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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두류실/두류실 일기

아우는 왜 광양만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초겨울 광양만을 서성이는 새벽바람의 손길이 매섭다.

역동적인 삶의 터전이던 이곳 컨테이너터미널은 지난 9월부터 엄습하기 시작한 52
노동자의 불안감과 한숨에, 12월의 추위까지 뒤엉켜 얼어붙어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동북아 물류중심의 허브향 육성이라는 이름아래 조성되어, 10년 동안 쉼 없이 가동
되어 오던 광양컨테이너부두 허치슨터미널에는 지금 목숨을 담보하며 투쟁한다는
컨테이너터미널 부두
노동자들의 결연함이 밤 바람에 펄럭이는 현수막 격문들에 고
스란히 묻어있다.

 

터미널 조성 당시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항만물류시스템의 국가경쟁력 제고에 있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태생적 논란 거리를 품고 추진되었던 Two-port
시스템은
우려한 바 대로 이렇듯 채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항만물류산업의 세계적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최근 새
롭게
조성한 부산-진해 신항만, 지정학적으로 보아 지원과 규모의 확대가 불가피한
인천 항만, 그리고 바다를 끼고 있는 지자체들의 끊임없는 항만시설확충 등은
새로
운 수요의 창출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경기침체와 맞물리며, 수년 째 같은
크기를 유
지하고 있는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무한경쟁을 치러야 할 상황이 되었고,
합리
, 수익성,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장하고 있는 자본은 이제 서서히 그 움직임을
시작하려는 듯하다. 

 

노동력이 수익성과 생산성이라는 가치로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지금의 경제체제 하
에서, 노동력은
자본의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 아닌가? 
이즈음 그런 위기를 감지한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자구책 
모색을 위하여 몇몇 행동에
착수한 듯하다. 
 

약 열흘 전, 광양만의 예인선(PILOT) 선단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조하여 입항하는
선박의 접안을 막았고, 또 노동자들은 출항할 선박의 선적
작업을 중지해 선박의 발
이 묶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로 인한 물동량의 정체는 광양으로 향하던 많은

물선을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해당 터미널은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소식까지 곁들여...

그러더니 이내 터미널 노동자 몇 명이 약 50m 높이
크레인에서 바다로 몸을 던졌다
는 섬뜩한 소식이 들려왔다. 해경구조대가 빨리 대처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는 하
, 이제 끔찍한 일이 언제 벌어질 지는 누구도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무력감을 느낀 조합원들이 극단적인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지난 번 물 속으로 뛰어들었던
k의 이야기 속에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듯하다. 아래 인용 글은 3일 전 k를 만났을 때 그 이가 한 이야기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미 우리 집에 무슨 수백억 금액이 기재된 압류통지서가 날아와 집사람이 쇼크를
은 모양입니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아이들과도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집집마다 거짓말로 된 회유편지를 보내어 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여 조직
을 와해하려는 비열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

저희들도 지금 불경기라 회사 어려운 줄 다 압니다. 하지만 호황기를 그렇게 잘 보내
고는 회사가 조금 어렵다고 직원들을 헌신짝 버리듯 하려하다니요
.
우리는 우리의 10년 세월을 결코 헛되지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로 회사와 싸울겁니다.
노조 스스로 정리해고라는 극단적인 내용까지 수용하며 협상에 임하려 하지만

사측은 들은 척 만 척입니다
.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 쪽 사람들은 우리 주장의 많은 부분이 수용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우리가
강성 노조 소속인 것을 이유로 아예 귀를 열지 않으려 하는 듯합니다. 홍콩자본의 맹
목적 주구 노릇을 자처하며, 노동자들의 삶과 생존에 대하여 추호도 관심 기울이지
않는 저 
앞잡이들, 현 경영진은 일제 매국노와 다른 거 하나도 없습니다


* * * * * * *

 

그나저나 h터미널 노조는 노조원 52명의 미니 노조다 보니 세간의 이목이나 지자체
관심도 받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의 위기감과 상대적 박탈감은
큰 듯하고....  
사람의 생명과 생존이 조직의 대소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마는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삶의 원초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권력의 논리가 횡행하고 좌지
우지 되는 듯해 씁쓸
한 마음 감출 수가 없다.

 

목전의 생산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현대자본이 노동자들과 바른 마음과 상생의
정신으로 엮이지 않고
, 오로지 도구와
수단으로만 관계할 경우 그 끊임없는 대치와
그로 인한 폐해를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존의 문제에 직결한 노동자들
이 물리적으로 극한 상황에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결코 승자가 없는 그 격렬한
투쟁의 결과가 심히 우려될 뿐이다.   

 

언제나 선한 모습으로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산악인 후배 k, 이 조직
에 약 10년 동안 몸 담고 있는 후배의 결연한 모습이 나를 자꾸 불안하게 한다
.

나의 공허한 말, 한 쪽 귀로 다 흘려버려도 좋다. 다만 네 몸, 그리고 너의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라는 말만은 들어다오.

걱정 끝에 손을 부여잡고, 눈과 가슴으로 던진 나의 말에도 그이는 벌써 고개를 돌리
고 있다. 이런 때는 솔선수범이라는 이미지로 굳혀진 아우의 성실함이 더욱 걱정으
로 남을 뿐이다.

* * * * * * *

사실의 전말을 들춰내고, 상세하게 파악하여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몇 달 째 집에도 가지 못하고 세상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외면하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이 점 저와 생각이 다른 분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두류