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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파리의 黃晳暎

기사의 하단 부분 글귀가 마음에 닿아 중앙일보 조인스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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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파리의 黃晳暎


▲ 최보식 베를린특파원
출장 도중 파리에 들렀다가,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을 만났다. 그때까지 그가 파리에 머물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는 런던에서 2년간 살았고, 올 초 파리로 건너왔다고 한다. 그런 예정 없는 만남에, 밤마다 센강변의 황석영 집에서 술까지 마시게 된 것이다.

 

그의 입심은 이미 ‘황구라’라는 별호(別號)를 얻은 바 있다. 술과 문단, 연애 등 잡다한 화제로 그는 술자리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다음날 점심 메뉴로 정한 자장면의 소스 만드는 법에 관한 것이었다. ‘진미’표 춘장을 재료로 호박과 양파를 썰어 넣고 센 불에서 어떻게 볶는지를 설파했다. 저녁 안주로 부대찌개를 끓이는 법까지 이어졌다. “부엌의 주도권을 놓고 항상 아내와 쟁탈전이 벌어진다”고 덧붙이면서.


 

하지만 뱃속에 들어갈 음식만 논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실천 문인’이며 ‘투사’였고, 그런 후배들이 따르는 문단의 좌장(座長)이다. 또 조선일보와 불편했던 시절도 있었다. 비록 술자리이지만 그에게 “선생의 이념과 주의는 어디 갔는가”를 물었다.


 

“어떤 이는 나를 좌파나 이념가로 보고, 또 어떤 이는 굉장히 딱딱한 인간으로 압니다. 하지만 나는 현실주의자로 ‘장사꾼’이지요. 소설로 먹고살려면 독자를 끌어들이는 ‘장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장사를 잘하려면 현실 흐름을 따라야지, 이념으로는 안 돼요. 일반 국민들이 먹고사는 것도 똑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철 지난 이념 싸움꾼만 설칠 뿐, 각 분야에서 장사할 줄 아는 현실적 전문가들이 적어요. 우리 앞날을 위해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입니다.”


 

그전에 작가의 입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파리에서 그의 발견은 내게 낯설면서 익숙한 것이었다.

“언젠가 후배 문인이 ‘왜 선생님은 아직 안티 조선에 서명하지 않았느냐’고 내게 따져요. 정신이 자유로워야 할 이들조차 경직된 구도에 묶여 있습니다. 현 정권에서 좌우(左右)가 너무 벌어져 갈라섰어요. 그전에는 들락날락했는데. 목청을 높이는 논객이니 지식인들은 한쪽 극단에만 서 있어요. 극단이 지배하면 중도의 사람들은 몸을 감춥니다. 이는 내 소설의 ‘장사’를 위해서도 걱정이오. 중간지대가 넓어야 내 작품이 더 잘 팔립니다. 내년쯤 이를 위해 문학적으로 뭔가를 해볼 구상이오.”


 

그는 어느덧 예순세 살이지만, 여전히 단단한 몸을 갖고 있었다. 술잔의 열정에서도 밀리려고 하지 않았다. 자리가 파하는 시각은 늘 새벽 3시가 넘었다. 이런 그에게 내년 말까지로 예정한 객지 생활은 무료할 것이고, 술친구 한 명이 아쉽고 사회적 조명도 가끔 그리울지 모른다. 그는 “방북(訪北) 때문에 국보법 위반 혐의로 감방에 갇혀 지낼 때 나 없이도 바깥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내가 죽은 거나 다름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곳에는 내 발로 나왔는데도 국내 소식을 접하면 그 속에 내가 빠져 있다는 소외감이 들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쨌든 주변 동료들이 계속 머물러 있을 때 나는 떠나왔어요. 마을을 떠나 들판에 서면 마을의 불빛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그런 외로움으로 이 나이에 우리 사회를 떨어져서 바라볼 정신적 유연함을 대신 얻었는지 모르지요.”


 

물론 술자리라서 이렇게 정제된 언어의 구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 둔한 기억에는 그렇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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