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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역사]

석종대의 우번조사-地名에 나타난 불교④

[다음 글은 부산 미륵사 주지스님이신 백운(白雲)스님이 1988년 11월1일 불교관련 잡지 불일회보(佛日會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정설(定說)로 받아들여지거나 혹은 전해 내려오던 지리산의 역사.이야기와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만, 나름대로 논리와 의미를 지닌 글이라 여겨지며, 특히 수많은 사암(寺庵)이 존재하며 불국토(佛國土)를 이루었을 지리산에 대하여 불교의 문수보살(文殊菩薩)과 관련하여 내린 여러 곳의 지명 해석은 무척 독특하고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재작년, 약 20년 전 지면(紙面)을 통해 나왔던 이 기록을 뒤늦게 발견하고 흥분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뒷날의 공부를 위한 자료로 삼고자 기고문을 편집하여 이곳에 옮겨놓습니다.]/[두류]

 

 

▣地名에 나타난 한국불교/불일회보1988/11/1

 

♧지리산과 불교-4

 

♧석종대(石鍾臺)의 우번조사(牛飜祖師)

♣글/白雲/스님/부산 미륵사

 

석종대는 길상봉(吉祥峰), 일명 노고단(老姑壇) 서쪽의 문수봉 아래에 있는데 여기도 문수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누구나 여기에서 기도를 드려 성취하게 되면 길상동자가 치는 석종 소리를 듣게 된다고 한다.

 

지금부터 89년 전에 화엄사의 진응강백(震應講伯)이 시자인 용화(龍華)스님과 함께 석종대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강백스님은 문수기도를 드리고 용화시자는 관음기도를 드렸다. 진응강백은 7일 만에 석종 소리를 듣고 용화 시자는 2주일 만에 석종 소리를 들었는데 삼칠일간 기도했으니 강백스님은 14일간을 한결같이 종소리를 듣고 시자스님은 7일간을 들은 것이다. 이 두 스님의 평생을 살펴보면 14일간 석종 소리를 들은 진응강백은 경안(經眼)이 열려 3세에 가장 밝은 강백이 되었고, 7일 동안 석종 소리를 들은 용화스님은 화엄사 제1세 주지가 되어 대본산(大本山) 주지노릇을 잘 해낸 것으로 평가 받는 스님이 되었다. 이렇게 이 석종대는 청량회상(淸凉會上)으로서 기도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이 기도도량의 시원을 살펴보면 대강 아래와 같다.

 

백제 말엽에 이르러 나라의 정치는 문란해지고 변방에서는 도둑이 자주 출몰하여 선량한 백성들을 괴롭히므로 민심은 자꾸 흉흉해져 가는 어느 해 가을, 석종대에 토굴을 묻고 정진하고 있는 노승 한 스님과 동승이 겨우살이 탁발을 나가는 도중 길가의 밭두렁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마침 밭에는 조[서숙]가 탐스럽게 익어서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동승은 노랗게 익은 조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아주 탐스럽게 익었구나” 현방 찬탄해 마지 않으며 어루만지는데, 조 알 세 개가 그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동승은 세 개의 조 알을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그의 입에 털어넣었다. 비록 적은 조 알이지만 곡식인 만큼 땅에 내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때까지 건너편 산만 바라보고 있던 노승이 고개를 돌려 동승을 쏘아보며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네 이놈, 남의 곡식을 함부로 불로소득(不勞所得)한단 말이냐? 너는 세 낱의 조 알을 먹었으니 곡식 주인집 소가 되어 3년간 일해 갚아라. 만일 내생(來生)에 갚으려면 삼생(三生)을 소가 되어야 다 갚을 것이니라.”

 

이렇게 준엄히 꾸짖고 입으로 무슨 주문(呪文)을 외우니 동승은 이내 송아지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승은 조 알 세 개를 먹은 죄업(?)으로 밭주인 집 소가 되어 3년을 죽도록 일해주었는데, 이 소는 외양(外樣)은 소로되 기실은 동승인지라 다른 소마냥 여물을 먹지않고 사람처럼 밥을 먹었으며 똥을 싸면 그 똥에서 방광(放光)하므로 밤만 되면 그 소가 지나친 곳마다 환한 불빛이 나서 동리 사람들은 모두 신기해 하였다. 또 그 소는 힘이 세어서 밭을 갈게 되면 여느 소의 열 배는 더 가는 지라 소 주인은 밭갈이 해준 대가로 많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 소를 복소(福牛)라 불렀으며 누구나 함부로 부리지를 않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것은 복소가 쟁기질하며 논이나 밭에 똥을 싸면 그 논밭은 꼭 풍작을 거두게 되므로 주민들은 다투어 복소를 데려다가 쟁기질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3년간 소살이하는 동안 소 주인은 동리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3년 살이를 무사히 끝낸 복소는 떠나면서 사람 음성으로 주인장을 불러 말하기를 “ 나는 본시 문수봉 아래 석종대에서 우리 스승님을 모시고 정진하는 동승인데 당신네 밭의 조 알 세 개를 먹고 빚 갚느라 3년을 소살이 해준 겁니다. 이렇듯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것이니 아무쪼록 주민들은 인과를 중히 여기고 선행을 쌓으시오” 이렇게 타이르고 복소는 산을 향하여 마을을 떠났으며 주인장은 너무도 감격하여 복소의 뒤를 따라가서 석종대에 이르렀다.

 

토굴에는 노승 한 분이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다가 마을사람을 보고는 “내 시자를 잘 돌봐주어 고맙다”하고는 복소의 허물을 화장해주라고 하명하신다. 주인장은 노승의 명대로 금방 숨을 거둔 복소를 화장해 주고는 다시 동승으로 돌아간 시자의 잠자는 곁에 지키고 있다가 동승이 잠에서 깨어나자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동자스님, 아까 저기 뜨락에 계신 노스님은 뉘시온지요?”

“우리 스승님은 이 산의 주인이신 문수대성(文殊大聖)이시고 저는 시자인 길상동자(吉祥童子)요’

 

그제야 황연히 깨달은 그 사람은 길상동자에게 졸라서 문수대성이 계시는 청량회상으로 인도를 받아 정작 문수대성을 친견하고 다시금 인과법문(因果法門), 반야법문(般若法門)을 듣고 다시 토굴로 돌아왔는데 청량회상을 다녀온 시간을 따져보면 고작 한 시간 가량이나 흘렀으련만 인간세상에서는 어느덧 3년 반이란 세월이 지나간 것이었다.

 

이처럼 불보살의 세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므로 인간세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길상동자가 남의 곡식 세 알을 먹고 소가 되어 3년간 빚을 갚은 뒤 다시 소를 뒤쳐 동승으로 돌아온 것을 기려 후세 사람들이 암자를 짓고 절 이름을 우번암이라 했다.

 

지금도 석종대 우번암은 문수기도도량으로 원근(遠近) 사부대중(四部大衆0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연이어 오는 것은 정말 상서로운 일이라 하겠다.

 

[계속]

 

[주]용어설명

*경안(經眼) : 불경 만한 안목. 경문 이해할 있는 능력 이른다

 

♣백운스님 약력
·1934년 전남 生
·53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비구계 수지
·60~82년 영동 중화사, 포항 오어사, 경기 영월암, 김해 장유암 주지 역임·범어사 지리산 토굴 등지에서 정진
·71~87년 화엄사, 범어사, 송광사 강사
·현재 부산 미륵사에 주석
·<양치는 성자> <진묵대사> <부설거사> 등 소설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