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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역사]

화엄동천과 문수동천-地名에 나타난 불교⑥

[전편에서 계속]

 

▣地名에 나타난 한국불교/불일회보1988/12/1

 

♧지리산과 불교-6

 

♧화엄사(華嚴寺)와 문수사(文殊寺)

 

♣글/白雲/스님/부산 미륵사

 

 

다음 화엄동천(華嚴洞天)에는 백제 화엄종의 종찰(宗刹) 화엄사(華嚴寺) 있다. 백제는 교학(敎學)보다도 율학(律學) 더욱 성하여서 율종(律宗) 정토종(淨土宗) 크게 발전하였는데 다행히 인도(印度)에서 화엄종사(華嚴宗師) 연기조사(鳶起祖師)께서 바다를 건너 지리산으로 오셔서 화엄사를 창건하고 화엄종지(宗旨) 선양하니 이로서 백제불교가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것은 서기 544년이고 () 타고 공중을 날아오셨다고 전한다. 연은 흡사 거북이 모양인데 이마에 외뿔이 있고 날개를 가졌으며 바다와 육지에서 자유자재하게 살아가는 짐승으로서 주로 인도지방에 서식하였다고 한다.

 

화엄동천의 골짜기에 옛날에는 암자가 총총 박혀있어서 절에서 상봉인 노고단까지 소리로써 서로 이어갈 있었다고 하며, 절과 암자에는 대중이 살면서 화엄경을 독송하며 수도해 왔다고 전해온다.

 

그래서 백제의 화엄사는 신라보다 백년이나 앞섰으며 뒷날 자장법사(慈藏法師).원효(元曉), 의상(義湘) 신라 화엄의 대가(大家)들이 백제 화엄을 배우러 화엄사에 주석했던 것이다. 자장 법사는 주석한 기념으로 3층사자석탑(三層獅子石塔) 남기셨고 원효스님은 대웅전 뒷켠에 31 해회당(海會堂) 지어 화엄법문을 설하였으며 의상대사는 3 장육전(丈六殿) 짓고 벽을 석경(石經)으로 장엄하시고 많은 학중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화엄사는 의상대사의 화엄종 십찰(十刹)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실로 화엄사는 백제와 신라의  화엄학이 서로 만나게 되는 장소로서도 기념할 하며 양국의 화엄학이 서로 어우러져 한국불교의 화엄사상을 크게 꽃피우게 되었던 것이다.

 

다음 문수동천(文殊洞天) 노고단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성지(聖地)로서 옛날에는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에 달린 수십 개의 암자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터전만 남고 대소사암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 주둔하며 군사훈련을 하던 지역이어서 왜군들이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고 한다.

 

문수동천에는 문수대(文殊臺) 있고 문수대 아래에는 서산대사의 수제자인 청련자휴(靑蓮自休)선사가 평생을 사셨던 청련암(靑蓮庵) 근년까지 있었으며, 고려 말엽에 왜군(海賊) 침노하여 수개월을 웅거했던 적기암(赤旗庵) 있어 이채롭다.

 

[계속]

 

▣주

[위의 글은 부산 미륵사 주지스님이신 백운(白雲)스님이 1988년 12월1일 불교관련 잡지 불일회보(佛日會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전해 내려오던 지리산의 역사.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만, 나름대로 논리와 의미를 지닌 글이라 여겨지며, 특히 수많은 사암(寺庵)이 존재하며 불국토(佛國土)를 이루었을 지리산에 대하여 불교의 문수보살(文殊菩薩)과 관련하여 내린 여러 곳의 지명 해석은 무척 독특하고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재작년, 약 20년 전 지면(紙面)을 통해 나왔던 이 기록을 뒤늦게 발견하고 흥분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뒷날의 공부를 위한 자료로 삼고자 기고문을 편집하여 이곳에 옮겨놓습니다.]/[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