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22)화원 김명국의 일본 활약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2) 화원 김명국의 일본 활약상 조정에서는 통신사를 일본에 보내면서 조선의 문물을 과시하기 위해 솜씨가 뛰어난 사자관(寫字官)이나 화원을 선발하였다. 중국사행의 경우 사자관이 긴요한 인원이 아니라고 하여 감원시키거나, 무명의 화원들을 보냈던 것과 좋..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21)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1) ‘신필(神筆)의 화원’ 김명국 조선통신사의 수행원으로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전문지식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화원이다. 시인들은 한자를 아는 일본 지식인에게만 관심을 끌었지만, 화원은 한자에 조예가 깊지 않은 부자 상인이나 무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20)馬才人과 馬上才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20)마재인(馬才人)과 마상재(馬上才) 연암 박지원이 ‘우상전’에서 소개한 통신사 수행원의 열댓가지 기예 가운데 하나가 마상재(馬上才)이다. 마상재란 말 위에서 하는 재주를 말한다. 달리는 말 위에서 총쏘기, 달리는 말의 좌우로 등을 넘기, 말 위에 누워 달리..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19)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9) 장교 최천종 피살사건 18세기 일본에서 쇼군(將軍)이 정권을 세습하면서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를 맞을 준비를 했다. 박지원은 역관 이언진의 전기 ‘우상전’ 첫머리에서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준비하는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신사 일행을 접..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18)한어 譯官 이언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8) 한어 역관 이언진의 활약상 일본에서 문인들에게 환대를 받고 돌아온 역관 이언진(李彦 ·1740∼1766)이 연암 박지원에게 자신이 지은 시를 보냈다.“오직 이 사람만은 나를 알아 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시를 가지고 온 사람에게 “이건 오농..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17)조선의 일본어 譯官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7) 조선의 일본어 역관 조선시대의 외교정책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으니, 큰 나라 중국은 섬기고, 동등한 나라 일본과는 이웃으로 지낸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정기적으로 외교 사신을 보냈으며, 사신을 보낼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나라 사람들과 말이 통..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중인들(16)역관 명문 인동 장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6) 역관 명문 인동 장씨 지금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잡과(雜科) 합격자는 모두 6122명이다. 이 가운데 역과가 2976명, 의과가 1548명, 음양과가 865명, 율과가 733명 순이었다. 산학(算學)은 정조 즉위년(1756)부터 주학(籌學)이라고 했는데, 잡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취.. 더보기
조선후기 한양의 中人들(14)서예가 마성린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4) 서예가 마성린의 일생 임준원과 홍세태, 유찬홍 등의 낙사(洛社) 동인들 이후에도 인왕산과 필운대는 여전히 중인문화의 중심지였다. 위항시인들이 대개 한양성의 서쪽 인왕산에 많이 모여 서사(西社)라는 이름을 썼지만,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막연한 지칭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