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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길따라/지리산♧[탐방]

[구례]현천 '산수유 마을', 노란 꽃 붉은 환생

 

 

 

산동(山洞)은 계절의 종합선물세트다. 철마다 제 색이 분명해 사계절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 산동은 가을 일색. 샛노란 산수유 꽃을 털어낸 그 자리에 새빨간 열매를 달아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린다. 탐스럽게 영근 산수유열매는 가을색에 젖은 산동 땅에 지천으로 널렸다. 눈길 닿는 곳마다 대롱거리는 열매는 보석을 빚어놓은 듯 영롱하다. 두 계절을 거쳐 자연의 빛을 몸속에 품은 탓일까. 그 때깔은 탐스럽다 못해 유혹적이다. 은근슬쩍 다가오는 겨울에 밀려 금세 도망가 버릴 것 같은 가을정취가 이곳에선 그대로 멈춰버릴 것만 같다.

전남 구례군 산동은 ‘산수유마을’이다. 해마다 봄이면 뭉게구름 피어나듯 샛노란 산수유꽃이 산하를 뒤덮는다. 계절을 두번 바꾼 이 가을, 꽃은 열매로 진화한다. 열매는 겨울 끝 잔서리를 이겨낸 꽃에서 맑고 짙게 영근다. 그 열매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산동 내 34개 마을에 심어진 산수유나무는 2만8000여그루.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다. 산동에서도 특히 알려진 곳은 지리산 만복대 끝자락에 위치한 상위마을이다. 이미 명소가 된 상위마을을 뒤로하고 현천마을을 찾았다.

산동 북서쪽 계천리에 자리한 현천마을은 산수유마을 포스터의 배경지다. 남원시와 도계를 이루는 산악지역에 터를 잡았다. 마을 뒤 견두산은 모양새가 ‘현(玄)’자형이다. 또 마을 뒤로 흐르는 내(川)는 옥녀봉의 옥녀가 매일 빨래를 했고, 선비가 고기를 낚는 어옹수조(漁翁水釣)가 있어 그 아름다움을 형용해 현천(玄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마을입구 느티나무 옆 현계정을 지나자 소박한 마을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47가구 100여명의 주민이 담을 맞대고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KBS ‘백년가약’ 팀이 지어준 공동작업장 앞에 차를 놓고 발품을 팔아 마을을 둘러봤다.

돌담장을 두른 농가마다 산수유나무가 가지를 내려 외지인을 반긴다. 그 가지마다 가을향을 머금어 잔뜩 물이 오른 산수유열매가 가득하다. 돌담길은 미로를 탐험하듯 구불구불 이어져 옛 시골정취를 음미하며 걸음을 옮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산수유열매 수확은 10월 말에 시작해 12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열매가 실하고 맛이 드는 때는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한달간. 지금부터가 절정의 시작이다.

계천리 최강호 이장(60)은 “산동면에서 산수유나무가 제일 많은 곳이 현천”이라며 “한 집당 500근에서 많게는 3000~4000근씩 열매를 수확한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마을로 파고들자 집집마다 대나무 장대로 나무를 털고, 사다리에 올라 가지를 훑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탐스럽게 농익은 산수유열매는 가지를 훑고 나무를 털 때마다 비오듯 쏟아져 나무 밑에 쳐놓은 그물망에 수북이 쌓인다.

산수유열매는 육질과 씨앗을 분리해 육질은 술과 차, 한약의 재료로 사용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열매는 강음, 신정, 신기보강, 수렴 등의 효능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 두통이나 이명, 해수병, 해열, 월경과다 등에 쓰이고 야뇨증이나 요실금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현천마을 사람들은 산수유나무를 ‘돈나무’, ‘대학나무’로 불렀다. 열매가 귀한 약재로 쓰여 수입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천마을에 산수유나무가 심어진 것은 수백년 전부터다. 이후 5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해 종자가 큰 놈을 따로 분류해 군락을 이뤄갔다. 군락은 수해(樹海)를 이뤄 봄이면 황홀하게 피는 꽃으로 가을이면 새빨간 열매로 온 산을 뒤덮어 절경을 이룬다.

수확된 열매는 건조기에 말려 습기가 제거되면 입으로 씨를 발라낸다. 다시 1주일 정도 바짝 말리면 건피가 된다. 해마다 수확철이면 입으로 씨를 발리는 통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입술이 벌겋게 불타오른다. 하지만 그 풍경은 이제 빛바랜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다. 몇 년 전 씨를 발라내는 기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산수유나무가 자생하는 곳은 이곳만이 아니다. 그러나 산동에서 생산된 산수유열매를 최고로 쳐주는 것은 과육과 육질이 크고 두꺼워 다른 지방 것과는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일교차가 커야 하고, 물이 맑아야 한다. 여기에 모래와 진흙이 적당히 섞인 ‘사질양토’가 필수다.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곳이 바로 산동이자 현천마을이다.

마을에서 풍광이 제일 좋은 곳은 공동작업장 우측 개울 위 다리를 건너 골을 따라 10여분 올라야 한다. 산수유나무와 고즈넉한 산골 풍치가 어우러진 낭만적인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산수유는 내한성이 강해 이른 봄에 꽃이 피고 초겨울까지 열매를 맺는다. 현천의 산은 겨울에도 벌건 빛이 감돈다. 농촌에 일손이 모자라 열매를 다 수확하지 못한 까닭이다. 한겨울 눈밭에서 산수유열매는 더욱 진한 때깔을 띤다.

〈구례|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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