히는 표정을 짓는 30대 초반의 아들도

-아부지, 점잖은 분이 뭐 이런 사진을 올리십니까?

등등...

황당했다. 이건 오해다. 음모에 가까운...

 

그래서 나는 어제 밤, 산책을 포기하고 우리 마을 부처님의 진면목을 알려 해명아닌 해명,

오해를 풀어야만 부처님께 죄를 짓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마실 시간을 마을의

석불입상 이야기를 쓰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어제는 여느 때와는 달리, 사진을 찍기에 조금이나마 빛이 남이있는 오후 7시 즈음,

마을 논밭 옆에 서있는 부처님을 만났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부처님은 '지당리 석물입상'이라는 존호를 갖고 계신다.

 

 

 

그나저나 보시라!

비록 본래의 절집은 잃어버렸으나, 소박하지만 번듯한 집과 명패를 지녔고, 이렇듯 멋진

광배를 지닌 부처님의 모습을!

 

 

 

불상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쪽 방향으로는 지리산 만복대에서 견불산-천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드리워져 있다. 이 산줄기에는 다름재, 숙성치, 밤재 등 남원과 구례,

곡성을 넘나드는 고개들이 아득히 길을 열고 있다.

 

논밭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서있는 마을 부처님은 고려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웃 만복사지가 그러하듯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지당리석불입상’은 언제쯤

역사 앞으로 걸어 나오실까.

 

 

 

어제 만나지 못한 뚝방길의 달맞이꽃도 이해해주리라.

 

2014. 8. 7

두류/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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