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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人들의 智異山

■정시한의 산중일기[프롤로그]

이 글은 현대불교(www.buddapia.com)의 기획연재물로 지대방 블로그에
올려진 '부엔디스'님의 [정시한의 산중일기]번역물 중 지리산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한 내용입니다.

수많은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글을 써내려 가는 우담 정시한 선생의
기록도 가슴을 설레이게 하지만, 번역을 하신 부엔디스님의 글도 참으로
맛있는 글이라 감탄을 거듭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보시'하는 성격의 글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감사의 인사도
못드리고 염치없이 글을 보았다는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하지만 맛깔나는 글 맛은 그 부끄러움을 한참 뛰어넘어, 나는 어느새 타임

머신을 타고 선생이 다녔던 길을 따라 옛 지리산 자락을 더듬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지리산 기행문인 '유두류록'으로 익히 알려진 점필재 김종직, 
탁영 김일손 선생 등을 비롯한 선인들의 기록을 다시 들추어 보기도 하며,

우담선생의 글에 나오는 옛 지명, 사찰의 존망사 등도 힘닿는 데까지 살펴

보려 합니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옮겨가실 때에는 전문에 출처를 밝혀주는 것이 글을

쓴 이에게 최소한으로 갖추는 예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류/조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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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불교/지대방/정시한의 산중일기/부엔디스]

<산중일기>의 저자 정시한(丁時翰 : 1625(인조 3)~1707(숙종33))은 대표적인 퇴계
이황의 계승자로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평생동안 단 한차례의 관직생활도 하지 않았는데 숙종 때 묻혀있는 인물을 중용
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직에 여러차례 임명될 정도로 신망을 받았던 선비입니다.
특히 남인 계통에 속해 있으면서도 거듭되는 당쟁에 일체 관여하지 않아 존경을
받았습니다.

정시한의 자는 군익(君翊), 호는 우담(愚潭) ,관찰사 언황(彦璜)의 아들입니다.
독학(獨學)으로 성리학(性理學)을 연구, 원주(原州)에 은거하여 후진양성과 농업에
종사했지요.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집의(執義)·사업(司業)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 후에 진선(進善)에 올라 1691년(숙종17) 앞서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인현왕후
(仁顯王后)를 폐위시킨 일을 잘못이라 상소했다가 삭직(削職), 이해 다시 기용되었
으나 사직했습니다.

1696년 희빈(禧嬪) 장씨(張氏)의 강호(降號)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는 등으로 당파와는
관계 없이 자기의 뜻을 기탄 없이 토론했던 선비로 유명합니다.

1704년 노인직(老人職)으로 첨지중추부사(索知中灑府事)가 되었습니다. 그의 학문은
정약용(丁若鏞)·이익(李瀷) 등 실학자(實學者)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주의 광암
사(廣巖詞)에 제향(祭享).

정시한의 기행은 62세 때인 168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입산하여 독서에
몰두하는 시간을 마련해보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여행은 1686년~1688년까지의 첫
번째 시기와 1689년~1694년까지의 두 번째 시기로 나누어 집니다.

<산중일기>는 첫 번째 시기의 여행을 상세하게 기록한 자료랍니다.

[현대불교/부엔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